한미 관세 협상 막후에서 빛난 김동관·이재용·정의선 ‘맹렬 어시스트’

조유빈 기자 2025. 8. 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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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들 미국에서 ‘물밑 외교’…현지 네트워크 동원해 의회·재계 접촉
실물 투자 가능성 타진해 체감 만족도 상승…정부도 감사 표해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한미 관세 협상 데드라인을 하루 앞둔 7월30일(현지시간), 협상 장소인 워싱턴DC에서 약 225km 떨어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나타났다.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과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등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한화오션의 미국 현지 사업장 필리조선소를 찾은 것이다. 

이들은 김동관 한화 부회장과 데이비드 김 필리조선소 대표의 안내를 받으면서 필리조선소의 주요 현장을 둘러봤다.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에서 가져온 자동용접 설비가 가동되는 장면을 신중히 살피고, '트레이닝 아카데미'에서 용접 기술을 배우고 있는 훈련생들을 만나 의견을 듣기도 했다. 사실상 관세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든 상황에서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의 가능성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자리였다.

펠란 장관은 지난 4월에도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을 찾은 바 있다. 그는 "조선해양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트럼프 정부와 미 해군성의 최우선 순위"라며 "필리조선소에서 어떤 투자가 이뤄지는지, 조선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지를 직접 보는 것이 중요했다"고 했다. 이들이 조선소를 방문한 직후 관세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다. 미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펠란 장관과 보트 국장에게 현장 방문 결과를 보고받은 이후 최종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7월30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 김동관 한화 부회장(왼쪽부터)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화 제공

조선 협력 중심에서 움직인 한화 김동관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상호관세는 25%에서 15%로 낮아졌다. 이번 협상에 정부와 재계의 협력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식 협상 테이블에는 앉지 않았지만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을 이끄는 총수들이 조용한 '물밑 외교'를 펼치며 미국 측과 또 다른 접점을 만든 것이다. 특히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는 마스가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의 핵심 카드로 꼽히는 상황에서, 필리조선소 방문은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마지막으로 점검한 중요한 순간으로 해석된다.

이 자리에서 김 부회장은 "필리조선소를 교두보로 미국 내 신규 조선소 건설, 조선 인력 양성, 조선 관련 공급망 구축, 선박 건조 및 유지·보수(MRO) 등을 주도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장기 사업 전략과 투자계획도 설명하며 미국 정부의 지원과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날 현장 점검으로 프로젝트의 신뢰성이 담보됐고, 필리조선소는 양국 간 협력의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보트 국장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화가 필리조선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투자와 활동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오랜 기간 함께 근무해온 직원들과 좋은 파트너십을 만들어가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김 부회장은 미군이 추진하는 해군력 증강 및 조선산업 재건 과정에 한국이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직접 강조했다. 실제로 한화는 지난해 말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뒤 설비투자, 현지 일자리 창출, 기술 이전 등을 통해 전방위적 개편에 나서고 있다. 그는 관세 협상에 힘을 보태기 위해 한미 조선업 협력, 대미 조선업 투자 등과 관련한 의견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뉴시스

미국 달려간 이재용·정의선, 협상 신뢰도 높여

직접적인 투자와 실행을 담보하는 기업인들은 협상의 '특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들이 움직일 경우 협상안이 정부의 정책 논리에 그치지 않고 실물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측 체감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재계 리더들은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 및 기업인과의 친분을 활용해 한국에 대한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워싱턴DC로 날아가 측면 지원에 나섰다. 재계 1·2위 기업 총수들이 협상단에 힘을 보탰다는 것만으로도 투자 관련 신뢰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특히 이 회장은 당초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리더십 포럼 '구글 캠프'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예상을 뒤엎고 미국을 찾아 관세 협상을 측면 지원했다. 앞서 이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과 독대 형식의 만찬 회동을 가지면서 삼성전자가 대미 투자에 기여할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3년까지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을 위해 370억 달러(약 54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고, 내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특히 방미 전날인 7월28일에는 테슬라와 22조원 이상의 차세대 인공지능(AI)칩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같은 사실도 반도체 투자 관련 논의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반도체 투자 확대 및 기술 협력 방안 등이 협상에 도움이 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정 회장은 앞서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조지아주 신공장 '메타 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 확대, 루이지애나주 철강공장 신설 등이 포함된 21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계획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현대차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빠르게 움직인 국내 기업이기도 하다. 이번 협상에서는 지난 4월 워싱턴DC 사무소 수장으로 임명된 조지아주 출신 4선 하원의원 드류 퍼거슨의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해 힘을 보탠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현대차는 트럼프 행정부 재출범 이후 고조될 관세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정책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로 퍼거슨 의원을 영입한 바 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재계 리더들이 미국 인맥을 총동원해 의회, 미국 재계 등과 접촉하며 민관 총력 체제로 한 것이 협상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프로젝트를 강조하기 위해 제작한 '마스가 모자'(왼쪽)와 '마가 모자'를 착용한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REUTERS

■챗GPT로 만든 '마스가 모자'도 숨은 공신 트럼프 화법 고려해 역할극까지

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의 지렛대인 조선 프로젝트를 강조하기 위해 슬로건과 상징물을 만들었다. 슬로건은 'Make America Great Again(MAGA·마가)'에서 착안한 '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MASGA·마스가)'이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빨간 모자를 즐겨 쓴다는 점을 고려해 '마스가 모자'도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쓰는 '마가 모자'와도 비슷하다.

산업통상자원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챗GPT를 통해 디자인된 모자는 서울 동대문의 한 제작업체를 통해 완성됐다. 관세 협상에 속도가 붙으면서 현지 협상팀이 급히 모자를 요청했고, 이 과정에서 '긴급 수송 작전'이 이뤄졌다. 완성된 모자 10개는 대한항공 워싱턴 직항편을 통해 24시간 내에 협상단에 전달됐다. 협상단은 모자와 함께 프로젝트 개요를 다이어그램 형식으로 담은 그림판을 가져가 미국 고위 관계자들에게 양국 산업 협력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협상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 등을 고려해 사전 역할극까지 하며 대비했다. 한 명이 트럼프 대통령 역할을, 다른 사람들은 협상단 역할을 맡아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미리 연습한 것이다. 이 과정에는 "복잡하게 이야기하지 말고 단순하게 말하라"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조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의 취향에 맞춘 협상단의 다양한 노력 끝에 프로젝트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고,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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