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악령 잡는 K-안무, 그 뿌리는 처용에 있다

전남일보 2025. 8. 7. 16:1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58 케데헌과 처용무(處容舞)
기사계첩에 실린 경현당석연도에서 묘사된 오방처용무의 춤사위. 출처 위키백과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파장을 여러 차례 거론하고 있는데, 오늘은 춤 안무(按舞)가 주는 메시지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근자에 한국에서 유행하는 오컬트 장르에 대한 좀 더 깊숙한 분석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춤을 보며 케이팝의 춤도 춤이지만, 벽사(辟邪, 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치는 일)의 춤에 기댄 흔적이 뚜렷하다. 사자보이스의 검은 갓과 도포 자락 즉 저승사자에 기대 연출한 이미지가 이 생각을 부채질하였을 것이다. 

장차 이런 형상의 안무가 우후죽순 시도될 수 있겠다는 기대와 더불어 지난 호 도깨비에 대한 변명을 이어가는 셈이라고나 할까? 사자보이스가 악령의 현신이니 이이제의(以夷制夷) 즉 악령을 내세워 악령을 물리치는 연출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루미를 위해 악령 진우가 몸을 던지는 장면이 그 절정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 처용 설화이다. 

여기에는 지금 민화의 영역으로 포섭된 처용도라는 일종의 부적 그림이 있고 처용설화가 있으며, 무엇보다 처용무와 처용가가 있다. 처용의 노래는 향가 중에서도 핵심적인 위상을 갖고 있는데 프로타고니스트(주인공)로 분장한 '헌터릭스'에 견줄 수 있다. 

처용춤 또한 고려,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벽사 콘텐츠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안타고니스트(주인공에 대적하는 악역)로 분장한 '사자보이스'에 견주어 다룰 수 있다. 사자보이스가 흑단나무 끈을 단 갓을 쓰고 온통 흑색의 장삼 자락을 흔들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리는 디테일이 압권이다. 케이팝 춤의 모사와 챌린지라는 점 외에 저승사자 컨셉이라는 점에서 이 동작들이 갖는 은유를 읽을 수 있다. 

어쨌든 혼문이라는 가상의 경계를 세우고 이를 침범하려는 악령들에 대항해 노래와 춤으로 막아낸다는 것이 영화의 주요 설정이다. 칼과 창으로 무찌를 것인가? 노래와 춤으로 씻길 것인가? 내가 이 애니메이션에 부여한 핵심적인 메시지이기도 한데 노래와 춤으로 악령을 물리치는 컨셉이라면 마땅히 처용의 노래와 처용의 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력이 아니라 오로지 노래와 춤으로 악령을 물리치는 문법이자 철학이 이 오래된 우리의 전통 속에 그윽하고도 풍부하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국립국악원 무용극 처용. 출처 국립국악원

●처용의 춤에서 혼문까지, 애오라지 노래와 춤으로 악령을 물리치는 힘

"통일신라 헌강왕(875~886)때의 일이다. 처용이 아내를 범하려던 역신(疫神, 전염병을 옮기는 신) 앞에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춰서 귀신을 물리쳤다.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그려 지붕에 새기고 문에 붙였더니 역병이 오지 않았다. 이 의례가 고려, 조선까지 궁중나례(宮中儺禮)의 대표적인 무극(舞劇)으로 전승되었다. 처용의 형상들이 여러 가지 도깨비 기와(鬼瓦)나 문(門) 등의 입구, 방패(防牌), 탈(가면) 등으로 재구성되었다. 민속적으로 보면 민간 풍속 전반에 제액(除厄)을 하고, 역신(疫神)을 막는 풍습으로 전파되었으며 궁중 풍속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았다. 처용이라는 명칭은 '삼국유사', '동경잡지', '익재난고' 등 다종다양한 고문헌에도 등장한다. 그만큼 궁중과 민간을 망라한 제액 의례이자 노래이고 춤이었다는 뜻이다." 

졸저 '한국인은 도깨비와 함께 산다'(다할미디어, 2021)의 한 대목이다. 나는 이 책에서 처용을 치우(蚩尤) 형상으로 연결해 설명하였고 이를 다시 고대 중국의 지리책인 '산해경'에 기대어 풀었다. 치우는 밀레니엄 시기 월드컵 등을 통해 붉은악마라는 이름으로 널리 회자되었던 바로 그 형상을 말한다. 궁극적으로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본래 형상이 없던 우리의 도깨비들이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시대변화를 겪으며 어떻게 형상을 가지게 되었고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나거나 지역마다 다르게 분포하였던 의미들은 또 무엇인가에 있었다. 

