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김정은 가려운 곳 긁어준 국정원·통일부

김민서 기자 2025. 8. 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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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보 접근 규제는 풀더니
대북 확성기 끄고 방송도 중단
‘김정은 코드’ 맞추기 열중하는
두 기관은 어느 나라 편인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국정원장./뉴스1·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9월 통일부 기자실 TV에 처음으로 북한의 조선중앙TV 방송이 나왔다. 2011년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이던 류우익 장관이 기자실을 찾은 자리에서 “앞으로 기자들도 기자실에서 북한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2년 뒤 일이다. 그전까지 기자들은 북한 TV가 주요 행사를 방송으로 내보낼 때마다 시청이 허용된 소수 간부 방으로 우르르 달려가기 일쑤였다. 급하게 뛰어가다 신발이 벗겨진 일도 있다. 북한 담당 기자들이 모인 통일부 기자실에서도 2013년 9월 이전까지는 북한 방송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북한 자료 접근 규제가 강했다.

이재명 정부는 북한의 체제 선전과 무관한 소설 등 출판물을 시작으로 북한 자료에 대한 일반인 접근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다. 북한 방송을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방향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직업상 봐야 하는 사람들도 북한 방송을 30분 이상 집중해서 보기는 쉽지 않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집에서 북한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과연 몇이나 그 방송을 소비할까. 시청률 0%대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규제를 풀어 북한 정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알 권리 보장에 나선 정부가 북한 주민의 알 권리는 철저히 묵살하는 결정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대북 확성기를 끄고 대북 라디오·TV 방송도 멈췄다. 북한 주민들은 북한 TV 말고 다른 방송은 볼 수가 없다. 지난 50여 년간 북한 황해도와 강원도 등 일부 지역에선 TV에 남한 방송이 잡혔다. 국정원은 북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PAL 방식으로 한국의 인기 프로그램들을 별도로 편집해 북한 지역에 송출해 왔다.

북한 주민들은 당국이 숨기는 ‘북한 밖 다른 세상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남한 방송에 점점 빠져들었다. 탈북민들은 “남한 방송을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보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TV 틀면 나오던 남한 방송이 갑자기 사라진 게 김정은이 아니라 국정원이 한 일이라는 걸 북한 주민들이 나중에 알고 따져 물으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국정원은 대북 TV 방송 중단이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대남 라디오 방송을 중단한 데 상응하는 조치라고 설명한다. 정보가 넘치는 남한에서 대남 라디오 방송을 중단하는 것과,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강력한 외부 정보 전달 채널인 국정원의 대북 TV 방송을 끊는 건 ‘상응 조치’가 될 수 없다. 균형을 맞추고 싶다면 대북 TV 방송을 중단할 게 아니라 “한국에 북한 조선중앙TV가 나오게 할 테니 북한 전역에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송출하겠다”고 해야 했다.

한국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 시청이 목숨 걸고 탈북을 결행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탈북민을 여럿 봤다. 국정원이 송출한 대북 TV 방송을 보고 탈북을 작심했다는 국가보위성(옛 보위부) 요원 출신인 이철은(39)씨도 그중 하나다. 이씨는 북한에서 남한 영상물 시청·유포를 단속하는 일이 직업이었던 사람이다. 그는 기자에게 “김정은이 아무리 단속해도 한류를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정은이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 했고, 앞으로도 못 했을 일을 국정원이 한 것이다.

정보기관과 군 당국이 북한 주민의 눈과 귀를 막는 데 앞장서고,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이 사용을 금지한 용어인 ‘통일’을 통일부 명칭에서 빼자고 하더니 한·미 연합 군사훈련 조정을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정부가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한 ‘김정은 코드 맞추기’에만 열중할 게 아니라 북한 주민이 기대하는 대북·통일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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