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애플과 삼성의 동거가 시작됐다[삶과 문화]

2025. 8. 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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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완전체의 갤럭시 Z 플립7 체험기
'갤럭시 Z 플립7'의 커버 디스플레이로 '제미나이 라이브' 기능을 체험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나는 애플의 충성고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저작권의 상당 부분은 팀 쿡에게 직접 송금되는 시스템이었다. 맥북 프로, 아이패드 프로, 아이패드 미니 아이폰 15프로, 에어팟 프로, 에어팟 프로 맥스에 마지막으로 애플워치까지.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나는 완전한 애플 프로 컬렉터였다. 친구들은 나를 '사과에 미친X'라고 불렀는데,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애플 기기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그 매끄러운 경험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었다. 복사한 텍스트가 기기 간 순간 이동하고, 전화가 걸려 오면 모든 기기가 일제히 울리며 연동되는 그 완벽한 동조. 마치 스마트홈의 마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내가 갤럭시 Z 플립7을 구매한 건 순전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한 달 전의 나는 개인적으로 증거를 모아야 할 만큼 위험한 일에 노출이 되어 있었으며, 이와 더불어 업무상 통화녹음이 반드시 필요해졌는데, iOS는 그 기능을 만들긴 만들었는데 기괴하게 만들었다. 사생활 보호라는 그럴싸한 명분 뒤에 숨어서 사용자의 현실적 필요는 단호히 거절하는 애플의 완고함을 보고 나는 절망했다. 고맙다 팀 쿡. 덕분에 10년 만에 바람을 피우게 됐다.

삼성 프라자로 간 나는 어차피 안드로이드를 써야 한다면 차라리 재미있는 걸 사자는 심정으로 접는 폰을 택했다. 세상에 아이폰이 나오기 전까지 사실 나는 원래 애니콜 열혈팬이었다. 2000년대 초, 통화를 끝내며 폰을 광대를 이용해 한 손으로 턱 접던 그 의식적 행위의 완성도란! 이런 드라마틱한 연출이 가능했던 시절 말이다.

기술의 발전이 다시 아날로그로 회귀한 게 흥미로웠다. 더 얇게, 더 가볍게 만들려던 스마트폰이 이제는 다시 물리적 조작을 통한 만족감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커버 스크린은 정말 혁신이었다. "이거 완전 미니 폰이네?" 특히 거울 모드는 충격이었다. 후면 카메라로 셀카를 찍을 수 있는데 화질이 훨씬 좋았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애플 생태계에서 하나만 이탈한 상황은 진짜 분단국가 같았다. 38선이 내 책상 위에 그어진 기분이었다. 맥북에서 작업한 내용을 갤럭시로 즉시 공유하는 일은 불가능해졌고, 에어팟의 자동 기기 전환도 작동하지 않았다.

갤럭시를 쓸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마치 집을 나간 탕자가 먼 타향에서 돼지 여물을 먹으며 아버지 집의 양식을 그리워하는 심정이었다. 에어드롭이 필요한 순간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하는 참회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삼성 메모 앱의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보며 애플 메모의 깔끔함을 그리워할 때면, 정말 아버지 집 살진 송아지가 간절했다. 맥북과 갤럭시 사이에서 파일을 옮기느라 USB를 꽂을 때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싶었다.

하지만 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이미 안드로이드의 맛을 본 몸, 장단이 분명한 지금 나는 어느 과실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물론 창작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 이런 단절은 정말 번거로웠다. 워크플로우를 완전히 새로 짜야 했다. 원래 쓰던 아이폰 순정 메모에 1,700개의 메모가 있는데 동기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좀 좋은 메모 앱을 써보려 해도 이중과금의 절망을 맛봐야 했다. "아이폰에서 이미 샀는데 또?" 내 지갑은 그날 두 번 울었다.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메모 어플을 다 다운 받고 유료 결제까지 해보았지만 애플 메모의 깔끔함에 익숙한 나에게는 너무 복잡했다. 역시나 생산성을 책임지고 있는 앱들은 애플의 앱들이 월등히 좋았다. 파이널 컷 프로, 로직 프로 같은 앱들은 안드로이드 대체재와 완성도 차이가 컸다.

그럼에도 갤럭시만의 매력은 분명히 있었다. 가지고 다니는 짐이 절반의 절반으로 줄었다. USB 메모리 꽂고 바로 파일 옮기는 게 가능했다. 진짜 랩톱을 쓰는 기분이었다. 삼성페이도 편했다. 구식 카드 단말기에서도 결제가 됐다.

배터리 관리도 흥미로웠다. 접힌 상태에서는 커버 스크린만 활성화되어 스마트폰 사용 빈도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 고민의 고민 끝에 결국 나는 듀얼 체제로 정착했다. 창작은 아이폰, 통화 녹음과 생활은 갤럭시. 이렇게 어느날 내가 꾸린 사과 농장에 별들이 쏟아지기 시작된 것이다.

혹자는 "접어서 어디다 쓰냐?"고 했다. 맞다. 딱히 쓸 데는 없다. 하지만 보기 좋기만 해도 되지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접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것은 기술이 아닌 향수다. 애니콜 시절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기술은 엄청 발전했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대로다. 접는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그 묘한 만족감, 어쩌면 그게 바로 이 기기의 진짜 가치일지도 모른다.

이소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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