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지수' 통과한 2025 한국 영화는
한국영화감독조합, 성평등 지수 '벡델 테스트' 통과한 10개 한국영화 선정
영화 '파과', '검은 수녀들', '그녀에게', '하이파이브', '럭키, 아파트' 등 포함
"여성감독 상업영화 진입 가로막혀 있어…여전히 풀어야 할 당면 과제"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영화 '파과', '그녀에게', '하이파이브' 등 10편의 한국영화가 영화 속 성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은 지난 5일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10개 영화 '벡델 초이스 10'을 발표했다. DGK는 2020년부터 매년 한국 영화·시리즈를 통해 성평등 재현을 돌아보고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는 콘텐츠 페스티벌 '벡델 데이'를 열고 한국 영화의 성평등 정도를 점검해왔다. 올해 심사 대상에 오른 영화는 총 125편이다.
벡델 테스트는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영화 속 성평등이 얼마나 균등하게 재현되는가를 가늠하기 위해 1985년 고안한 세 가지 지수다. △영화 속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사람 나올 것 △여성 캐릭터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것 △이들의 대화 소재나 주제가 남성 캐릭터에 관한 것만이 아닐 것 등으로 구성돼 있다.
DGK는 기존 벡델 테스트에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등 주요 스태프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역할과 비중이 동등할 것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재현되지 않을 것 등 4가지 항목을 추가해 총 7가지 항목에서 영화를 검토했다.
올해 상업 영화에서는 사제가 아닌 수녀를 퇴마 주체로 설정한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과 남성 중심 장르로 인식되던 범죄 느와르 액션물을 여성의 시선으로 해석한 배우 이혜영 주연의 '파과'와 배우 전도연 주연의 '리볼버' 등이 포함됐다. '파과'는 “여성 캐릭터에게 척박했던 장르의 땅을 갈아엎는 근본적 토양 개선 프로젝트”, '리볼버'는 “남성 중심의 범죄 느와르를 여성의 시선으로 전복한 작품”이라는 심사위원의 평가를 받았다.

히어로물로 10대 태권 히어로 완서(배우 이재인)를 주연으로, 초능력을 가진 '야쿠르트 아줌마' 선녀(배우 라미란)를 조연으로 등장시킨 '하이파이브'(감독 강형철)도 “슈퍼히어로물에 성별과 나이의 장벽을 허문 작품”으로 평가됐다.
성평등한 서사와 캐릭터를 꾸준히 만들어 온 독립영화 진영에선 더 다양한 캐릭터와 관계성을 갖춘 작품들이 돋보였다. 쌍둥이 남매를 낳은 여자 주인공 상연(배우 김재화)이 둘째 자녀에게 지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생기는 일을 그린 '그녀에게'(감독 이상철)는 “(상연은) 단순히 좋은 어머니라는 인물을 넘어 경력 단절의 문제까지 고민하는 입체적 캐릭터”라는 심사위원 평가를 받았다. 한국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 시각을 통해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를 반영한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와 성소수자를 향한 사회의 혐오를 현실 스릴러로 만든 '럭키, 아파트'(감독 강유가람)도 선정됐다.

여성들 간의 연대, 관계를 묘사한 작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김혜진 작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레즈비언 딸과 그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딸에 대하여'(감독 이미랑), 임신한 학생과 선생, 사제지간을 통해 서로 다른 세대와 입장 차이를 극복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그린 '최소한의 선의'(감독 김현정), 치어리딩 동아리를 통한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 '빅토리'(감독 박범수) 등이다. DGK 측은 “남성 캐릭터 간의 이해와 소통이 주를 이루던 작품들과 달리 여성 캐릭터 간 상호작용을 통해 캐릭터의 입체성을 발견하게 해줬다”고 세 작품을 평가했다.

이화정 벡델데이 2025 프로그래머는 올해 선정작에 대해 “남성 감독이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만든 작품이 증가했다”며 “여성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매력적인 서사의 중심으로 인정받았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다만 “신인감독의 진입이 저조한 산업의 위기 속에 여성감독의 상업 영화 진입이 더 많이 가로막혀 있는 점은 한국 영화계가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당면한 과제”라고 했다.
'벡델데이 2025'는 내달 6~7일 서울 광진구 KU시네마테크에서 열린다. '벡델초이스10'으로 선정된 작품을 만나는 무료 상영과 콘텐츠 내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토크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영화 부문 심사위원에는 이화정 프로그래머와 영화 제작자 구정아 볼미디어 대표, 민용근 감독, 성찬얼 씨네플레이 부편집장 등이 참여했다. 성평등에 기여한 영상 창작자들을 감독·작가·배우·제작자 4개 부문으로 선정하는 '벡델리안'과 시리즈 부문 '벡델초이스10'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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