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에 물든 힙합, 너 자신을 알라 [콘텐츠의 순간들]

강일권 2025. 8. 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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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팬덤은 일반적인 대중가수 팬덤과 다소 다르다. ‘예술가-리스너’의 관계를 넘어선 동료의식을 형성할 때가 많다. 래퍼들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책임감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힙합계에서 가장 많이 전해지는 소식 중 하나는 래퍼들의 범죄다. 자신이 보고 자란 현실과 생존의 언어를 담아낸 음악 속에서 우리는 종종 범죄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목격하게 된다. 폭력, 마약, 성폭력, 불법 무기 소지, 조직범죄 연루 등이다. 힙합의 고향인 미국 래퍼들만 해도 법의 심판을 받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이 현상은 언제나 힙합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래서 혹자는 힙합이 ‘범죄자들의 음악’이라며 비하하기도 한다. 심지어 공권력이 래퍼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힙합이라는 문화의 맥락과 래퍼들의 성장 배경을 무시한 단순화다.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이 힙합 아티스트와 범죄 사이에도 복잡한 배경과 진실이 있다.

많은 래퍼가 인종차별과 빈곤,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자랐다. 그 과정에서 범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였다. 특히 마약범죄가 결정적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마약과의 전쟁’이 심화되면서 흑인 사회의 고립과 황폐화가 급속화되었다. 가뜩이나 사회적 진출이 가로막힌 흑인들은 마약 거래를 유일한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처벌받아 전과자가 되면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그렇기에 빈민가 출신이 대다수였던 래퍼들이 마약범죄에 연루되는 구조적 배경을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이나 일탈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엔 사회적 계급과 음악산업 문제, 그리고 ‘현실을 고스란히 담는다’는 힙합의 독특한 미학이 얽혀 있다.

2021년 무면허 운전 등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래퍼 노엘(장용준·왼쪽 두 번째).ⓒ공동취재

그러나 이것이 범죄의 면죄부는 될 수 없다. 래퍼가 과거의 범죄 경험이나 꾸며낸 범죄 이야기를 노래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예술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예술가가 자신의 영향력을 망각하고 범죄를 저지를 땐 그들을 감쌀 수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힙합 신에서도 래퍼들의 범죄 연루 소식이 연이어 터지는 중이다. 마약 투약, 음주운전, 병역법 위반, 불법 촬영, 폭행 등 힙합 신을 중심으로 연예계의 어두운 이슈가 반복되고 있다. 힙합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과 편견이 더욱 고착화된다. 특히 마약 관련 범죄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한때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되었지만, 이젠 대마초를 넘어 필로폰·엑스터시·펜타닐 같은 강성 마약을 투약·소지 및 판매한 혐의로 입건되거나 기소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약 3년 전, 한국 힙합 신의 마약 실태를 파헤치는 칼럼을 준비한 적이 있다. 일부 래퍼들과 10대들을 중심으로 마약 문제가 심각하게 떠오르던 때였다. 꽤 많은 사람을 취재했다. 마약 투약 경험이 있는 래퍼, 마약을 투약 중인 래퍼의 지인, 마약 구매를 권유받은 힙합 프로듀서, 힙합 신에서 마약이 퍼지는 경로를 알고 있다는 공연 기획자, 전직 마약 딜러 등을 만났다. 취재에 응한 거의 모두가 익명을 요구했기에 독자에게 신빙성을 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해 글을 공개하진 않았다. 그러나 당시 알게 되고 확인한 실태는 지금까지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래퍼와 10대들은 마약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었다. 게다가 마약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10대 팬들이 받을 영향 생각해야

무엇보다 심각한 건 그들이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삶까지 파괴한다는 점이다. 마약중독에서 빠져나와 그 심각성을 알리는 활동을 한 래퍼 사츠키는 동료 래퍼의 꼬임에 빠져 처음 마약을 접했다고 밝힌 바 있다. 래퍼들의 범죄가 잇따르면서 한국 힙합은 단지 장르 이미지의 위기를 넘어 사회 전반의 윤리 감수성과 세대 간 도덕 기준까지 흔들고 있다. 어떤 힙합 팬들은 대중이 래퍼들의 범죄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건 그런 식으로 비교할 사안이 아니다. 이 같은 반응이야말로 ‘힙합은 위험한 문화’ ‘래퍼들은 막 나가고 무책임한 존재들’이라는 세간의 왜곡된 인식을 부추길 뿐이다.

