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교수 ‘강의차별’ 호소에도…응답없는 법무부 ‘마지막 구제’

고나린 기자 2025. 8. 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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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시정명령 17년간 6건
게티이미지뱅크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어요. 강의를 못 하게 하니까 버틸 수 없더라고요.”

손과 팔 부위가 강직되는 ‘상지기능 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아란(가명) 교수는 경기도 소재 한 예술대학교의 전임조교수다. 그는 적은 수업 시수, 신체적으로 무리한 수업 등 ‘강의 배정’에 있어 눈에 띄게 자신을 차별하는 학교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했고, 인권위는 2023년 학교의 차별 행위를 인정하며 시정을 권고했다. 그런데도 문제는 계속됐다. 다른 전임교원에게는 통상 1주일 단위로 12시수(시간)가 배정되지만 김 교수에게는 7시수만 배정됐다.

김 교수가 겪은 피해는 인권위 뿐 아니라 고용노동부·법원에서도 모두 인정됐다. 그런데도 학교의 차별이 계속되자 김 교수는 법무부에 시정명령을 요청했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법무부에 시정명령 요청서를 보냈는데 아직 결정이 없다.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장애인 차별 금지의 ‘마지막 보루’인 법무부의 시정명령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한겨레가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를 7일 보면,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으로 법무부 시정명령 제도가 생긴 뒤, 실제 시정명령이 실현된 사례는 6건에 그쳤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인권위 권고에도 차별 행위가 지속될 경우, 피해자 신청이나 직권으로 법무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인권위 권고와 달리 시정명령을 어기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장애인 차별을 중단시키는 사실상 유일한 강제 처분인 셈이다.

시정명령이 현실에서 작동되지 않는 배경에는, 법령에 규정된 처리 절차조차 지키지 않는 업무 관행이 있다. 법무부는 피해자의 신청을 받은 뒤엔 3개월 안에 시정명령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이 시행령 조항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법무부 관계자는 한겨레에 “해당 사안의 경우 인권위 권고가 있었던 차별행위와 현재 진정인이 주장하는 차별행위의 내용이 달라 신속한 처리에만 몰두하면 진정 취지에 맞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어 3개월 이내에 직권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규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며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며 “진정인의 안건은 올해 하반기에 열리는 장애인차별시정심의위원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비정기적인 장애인차별시정심의위원회를 열어 시정명령을 결정하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단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법무부가 법령을 지키지 않는 셈이다.

법무부 시정명령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장애인 차별 문제가 현실에서 쉽사리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겪은 지난한 싸움이 그 단면이다. 그는 2015년 전임교수 임용 뒤에도 전공과 관련된 교양수업만 배정받다가, 문제 제기 끝에 2020년에야 전공수업을 처음 배정 받았다. 그마저 전공과목 10개 중 팔 움직임이 어려운 김 교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업이었다. 김 교수는 “마우스로 수십개의 점을 찍어 선을 만들고, 선으로 면을 만든 뒤 수차례 수정을 거쳐 디자인하는 시연을 보여줘야 하는 수업이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에 장애인증명서 등을 제출하며 “다른 수업을 배정받으면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했지만, 학교 쪽으로부터 ‘더 구체적인 이유를 대라’는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 이후 수업 자체를 배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인권위는 이를 근거로 차별 행위로 판단했고, 고용노동부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했다.

학교는 심지어 인권위 결정에 불복하며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법원은 “김 교수가 다른 과목을 담당하기에 역량이 부족하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2020~2021년 수강생들에게 좋은 강의평가를 받았다”며 인권위와 김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법무부 시정명령은 그런데도 차별이 반복되는 학교에 대한 김 교수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김 교수는 “열심히 살아온 것 하나로 교수가 됐는데 이제 정말 포기를 해야 하는 것인가 싶다”며 “법무부가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엄정한 행정 절차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학 쪽은 한겨레에 “고용노동부와 인권위 결정 이후 학과장 등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감봉조처했고 학교 수업 편성 지침도 사회적 약자-전임교원-겸임 교원 순으로 전공수업을 배정하는 것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서 의원은 “시정명령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쥐고 있는 법무부가 올해 단 한차례도 (시정명령 결정을 위한) 위원회를 열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인권의 관점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단호하게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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