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형 기초단체 주민투표 실시의 2가지 전제조건
변화와 혁신을 넘어 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내일을 위해서는 다른 생각, 다른 전략, 다른 시스템, 다른 실행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섬이다의 김종현 대표와 함께 제주의 '다른 내일'을 독자와 함께 모색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격주로 만나볼 수 있다. / 편집자 주
진정한 특별자치는 분권과 견제, 공론과 협치, 풀뿌리 자치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20년 동안 제왕적 도지사로 인한 폐단이 심해지고 있다. 견제되지 않는 제왕적 도지사로 인해, 주권자 도민이 주체가 되는 집단지성과 합리적인 공론장이 상실되었다. 이로 인해 제주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특별자치도'는 중앙 정부로부터의 권한 이양과 도민 자치라는 2개의 날개를 모두 가질 때, 비상할 수 있다. 도민 주권과 도민 자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분권과 견제, 공론과 협치, 풀뿌리 자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도민 자치가 만들어내는 집단지성은 역동적 민주주의와 혁신적 경제 활력을 위한 토대이기도 하다.
주권자 도민의 자치를 위한 행정체제 개편은 특별자치도의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오영훈 도정이 추진한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에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행정체제 개편 주민투표의 2가지 전제조건 : 도민 공감대 확인과 구체적인 실행 방안 제시
자치 제도에 정답은 없다.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행정적 상황 속에서 지역에 맞는 최적화된 방안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치 제도를 결정할 때는 중요한 원칙들이 있다. 이 원칙들이 잘 지켜졌는지가 제주형 기초단체 실시를 위한 주민투표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 상황에서 2가지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높은 도민의 공감대이다. 좋은 자치 제도는 방안보다 도민들의 동의 수준이 더 중요하다. 다소 불합리해도 주민들의 지지와 동의가 높다면, 그 책임은 주권자 도민이 함께 감당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도민 다수를 설득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주민투표는 많은 비용이 수반되는 절차이다.
두 번째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구체적인 실행 방안의 제시이다. 행정도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행정의 시행착오는 도민 전체에게 피해를 남길 수 있다. 행정체제 개편은 사무, 재정, 인사, 조직, 정보, 공간 등 행정의 모든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방대한 작업이다. 철저한 계획과 안정적인 실행이 중요하다. 이제 실행까지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주민투표 이후에는 실행을 준비할 시간적 여력도 없다. 특히 재정의 경우에는 행정 구역보다 이해관계가 더 복잡한 사안이다. 그러나 재정 배분 방안은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사무와 재정 등 실행 방안이 제시되고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지난 3년 동안 도민 다수의 공감대와 구체적인 실행 방안 마련에 실패하였다. 오영훈 도정의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은 표류하고 있다. 주민투표에 대한 데드라인은 이미 넘어섰다. 하루속히 빠른 결론을 낼 수 있는 원칙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주민투표 전에 도민 공감대 수준을 확인하는 절차가 꼭 필요
지난 2005년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 주민투표는 36.73%의 높은 투표율과 57%의 득표율로 단일행정체제 개편을 결정하였다. 행정체제를 바꾸려면, 2005년 수준 이상의 도민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김한규 민주당 도당위원장은 제주시 쪼개기 방지법을 발의하고 있고,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반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제주도에서는 공론화 과정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지역 내 공감대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2005년 주민투표와 달리 25% 최저 투표율 적용도 배제하겠다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낮은 투표율로 인해, 누구도 주민투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채, 도민 사회를 더 큰 분열의 소용돌이에 빠뜨릴 수 있다.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주민투표 전에 도민 사회의 충분한 합의와 압도적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행정 구역 논란은 오영훈 지사가 자초한 것
제주도정은 3개 구역 안이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되었다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론화 과정을 되짚어 보면, 민주적 정당성과 도민의 공감대 수준에 대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결함은 오영훈 지사의 말 한마디에, 용역진에 의해, 다수 도민이 지지하는 현행 2개 시(市)안이 원천 배제된 사건이다. 2023년 9월 12일 오영훈 지사는 강철남 의원의 도정 질의에, 행정구역의 숫자는 지역 간 '경쟁할 수 있는 단위'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행 2개 행정구역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공교롭게 9월 26일에 발표된 지역언론 4사의 여론조사에서 도민들은 정반대 입장. 행정구역과 관련한 질문에, 2개 구역 63%, 4개 구역 20.1%, 3개 구역 10.6%로 조사되었다. 현행 2개 구역에 대한 압도적 지지였다. 그러나 용역진은 10월 10일, 3개 행정구역을 1순위, 4개 행정구역을 2순위로 하고, 2개 구역은 완전히 배제하는 내용을 발표하였다. 2개 구역은 지역경쟁의 기반 확보가 어렵다는 오영훈 지사와 같은 이유를 제시했다.
