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족의 전유물? 가성비 찾는 MZ들이 찾는 크루즈 여행

날이 어둑해지자 선상은 마치 클럽처럼 변신했다. ‘스칼렛(scarlet·새빨간) 나이트’로 명명됐던 밤, 크루즈 댄서들은 갑판 위에서 경쾌한 리듬에 맞춰 공연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드레스코드에 맞춰 붉은 옷을 차려입은 승객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하나둘 음악에 몸을 맡긴다. 크루즈 ‘스칼렛 레이디’호에서 이 밤을 경험한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들은 소셜미디어에 영상을 올리면서 “열기가 뜨거웠다”고 전했다.
한때 은퇴족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크루즈 여행이 젊은 여행객들에게까지 확산되면서 럭셔리 크루즈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제크루즈협회(CLIA)의 2025년 크루즈 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럭셔리 크루즈선 수용 인원(침상 기준)은 지난해 3만5791명으로, 2010년(1만417명)에 비해 144% 증가했다.
◇크루즈에 빠진 MZ세대
최근 크루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배경으로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여행객들의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 분석 업체 시빅사이언스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18~24세 청년층 가운데 ‘크루즈 여행에 관심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73%에 달했다. 이는 전 세대 평균(51%)에 비해 22%포인트 높은 수치다. CLIA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올해 휴가철에 해양 크루즈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Z세대(18~24세)에서 72%로 가장 높았고, 이어 X세대(45~54세) 67%, M세대(25~44세) 64%, 베이비붐 세대(55세 이상) 52% 순이었다.
크루즈 여행을 꿈꾸는 젊은 세대가 많다 보니 실제 승선으로 이어지는 발걸음도 늘었다. CLIA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크루즈 여행을 했던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46.5세였으며, 20~30대(20%)와 20대 미만(16%), 40대(14%) 등 40대 이하 승객이 전체 승객의 절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3대 크루즈 운영사 중 하나인 로열캐리비언 그룹의 제이슨 리버티 최고경영자(CEO)도 지난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현재 우리 고객 두 명 중 한 명은 M세대 이하의 젊은 층”이라며 “이들의 비중이 다른 어떤 세대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24시간 파티에, 가성비까지
한때 크루즈 여행은 ‘부유한 어르신들의 여행’이란 인식이 강했다. 주로 열흘 넘게 이어지는 장기 고가(高價) 여행 상품이 대부분이라 출근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과 자금에 여유가 있는 부유한 노년층이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크루즈 회사들도 이들을 타깃으로 광고하다 보니 백발의 부부가 와인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광고 모델로 종종 등장했다. 이 같은 이미지가 각인되며 크루즈는 ‘노년층의 여행’이란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젊은 층이 크루즈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우선 가성비가 꼽힌다. 카니발그룹의 얀 스와츠 부회장은 USA투데이에 “크루즈는 식사, 숙박, 오락이 포함된 올인클루시브 방식이기 때문에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의 만족을 누리고자 하는 젊은 세대에 특히 잘 맞는 선택지”라고 했다. 실제 내년 2월 출항 예정인 버진 보이지스의 ‘스칼렛 레이디’호 5박 일정 상품은 1인당 795달러(약 110만원)부터 시작한다. 한국식 바비큐, 이탈리안·멕시칸 레스토랑 등 고급 식당 이용은 물론 생수·탄산수 등 음료와 선상 공연 등의 엔터테인먼트 비용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항공편을 따로 예약하고 식당과 즐길 거리를 개별적으로 찾아야 하는 일반 여행에 비해 오히려 저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젊은 층을 겨냥한 크루즈 업계의 전략도 진화하고 있다. 로열캐리비언은 신형 오아시스급 선박인 ‘유토피아 오브 더 시스(Utopia of the Seas)’를 아예 ‘주말형 파티 크루즈’로 내세우며, 3~4박 일정의 단기 항해에 24시간 파티 스케줄을 배치했다. 낮에는 풀 파티가 열리고, 밤에는 DJ 이벤트와 테마 파티가 이어진다. 카니발 크루즈는 가족 게임쇼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 자녀와 함께 여행하는 M세대를 겨냥했고, 노르웨지안 크루즈는 워터슬라이드와 롤러코스터를 결합한 놀이기구, VR 게임존 등을 선보이며 세대 통합형 즐길 거리를 내세웠다.
여기에 바다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점도 MZ세대의 수요를 견인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소셜미디어로 일상을 공유하는 데 익숙한 젊은 세대는 여행 중 실시간으로 사진과 영상을 올리는 데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수요 늘어날 듯
한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크루즈 여행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크루즈 전문 실시간 예약 플랫폼 ‘크루즈TMK’의 ‘2025~2026년 크루즈 동향 및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국내외 크루즈 여행 수요는 단거리 아시아 노선 확대, 젊은 수요층 부상, 테마 및 특수 목적지 선호 증가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일본·대만·동남아 등 아시아를 잇는 단·중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수요 확대가 두드러질 것이란 전망이다. 부산을 출발해 오사카 등 일본의 주요 항구를 기항하거나, 동남아 문화와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상품이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최근 허니문 여행지로 크루즈 여행을 선택하는 신혼부부가 늘고 있고, 친구들끼리 함께 떠나는 ‘우정 여행’ 등의 수요도 근거리 크루즈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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