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일터’인 노점상들···“40도 넘는 폭염에 선풍기라도 맘껏 쓸 수 있으면”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신촌역 부근 거리. 옛날호떡 노점을 운영하는 이상옥씨(47)가 안경을 벗고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연신 닦았다. 이날 기온은 32도, 폭염주의보가 발효돼 ‘야외활동을 삼가라’는 권고가 내려졌지만 거리에서 일하는 이씨는 야외활동을 피할 수 없었다. 호떡 기계에선 계속 열이 올라왔다. 이씨는 “하루 8번 정도 편의점에서 얼음과 음료를 사서 마시며 1만원 이상 쓴다”고 말했다.
이날 만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인근과 신촌역 인근 노점상들은 폭염을 ‘맨몸’으로 견디고 있었다. 구청 등에서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 선풍기도 마음껏 쓰지 못한 채 뙤약볕에 노출돼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지자체들이 노점을 ‘단속의 대상’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점상들은 폭염을 견디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마련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일부 상인들은 얼음물을 천으로 감싸서 등에 메고 더위를 달랬다. 집에서 얼려오는 ‘보냉팩’은 1시간이면 모두 녹는다고 한다. 휴대용 선풍기는 배터리가 금방 닳아 강풍으로는 틀 수 없다. 그러는 사이 노점 천막과 파라솔 아래는 찜통이 돼 갔다. 기온이 34도를 넘기는 일은 예사였다.


제기동에서 꽃집 노점을 하는 김모씨(73)는 “더위를 먹어 지난 2주간 아예 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도 30분 정도 돗자리를 깔고 노점 안에 누워서 쉬었다. 김씨는 “물도 갖다 놓고 휴대용 선풍기도 갖다 놓았지만 어지럽고 아팠다”며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폭염 시기 노점상들은 ‘더위’와 ‘수익 감소’의 이중고를 겪는다. 봄·가을보다 수익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고 입을 모았다. 날씨가 더워지면 식재료 등 관리도 어려워진다. 아예 장사를 못 하는 날도 생긴다. 제기동에서 호떡 노점을 하는 신현종씨(59)는 기상청이 최고 기온 33도를 넘길 것을 예보하면 그날 장사를 접는다. 호떡 반죽 관리도 어렵고, 뜨거운 불판 앞에서 일하는 것도 무리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신씨는 “일하다가 몇 번 쓰러질 뻔했다”며 “이번 달에도 며칠이나 더 장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노점들은 구청과 협의해 자비로 캐노피 형태의 구조물을 설치했지만 최근 구청에서 이를 철거해 폭염의 ‘직격타’를 맞고 있었다. 장사 37년 차인 유경자씨(84)와 22년 차 김기남씨(63)는 이런 정책에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6월까지는 그늘막과 전기 사용이 가능한 천막을 설치했는데, 구청장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철거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앉는 쪽은 얼굴부터 등까지 모두 햇빛에 노출됐다. 노점에 둔 온도계는 42도를 넘어가기도 했다. 김씨는 “구청장이 온열질환자 발생을 예방하기는커녕 양산하려 하는 것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시민단체들은 ‘단속과 철거’ 위주 정책의 한계로 노점상들이 폭염에 내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국제 규약에서는 노점상도 ‘비공식 노동’으로 인정하고 상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철거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라며 “기후위기 피해를 보고 있는 노점상이 여름철에 전기를 쓸 수 없게 하는 것은 괴롭힘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동대문구청 관계자는 “캐노피가 너무 지저분하고, 상가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이 있어서 철거를 했고, 10월에 전통시장처럼 캐노피를 설치할 계획”이라며 “서울시에서 예산을 9월에 준다고 해서 임시 천막을 설치해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점은 구청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우선순위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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