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불편을 장작 삼아… 숲속의 집, 색다른 삶[북리뷰]

2025. 8. 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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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운틴 하우스
니나 프루덴버거 지음│노유연 옮김│한길사
안데스산맥·알프스·양평 등
전세계 숲속 주택 21곳 소개
사는 방식·생각하는 방식 외에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는 생활
위부터 오스트리아 티롤 지역에 위치한 가족 오두막, 대한민국 양평에 자리한 도예가 이헌정의 집,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호수 옆 외딴섬에 만들어진 게스트하우스. ‘마운틴 하우스’는 12개국에 흩어진 21채의 숲속 집 사진과 함께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길사 제공

니나 프루덴버거는 마치 건축가처럼 책을 짓는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그녀는 작가와 사진가를 데리고 전 세계의 집들을 취재해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낸다. 건축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작업자들을 불러 집을 짓듯, 그녀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높은 안목으로 무엇을 어떻게 보고 사진 찍을 것인지를 정한 후, 전문가들 손을 빌려서 이를 실현한다. 그녀는 책을 홀로 쓰지 않고 함께 건축한다.

프루덴버거의 전작 ‘예술가의 서재’는 책을 모시면서 사는 이들이 꾸며낸 ‘아름답고 방대한 서재’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진정성 넘치는 이야기와 탐나는 서재 사진으로 가득한 이 책은 애서가들 사이에 꽤 화제가 됐다. 이번에 나온 ‘마운틴 하우스’에서 그녀가 찾은 곳은 숲속 주택들이다.

이 외딴집들의 거주자도 예술가, 건축가, 요리사, 작가 등이다. 이들은 번잡한 도시에서 빠져나와 도로도 없고 사람 발길도 닿지 않는 숲속에서 집을 짓고 살아간다. 모로코 하이아틀라스 산맥, 캘리포니아 샌가브리엘 협곡,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라플라타 호숫가, 칠레 안데스산맥 등, 저자는 5대륙, 12나라에 걸쳐 숲속 집 21채를 독자 앞에 펼쳐낸다. 빼어난 사진들로 가득한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는 자연인이다’의 ‘우아 버전’이란 생각이 절로 난다. 이들은 고립과 불편을 장작 삼아 자연을 만끽하고, 풍요로운 의미를 이룩하는 삶을 산다.

첫걸음은 스위스 ‘카사 라슬레이’다. 17세기에 지어진 낡고 허물어진 농가를 개조한 이 집은 알프스 온제르노네 계곡에 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험한 지형, 수시로 짙은 안개에 뒤덮이는 이 척박한 계곡은 화가 막스 에른스트, 작가 막스 프리슈 등의 은둔지로 유명하다.

알레한드라 라우퍼는 열다섯 살 때 프리슈 글에서 이곳을 처음 접했다. 이후, 그녀는 여름마다 이곳을 찾아 풍광을 즐기다, 마침내 낡은 농가를 고쳐서 이곳에 정착했다. 집은 도시적 편리보다 지역 전통을 존중하고 자연에 순응하도록 개조됐다. 엄격한 미니멀리즘을 고수한 탓에 그녀의 가족은 밝은 방이나 깔끔한 주방을 잃었다. 그러나 그 대신 자연이 주는 소박한 기쁨, 변화무쌍한 기상이 가져오는 ‘즉흥적 즐거움’을 누리게 됐다.

모든 집은 거주자의 형편과 취향, 그리고 그 집이 놓인 장소 사이의 대화를 통해 그 꼴이 정해진다. 숲속의 집들은 매우 다채롭다. 거친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한 집, 벽에 구멍을 뚫거나 문과 창문을 없애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인 집, 집터에서 구한 돌과 나무로 이루어져 주변 풍경과 어우러진 집 등 숱한 건축적 실험들이 시도된다. 건축상을 받은 집도 많다.

그런데 다른 장소, 다른 집을 택한다는 건 ‘다른 삶’을 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숲속 집에서 사는 이들은 “사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꾼 이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모두 “산의 지질학적 시간에 순응하는 삶”,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간다. 경기 양평의 ‘땅집’은 이를 극한으로 실현한다. 윤동주 시인에게 헌정된 이 집은 단단한 콘크리트와 흙벽으로, 아예 땅에 파묻혀 있다. 지어진 모습 자체로 “모든 건 언젠가 땅으로 돌아간다”라는 자연의 섭리를 상징하는 셈이다. 이 집이 무너져서 소멸할 날이 오면, 남는 건 결국 시인의 시에 나오듯 밝은 달과 흐르는 구름, 펼쳐진 하늘과 푸른 바람뿐일 테다.

삼복더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은 파타고니아 외곽 고산 지대, 눈 덮인 빙하호의 외딴섬에 있는 오두막이다. 넓은 창을 통해 호수와 산맥의 절경이 내다보이는 이 집은 유명 요리사 프란시스 말만의 집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셰프의 테이블’에 나온다. 아름다운 앤티크 카펫이 깔린 이 집에선 맛있는 식사와 함께 풍미 있는 포도주를 내줄 게 틀림없다. “사람과 장소, 맛과 향과 촉감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간”처럼 우리를 매혹하는 곳이 있던가. 이 식당은 우리와 대극점에 있기에 ‘가장 먼 곳’의 상상력을 부풀린다. 거기서 “지형, 호수, 강, 바람, 태양, 눈, 숲과 대화”하면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책을 읽으면 얼마나 신비로울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과 자연이 대화하는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 집을 설계하고 꾸미고 가꾸는 방식이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을 돕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기후 재앙 시대에 더 나은 삶을 살려면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한 그윽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336쪽, 4만5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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