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말해야 할 인사, ‘내일 또 만나’ [.txt]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삼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전에 뇌졸중으로 한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퇴원하셨다.
"예준아, 잘 가. 내일 또 만나." "그래, 윤서야, 잘 가. 내일 또 만나." '내일 또 만나'는 유치원 단짝이던 시절, 둘 사이에 반복된 약속이자 주문이다.
예준의 용기 없음이 흘려보낸 숱한 시간을 돌아 겨우 다시 만난 둘이 영원히 헤어질 것을 알면서 나누는 마지막 인사, 내일 또 만나.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삼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전에 뇌졸중으로 한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퇴원하셨다. 부모님은 ‘자식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분들이라,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별다른 주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나에게 전화하기 시작하셨다. “바쁘냐” “집에는 언제 내려오느냐”가 주 내용이었는데, 나는 늘 “곧 가겠다”고 “좀 바쁘다”고 말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주무시다 돌아가셨고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장례 후 나는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아버지의 숱한 부름에 한번도 응답하지 않은 나를 용서하기 어려웠다.
남유하의 ‘가시 인간이 지구를 구한다’는 제목 그대로 몸에 가시가 돋은 사람들이 지구를 구하는 에스에프다. 예준은 유치원 단짝인 윤서를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다. 단짝이었던 시간이 무색하게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내던 둘은 서로의 손목에 난 가시를 빌미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 알고 보니 가시는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행성 연합에서 퍼뜨린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반응이다. 행성 연합의 파견 관리자 페크는 두 사람에게 말한다. ‘여러분은 지구를 구하거나, 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작가가 작품 안에 인용한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같다”는 아서 C. 클라크의 말처럼 이 에스에프는 일정 부분 마법 같다. 서로를 알아본 예준과 윤서의 외로움이, 지구를 구하는 대신 마지막 순간을 자신의 고양이 아루와 함께하고 싶다는 주영의 선택이, 지구는 알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않은 행성 연합에서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 애쓴다는 사실이, 최선이라는 이름의 그 모든 과정과 선택에도 불구하고 어긋나는 예준과 윤서의 마지막이 그러하다.
누군가는 윤서의 선택을, 윤서가 말하는 ‘의미 없는 죽음’과 그 맞은편에 있는 ‘의미 있는 죽음’의 차이를 물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도 그 질문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이 소설이 나에게 남긴 것은 내일이 없는 예준과 윤서가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인사였다. “예준아, 잘 가. 내일 또 만나.” “그래, 윤서야, 잘 가. 내일 또 만나.” ‘내일 또 만나’는 유치원 단짝이던 시절, 둘 사이에 반복된 약속이자 주문이다. 예준의 용기 없음이 흘려보낸 숱한 시간을 돌아 겨우 다시 만난 둘이 영원히 헤어질 것을 알면서 나누는 마지막 인사, 내일 또 만나. 죽음 앞에서 나누는 영원한 약속이자 주문. 늦었지만, 돌이킬 수 없게 늦어버리지는 않은 인사, 내일 또 만나. 마법 같은 인사, 내일 또 만나.
남유하 작가의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사계절·2025)를 만지작거린 게 6개월이다. 작가의 어머니 고 조순복씨의 존엄한 마지막 선택을 담은 책이라는 걸 알았고, 나는 끝까지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책과 나 사이에 내 아버지가 있었다. 예준이 돌고 돌았지만 결국 윤서에게 닿았듯, 나는 돌고 돌아 ‘가시 인간이 지구를 구한다’에 닿았다. 소설을 처음 읽은 순간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나는 숱하게 울었다. 잠자리에서, 길에서, 스터디 카페에서,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냥 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내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미안해. 정말 미안해. 거기서 잘 있지? 나 낳아주고 키워줘서 고마워. 아빠 사랑해. 아빠, 내일 또 만나.
송수연 청소년문학평론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속보] 구속 갈림길 김건희, 서울중앙지법 도착…취재진 질문엔 침묵
- 이 대통령, 조국 사면에 최저 지지율…역대 특별사면 논란은? [정치BAR]
- 명태균 “취임식 쌍무지개 보고 대통령이 둘이라 그런가 생각해”
- [단독] 로봇개 납품 업체 대표 “윤석열 집서 김건희에 5400만원짜리 시계 전달”
- “아들도 며느리도 올 수 없는 묘소”…윤석열 부친 추모한 ‘60년 지기’
- 조국 사면 다음날…법무장관, ‘반가사유상’ 미소 떠올린 까닭
- 박근혜가 토한 것을 다시 먹은 윤석열 [권태호 칼럼]
- ‘헌트릭스’ 결국 빌보드 접수했다…케데헌 ‘골든’ 핫100 1위
- 익숙한 길… [그림판]
- “윤석열 수감 서울구치소 폭파하겠다” 협박전화 50대 긴급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