민화나 부적 그림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에는 처용도(處容圖)라는 부적 백신이 있고 중국에는 '종규(鐘馗)'라는 부적 백신이 있다. 차차 따로 다루겠지만 해마다 정초에 광화문 문짝에 붙이는 민화 문배도(門排圖)의 전신이 종규라는 점을 알아야 우리 문화의 혼종성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각설하고 케데헌에 나오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혼문이다. 나는 이를 두 가지의 시선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혼문(魂門, Gate of Domon)이고 또 하나는 혼문(魂紋, Spirit pattern)이다. 전자의 시선은 데몬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설정에 있다. 마치 우리 민화의 문배도와 민속처럼 춤을 추고 노래하여 물리친다는 뜻이다. 후자의 시선은 애니메이션에서 광범위하게 묘사되었듯이 넓은 파동과 파장 즉 공명의 경계를 만들어 데몬이 뚫지 못하도록 막아낸다는 설정, 즉 음악상자 리토르넬로라는 뜻이다. 

두 시선 모두 거슬러 오르면 처용의 노래와 춤에 가 닿을 수 있으니 이를 어찌 거론하지 않겠는가. 케데헌이 이룬 성과가 현상적인 표현에 그치지 않고 오로지 노래와 춤으로 악령을 물리치는 우리 문법에 닿을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지혜가 요구된다. 현상분석이 아니라 심층 분석이 필요한 이유랄까. 

예컨대 헐리우드 문법은 정복과 영웅 서사를 중심으로 한다. 서양의 신화가 대부분 그렇다. 하지만 우리네 문화와 문법은 처용설화와 춤노래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애오라지 춤과 노래로 악령을 물리친다. 민간의 다종다양한 굿거리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를 우리 문화의 문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러 차례 케데헌을 다루며 춤과 노래로 데몬을 물리치는 서사를 주목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아가 백인사회에서의 유색인종들이 가지는 고립과 소외 혹은 제 3세계인들에게 선물하는 위무와 힐링, 특히 정체성 확인이라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장차 한국의 문화 문법이 인류사회에 기여할 몫이 매우 크다는 점 두고두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화 캡처

●남도인문학팁-한국춤의 문화 문법, 처용 춤의 내력

처용무는 2009년 유네스코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울산광역시는 오랫동안 처용문화제를 연행해왔다. 삼국유사 내용 중 몇 가지만 간추려둔다. 

헌강왕 때, 처용이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와 잠자리를 하는 역신(疫神)이 있었다. 처용이 칼과 창으로 물리칠 수 있었겠지만 그리하지 않고 오로지 노래하고 춤을 추어 물리치니 역신이 물러나며 말했다. "제가 그대의 아내를 사모해 오늘 범했는데, 그대가 노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해 찬미합니다. 맹세코 다음부터는 그대를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이고 경사스런 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왕이 돌아와 영취산 동쪽 기슭에 터를 잡고 절을 지었다. 이름을 망해사 혹은 신방사라 했다. 이어서 '상심'이라는 임금 춤이 나오고 북악의 신이 추는 춤이 등장한다. 노래, 탈놀이, 민화, 의례 등에 대해서는 기회를 보아 따로 설명하기로 하고 향악정재(呈才, 대궐의 잔치 때 연행하던 춤과 노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연행되는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 대해 언급해두기로 한다. 조선전기 향악정재의 하나다.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학무, 연화대무, 처용무를 함께 연행한다. 

'용재총화'에 보면 쌍학과 오방 처용이 나타난다. 중국에서 수입되었던 벽사의례로서의 나례(儺禮)가 한국화되면서 처용무가 벽사의 중심역할을 하게 되고, 궁중에서 민간으로 전파되면서 매우 다양한 장르의 춤과 노래로 발전하게 된다. 민간에서 행해지는 탈놀이 중 처용놀이가 이에 해당한다. 처용이 익살스럽게 변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을 한다. 여자들이 원을 그리고 앉아 그 가운데 주인과 방립을 쓴 처용이 서로 문답한다. 주인이 바가지를 두드리며 도망치면 처용이 주인을 쫓아다니는 형태의 놀이다. 나례가 총칼이 아니라, 음력 섣달 그믐밤에 궁중과 민간에서 악령을 쫓는 춤과 노래, 놀이와 의례였다는 점을 거듭 주목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