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로운 시골 떠나 '어쩌다 떠난 프랑스'

#권태로운 시골 떠나 '어쩌다 피서'
한여름을 네 조각으로 나눈다면, 지금은 세 번째 조각쯤이겠지요. 저는 늘 마지막 조각을 애틋하게 바라보다가도, 손에 쥐고 있는 조각을 더 아끼지 못한 걸, 후회하곤 합니다. 물론 여름이라는 계절은 그림자가 길어, 끝날 듯 끝나지 않을 걸 잘 알지만요. 그래서 이번에는, 지금 이 세 번째 조각을 조금이라도 덜 아쉽게 보내보자는 마음으로 이역만리 먼 곳에 와 있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과는 달리, 이곳은 생각보다 꽤 쌀쌀합니다. 온전한 여름을 즐기러 온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피서를 오게 된 셈이네요. 날씨 어플이 알려주던 스위스 기온을 보며, 속는 셈치고 넣은 바람막이가 없었다면 온종일 소름을 오소소 달고 다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서늘한 여름은 처음인지라, 이걸 정말 여름이라 불러도 되는 건지 어색할 따름입니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지역의 복숭아가 유난히 맛있다는 사실인데요.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꾹 눌린 모양의 납작 복숭아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마치 적혈구처럼 생긴 이 복숭아는 손바닥 위에 착 붙는 감촉부터가 싱그럽습니다. 한입 베어 물고 코로 숨을 훙 내쉬면, 향긋한 금목서 향에 달콤함이 더해진 복숭아 향이 코끝에 맴돕니다. 뽀득, 껍질을 깨물면 과육이 조심스레 터지고, 입안에 퍼지는 촉감과 향이 제 주변을 맴도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기에 매일 시장에서 몇 개씩 사서 가방에 넣고, 공원 벤치에 앉아 하나씩 꺼내 먹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과즙이 흐르는 줄도 모르고, 온전히 맛에 정신이 팔립니다. 하지만, 하나를 뚝딱 먹고 나면 손가락 사이사이에 남은 끈적함이 문득 거슬립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끈적함이 문득 할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니까 피서라는 건 결국, 잠시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그리워하던 시절로 도피하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지금 이 자리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겠지요. 저도 할머니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다 편하지만은 않으니 말입니다.
지금 이 셋째 조각을 충분히 음미하고 나면, 마지막 조각은 기쁜 마음으로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지금을 꾹꾹 눌러 삼키고 나면, 올해 여름은 꽤 진심이었노라고, 나중에 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 다음엔 제 1/4 조각인 할머니 품으로 돌아가, 딱 맞는 자리를 찾은 듯한 안정감을 느끼겠지요.
선생님들의 피서는 어떤 향이었나요?

※ 필자소개 (얼떨결에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속은 아주 기름지답니다. 간혹 글에 누런 기름이 뜨더라도 페이퍼타월처럼 저를 감싸주시고 닦아주시길 바랍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