용역 부실 논란과 함께, 도민 다수가 원하는 2개 시안을 제외하는 것이 도민 주권 원리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김경학 당시 도의회 의장은 '도민이 원하는 최적 안이 제외'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자치제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도민 다수 의견이 배제되고 도민 10% 정도가 원하는 방안이 소수 용역진에 의해, 1순위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이었다.
두 번째 결합은 도민 설문조사와 공론조사 참여단 설문조사 결과가 엇갈린 부분이다. 용역진은 10월 23일에서 26일까지 도민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2개 구역은 배제되고 3개 구역과 4개 구역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설문조사 결과 4개 구역 57.4%, 3개 구역 32.6%로 조사되었다. 여전히 3개 구역은 소수였다. 용역진이 11월 23일과 24일에 진행한 320명의 숙의 토론 도민 참여단 설문조사에서는 3개 구역 55%, 4개 구역 42.5%가 나왔다. 제주도는 도민 설문조사와 도민 참여단 설문조사 중 도민 참여단 설문조사를 기준으로 3개 구역을 확정하게 된다.
숙의 토론 설문조사는 깊이 있는 정보와 토론에 의한 조사라는 장점이 있지만, 참여단의 도민 대표성이 부족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설명하는 전문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단점이 있다. 정보를 제공하는 용역진의 중립성과 객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정보를 제공하는 용역진은 이미 3개 구역안을 1순위로 정한 상황이었다. 참여단 설문조사의 공정성과 정당성에 의문이 갈 수 밖에 없다.
이렇듯 3개 권역 안이 결정되는 과정은 도민 다수의 공감대가 반영되는 과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도지사의 입김, 부실한 용역, 소수 전문가의 선택들이 작용한 결과이다. 제왕적 도지사를 견제하기 위해 추진된 행정체제 개편 방향이 제왕적 도지사의 입김에 좌우되는 모순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제주형 기초단체의 사무배분은 시군보다는 자치구에 가까워
사무 배분과 재정 배분은 기초 단체의 권한과 자원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사무와 재정 배분은 세부적인 쟁점도 많고, 선택에 따라 기초단체별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사무 배분과 재정 배분에 대한 방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주민투표를 진행한다는 것은 중앙정부, 국회, 도의회, 도민에 대한 기본적 도리가 아니다.
행정구역은 사무 배분에도 연동된다. 우리나라 기초단체는 도-시군 모형이 있고, 특별시/광역시-자치구 모형이 있다. 자치구는 하나의 도시에서 행정 편의를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자치구는 시군보다는 사무와 재정 권한이 약하다. 3개 구역 안은 하나의 도시 인프라, 생활권, 정체성을 가진 제주시를 인위적으로 쪼개는 방안이다. 시군이 가지고 있는 대중교통, 도로,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등 도시 인프라에 대한 권한을 제주형 기초단체에 부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만약 2개 권역이었거나 4개 권역이라면 타 시군과 대등한 사무 배분이 되었을 것이다. 제주형 기초단체의 이름은 동제주시, 서제주시, 서귀포시이지만, 사무 배분을 놓고 보면 동제주구, 서제주구, 서귀포구에 가까운 상황이다.