힙합 팬덤은 일반적인 대중가수 팬덤과 다소 다르다. 이들은 아티스트의 가사와 삶, 태도에 깊이 공감하며 ‘예술가-리스너’의 관계를 넘어선 동료의식을 형성할 때가 많다. 실제로 꽤 많은 팬이 래퍼를 꿈꾸거나 아마추어 래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자연스레 래퍼들의 행보에 영향을 받는 강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힙합 팬덤에는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 사이의 10대들이 다수 속해 있다. 간혹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나가보면 가장 열정적으로 래퍼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이들이 중학생이다. 래퍼가 되려는 열망을 내비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10대 팬들이 래퍼들의 범죄로부터 받는 영향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치지 않는다. 일부는 마약이나 폭력을 일종의 힙합적 정체성처럼 수용하고, 범죄를 마치 ‘스타일’처럼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SNS·유튜브 쇼츠·틱톡 등을 통해 래퍼들의 말투·패션·태도·가사까지 실시간으로 소비되는 환경 속에서 이들의 범죄적 서사도 낭만화되거나 정당화된다. 법과 윤리에 대한 감수성은 무뎌지고, ‘잘나가면 저 정도 일탈쯤이야’ 같은 위험한 인식까지 팽배해질 수 있다. 그야말로 심각한 문화적 후유증이 유발되는 것이다.

2023년 불법 촬영 및 유포 혐의로 기소된 래퍼 뱃사공(김진우·왼쪽)이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래퍼들의 반복되는 범죄는 비단 10대 팬뿐만 아니라 오랜 장르 팬들에게도 깊은 배신감을 맛보게 한다. 정서적 충격이 이어지면 팬들은 윤리적 소비와 예술적 감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나아가 한국 힙합에 대한 냉소로 귀결될 수도 있다. 힙합의 진정한 매력을 사랑하던 이들이 점점 멀어지는 대신 논란과 자극으로만 힙합을 소비하는 경향이 강화된다면 그 신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한국 힙합 신은 비교적 자율적인 생태계를 유지해왔다. 많은 래퍼가 대형 연예기획사의 울타리 바깥에서 활동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이러한 독립성은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는 긍정적 요소이지만, 동시에 법률적·윤리적 리스크 관리체계가 미비하다는 현실을 노출한다.

한국 힙합은 더 이상 변방의 문화가 아니다. 힙합은 음악시장에서 주요 장르로 부상했으며 래퍼들은 광고·방송·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과거에는 지하 클럽에서 마이크를 잡았지만, 이제는 많은 대중 앞에서 주목받는 스타가 되었다. 급속한 확장과 주류화 속에서 힙합 신 내부의 구조적 미성숙이 드러나고 있다. 위기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드는 힘도 결국 힙합에 있다. 래퍼, 힙합 커뮤니티, 미디어 모두 불편한 현실을 직면하고 스스로 돌아보며 다시 책임감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팬들의 분노 역시 힙합을 향한 관심의 또 다른 방식이자 더 나은 신을 만들 수 있는 자양분과 같다. 〈쇼미더머니〉 종영 이후 힙합의 인기와 시장 상황이 급격히 나빠진 데다 음악 외적 태도의 부재가 예술의 진정성까지 갉아먹고 있다. 힙합은 그 어떤 장르보다 현실을 말하던 음악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힙합이 말해야 할 현실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강일권 (음악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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