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관세수입 3500조원 배 불렸지만… 동맹 신뢰 약화 우려 [美, 관세 부과 ‘득과 실’]
中과는 유예기간 두고 협상 이어가
브라질·러 등엔 정치·외교 압박 활용
韓·日·EU 대미 투자로 ‘부의 증대’ 전망
생산기지 옮겨 고용 증가 기회도 커져
관세로 제품 가격 올라 부작용 지적도
美 내서도 “일종의 글로벌 강탈” 혹평
獨·佛, 벌써부터 美 안보 의존도 낮춰
中, 신뢰 약화 틈타 영향력 강화 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고, 세계 각국을 상대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을 때 ‘블러핑(허세)’이라고 보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설령 관세를 높인다고 해도 동맹국, 우호국은 피해갈 수 있겠거니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식 관세정책은 허세가 아니었고, 전통적인 미국과의 관계에 바탕한 기대는 어림도 없는 것이었다.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예고를 시작으로 휘몰아친 미국과 세계 각국, 경제주체 간 관세 협상은 일부 국가와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지난 7일(현지시간) 본격적인 시행에 돌입했다. 관세 전쟁을 주도한 미국도, 미국의 압력에 못 견뎌 울며 겨자 먹기로 협상을 맺은 각국도 향후 전개될 경제적 파급, 국제질서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6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교역국을 상대로 10%에서 많게는 50% 이상의 상호 관세율을 정하고 7일 시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동맹국과 우호국가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한 관세 부과를 예고했고, 지난 4월2일에는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를 대상으로 일방적인 상호관세율을 통보했다.
관세 집행 유예 종료를 앞둔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동맹국은 대규모 투자 등을 조건으로 통보된 것보다 낮은 15% 관세율을 적용하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한국은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과 1000억달러(139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구매에 합의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미국 내 투자 5500억달러(762조원)를 약속했다. EU도 7500억달러(1040조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매하고, 6000억달러(832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다.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알린 품목별 관세가 어떻게 될지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전쟁 초기에 못 박은 철강, 구리, 알루미늄에 대한 품목별 관세율 50%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에 대해서는 100% 관세를 매기겠다는 입장을 이날 밝혔다. 지난 5일 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의약품 관세에 대해 “처음엔 약간의 관세를 부과하지만 1년이나 최대 1년 반 뒤에는 150%로, 이후에는 250%로 올릴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상대국 입장에서야 곤혹스럽기 그지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어쨌든 천문학적인 자금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길을 텄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직접적인 수입 증대로 이어진다. 각국이 약속한 투자나 상품 구입, 시장 개방은 현실성, 내용 등을 두고 미국과 당사국 간 이견이 노출되고 있긴 하지만 미국에 상당한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최근 예일대 연구진은 미국이 현재 시행 중인 관세들을 유지할 경우 향후 10년간 2조7000억달러(3500조원)의 추가 세수를 안겨줄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과 일본, EU 등의 투자금도 ‘부의 증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을 통해) 문자 그대로 몇 조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공언하는 근거다.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미국 내 생산과 고용이 늘어나는 기회도 커지고 있다. 스티븐 리치 미즈호은행 이코노미스트는 “10%의 보편 관세는 사실상 소비세 인상과 같아서 올 하반기 미국 GDP를 0.5%포인트 부양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맹국, 우호국을 가리지 않은 관세 정책은 장기적으로 미국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EU의 관세 협정에 실망한 독일과 프랑스는 벌써부터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도를 낮추고, 무역 다변화로 미국과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브로맨스’로 유명했던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 역시 미국의 고율 관세 통보를 받은 이후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에 거슬리면 보복하듯이 올리는 관세 정책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결정적으로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에반 메데이로스 조지타운 대학교 석좌교수는 미국이 동맹국을 다룬 방식을 두고 “가혹한 관세 압박을 가해 기존 체제 내 신뢰가 약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패권 경쟁국 중국이다. 실제 관세 전쟁 와중에 미국에서 중국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글로벌사우스 국가들이 늘고 있다. 15~30%의 상호관세를 맞은 아프리카가 대표적이다. 미국 수출이 어려워진 이들에게 가장 유력한 대안은 중국이다. 그웨데 만타셰 남아프리카공화국 자원부 장관은 최근 “미국이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면 우리는 대체 시장을 찾아야 한다”며 “우리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말했다. CNN은 “아프리카가 트럼프 관세란 현실에 적응하면 중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아프리카와 오래 교류해 온 중국은 이들 국가에 생명선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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