용역진은 지방세 배분에서도 자치구 제도를 선호
사무 배분은 재정 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초단체의 재정은 크게 자체수입 (지방세, 세외수입)과 의존수입 (지방교부세, 조정교부금, 국가 및 시도 보조금)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 지방세의 경우을 살펴보자. 기초단체 지방세는 시군세와 자치구세의 항목이 다르다. 시군세에는 주민세, 지방소득세, 재산세, 자동차세, 담배소비세 5개 항목이 있다. 광역시 자치구세에는 지방소득세, 자동차세, 담배소비세가 빠지고 등록면허세가 추가되어, 주민세 재산세, 등록면허세 3개 항목이 있다.
자치구 방식의 지방세 제도는 동제주시에 절대적으로 불리

예상 세액을 보면, 시군세 방식이냐 자치구세 방식이냐에 따라 3개 기초단체 사이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치구세에 동제주시의 경우에는 지방세 수입이 상대적으로 가장 취약하다. 인구는 35%를 차지하지만, 지방세 수입은 시군세 기준 31%와 자치구세 기준 29%에 불과하다. 지역 주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인인 제주시을의 김한규 국회의원이나 도의원들은 자치구세 방안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귀포시는 시군세 보다 자치구세가 훨씬 유리하다. 인구는 27% 이지만, 34%의 지방세원을 확보할 수 있다. 1인당 지방세액도 47만 7천원으로 가장 높다. (하지만 다음 편 글에서 상세히 서술하겠지만, 전체 재정은 현재 행정시일 때 보다 취약해 질 것으로 보인다.) 서제주시는 시군세 방식이 유리하다. 특히 자동차세의 경우, 동제주시 296억원, 서귀포시 227억이지만, 서제주시는 668억원으로 많은 수입이 예상된다. 자치구세 방식이 된다면, 자동차세는 기초단체 수입이 아닌 광역 단체인 제주도의 지방세가 된다. 서제주시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손실이다.
용역진은 지방세 배분의 형평성을 이유로 자치구세를 유리한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인구 비율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총액의 형평성을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제주도에서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자치구세 방식인지, 시군세 방식인지, 제3의 방식인지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재정의 경우, 지방세 뿐만 아니라 보통교부세와 조정교부금의 경우에도 다양한 쟁점 존재한다.
깜깜이 주민투표는 도민 무시, 사무, 재정에 대한 구체적 방안 제시와 공론이 필요
2023년 말에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은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1년 반 동안 사무, 조직, 재정에 대한 세부 방안 마련은 지지부진하다. 사무와 조직에 대한 연구 용역은 올해 5월에 발주하여, 10월에 결과가 나온다. 재정 조정제도 도입 방안은 8월에 발주할 예정이다. 그동안 제주형 기초단체 실시를 기정사실로 하는 홍보에 매진하고, 중앙정부에 주민투표 실시를 요청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준비는 하지 않은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없으니, 정부, 국회, 도의회, 도민 사회의 공론화, 심의, 합의도 어려운 상황이다. 쟁점들을 일부러 회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이다. 제주형 기초단체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없이 깜깜이 주민투표를 할 수는 없다. 이는 중앙정부, 국회, 의회, 주권자 도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세부 방안을 꼭 용역을 통해 제시할 필요도 없다. 제주도정에서 생각하는 주요 쟁점에 대한 의견과 방안을 하루속히 제시해야 한다. 주민투표 실시 결정 전에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회, 도의회, 도민사회의 심의, 검증,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제주형 기초단체 실시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재정 배분의 가장 큰 쟁점인 보통교부세와 조정 교부금에 대한 다양한 쟁점들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 관련 자료
▶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 등을 위한 공론화 추진 연구용역 최종보고서

김종현의 이력은 다채롭다. 다채롭지만 맥락이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그답게, 그의 행보에는 '제주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사제가 꿈이던 그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터넷포털 'Daum'에 입사해 검색 비즈니스팀장을 지내다 2003년 Daum의 제주 이전 실무 책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 이직, 넥슨 관계사들의 제주 이전과 사회공헌을 담당하였다.
사회적기업 섬이다(閃異多)를 창업, '닐모리동동', '우유부단', '제주관덕정분식' 등 제주가치에 기반한 창의적인 로컬푸드 브랜드들을 만들었다. 이후 청년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기획, 초대 센터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그는 사회적기업 섬이다의 대표이사로, 도시재생 로컬크리에이터, 청년활동 등 다양한 혁신 산업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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