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가, 집착인가… 성직자의 탈을 쓴 욕망, 프롤로 [김소연의 빌런들]

김소연 2025. 8. 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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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에스메랄다 파멸로 이끄는 프롤로 신부
편집자주
현실에선 피해야 할 상대지만 무대 위의 빌런은 작품의 밀도를 높이는 중요한 축입니다. 공연 담당 김소연 기자가 매력적인 무대 위 대항자들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20주년 기념 공연에서 프롤로를 연기할 배우 다니엘 라부아. 프랑스 초연부터 27년 이상 ‘프롤로’ 역을 연기한 배우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사제복 뒤에 숨은 남자의 욕망이, 한 여인의 삶을 송두리째 삼켰다. 기도와 금욕의 얼굴로 광장을 내려다보던 성직자. 그러나 그의 눈은, 춤추는 한 여인에게 머물렀다.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그는 신의 얼굴을 벗고 욕망을 드러낸다. 신을 섬기는 그의 언어는 타인의 삶을 조종하고 파괴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교 프롤로는 전형적인 '권력형 빌런'이다.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도덕의 대변자처럼 보이지만 그가 벌이는 일은 그 누구보다도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다. 사제의 지위를 방패 삼아 죄를 숨기고, 내면의 욕망을 타인의 탓으로 돌린다. 버려진 콰지모도를 데려다 기르지만 소유물처럼 대하고, 자신을 거절한 에스메랄다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의 욕망이 좌절될 때마다 그 대가는 온전히 타인이 짊어진다.


그의 죄는 욕망보다 위선

집시들의 우두머리인 클로팽이 집시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기적의 궁전'을 노래하고 있다. 아크로바틱 등 화려한 춤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1831·파리의 노트르담)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향하는 과도기의 혼란 속에서 프랑스 사회를 비판한 역사 소설이다. 위고는 프랑스 고딕 건축의 걸작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보존 필요성을 외치며, 성당에 깃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민중 해방의 축제 '광인절'의 떠들썩한 분위기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거리의 음유시인 그랭구아르, 등이 굽은 종지기 콰지모도, 집시들의 우두머리 클로팽과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등 사회의 낮은 곳에 몰린 이들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해방'의 키워드를 선명히 드러낸다. 여기에 성직자 프롤로, 근위대장 페뷔스, 페뷔스의 약혼녀 플뢰르 드 리스, 후에 에스메랄다의 생모로 밝혀지는 귀딜 수녀 등을 등장시켜 성직자의 위선과 권력의 폭력성,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편견을 꼬집는다.

소설 속 통찰은 무대에서도 설득력 있게 구현됐다. 뮤지컬 버전의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롤로와 에스메랄다, 페뷔스, 콰지모도 네 인물의 파국적 엇갈림을 좀 더 강조해 사랑과 욕망, 구원과 파멸이라는 주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극은 프롤로의 욕망과 위선을 비롯해 '악'이 어떻게 윤리의 가면을 쓰고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지 보여준다. 네 인물의 파국적 교차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숨은 집착과 자기기만, 그리고 인간 내면의 추악한 본성까지 응시하게 한다.


금욕을 깨고, 타인의 탓으로

다니엘 라부아가 '노트르담 드 파리'의 프롤로를 연기하고 있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특히 프롤로의 욕망은 뮤지컬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대표적인 장면이 프롤로, 콰지모도, 페뷔스의 3중창 '벨(Belle·아름답다)'이다. 세 남성이 각기 다르게 표현하는 에스메랄다를 향한 감정은 결국 모두 소유의 욕망이다. 콰지모도는 애절한 연민으로, 페뷔스는 육체적 끌림으로 접근한다. 프롤로는 신부로서의 금욕을 벗어던진 채 "단 한 번만 그녀를 나의 것이 되게 해 주오, 에스메랄다"라고 노래한다. 사랑이란 이름 아래 감춘 욕망과 집착의 삼중주다.

뮤지컬은 프롤로의 위선을 단순하고 선명하게 정리한다. 그는 2막에서 '권력을 앞세운 욕망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프롤로는 "파멸의 길로 날 빠뜨린 너 / 널 저주하겠어 삶이 끝날 때까지 / 파멸의 길로 절망의 길로 / 왜 깨닫지 못했나 처음 만난 그 밤부터 / 파멸의 길로 절망의 길로 날 빠뜨렸지"('파멸의 길로')라고 노래하며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을 에스메랄다 탓으로 돌린다. 나약함을 인정하지 못한 채 타인을 비난하는 그의 모습은 권력 뒤에 숨은 위선의 전형이다.


추한 것은 악한가… 콰지모도의 비애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주인공 콰지모도의 외모는 이 같은 인간의 어두운 본능인 위선을 상징적으로 비춘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롤로의 타락을 통해 '악의 본질'을 묻는 동시에, 콰지모도라는 존재를 통해 ‘추함과 선함’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콰지모도는 외모 때문에 혐오와 조롱을 받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정의롭다. 프롤로 신부나 귀족 가문의 후예인 군인 페뷔스가 감춘 추악한 내면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페뷔스는 욕망에 이끌려 에스메랄다에게 접근했다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안위를 선택하는 인물이다. 종을 치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콰지모도는 극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을 실천한다. 그는 아름다운 에스메랄다를 사랑하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고 에스메랄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진짜 괴물은 누구이고 진정으로 고귀한 삶이란 무엇인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추함과 아름다움, 선과 악의 경계를 가를 수 있을까. 관객을 향한 또 하나의 물음이다.


인류는 과연 진화하는가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와 프롤로 신부. 마스트인터내셔널 제공

'노트르담 드 파리'는 단순한 중세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넘어 현대 사회의 은유로 읽힌다. 프롤로는 2막 첫 곡 '피렌체'에서 시인 그랭구아르와 함께 '시대의 변화와 인간의 열망'을 노래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욕망을 거절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파멸시킨다.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그것이 거절당했을 때 폭력으로 전환되는 인간의 자기기만은 종교계 성폭력 스캔들이나 권력형 성범죄의 모습으로 15세기 파리가 아닌 21세기 사회 곳곳에서도 반복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노트르담 드 파리' 2022년 뉴욕 초연을 소개하면서 "인종차별, 여성 혐오, 권력 부패 등 현대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다룬다"는 관객 평가를 함께 실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20주년 기념 공연이 다음 달 3일부터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불어 버전으로 펼쳐진다. 작곡가 리카로드 코치안테, 작사가 겸 대본가 뤽 플라몽동, 연출가 질 마외가 손잡고 1998년 파리에서 초연한 '노트르담 드 파리'는 30여 개국에서 9개 언어로 1,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만났다. 프랑스 뮤지컬은 대사 없이 노래로 이어가는 '성스루(Sung-Through)' 형식. '노트르담 드 파리'는 50곡 넘는 넘버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코치안테는 "뮤지컬이라기보다는 대중 오페라"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2005년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 공연으로 처음 소개된 뒤 불어, 한국어, 영어 버전으로 꾸준히 공연됐다.

뮤지컬 변방인 프랑스에서 탄생한 ‘노트르담 드 파리’가 수십 년간 사랑받아 온 이유는, 욕망과 위선, 소외와 혐오의 구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 본성을 정면으로 비추기 때문일 것이다. 프롤로의 욕망은 15세기에도, 21세기에도 계속된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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