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종임 작가, 민화로 전통과 오늘을 잇다
하회마을 초대전부터 청년 클래스까지…‘함께 그리는 전통’ 실천하는 작가

물감과 붓, 그리고 수백 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상징의 언어. 조선시대 서민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예술, 민화.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하고, 정교하지 않지만 인간적인 그 그림이 오늘, 다시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다.
단순한 재현을 넘어 '지금 여기'의 감각으로 민화를 이어가는 작가, 이종임. 그녀는 민화를 통해 전통과 오늘, 예술과 일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
이종임 작가(이종임민화연구소·대구 남구 봉덕동)의 전통문화와의 인연은 민화가 아닌 한지공예에서 시작됐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깊은 매력을 느꼈던 그녀는 한지를 재료 삼아 전통 문양과 기법을 배우며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2009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낙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순한 취미로 시작한 일이 작가로서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종임 작가는 민화를 '삶을 담은 그릇'이라 표현한다. 단순히 전시장에서 감상하는 예술이 아니라, 서민의 일상과 희망을 품은 생활 속 예술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민화는 정형화된 양식이 없고, 작가의 손맛과 감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예술이다. 이종임 작가가 민화에 매료된 것도 바로 이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형식보다 정서와 상징이 중심이 되는 예술,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그림,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민화의 본질이다.

그녀는 "저는 '재현'보다는 '진화'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전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그것이 진짜 살아있는 전통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민화의 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어 흐르는 '이야기의 힘'에 있다. 그리고 이종임 작가는 그 이야기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써 내려가고 있는 셈이다.

이종임 작가는 "민화는 충분히 현대 미술의 경쟁력을 갖춘 장르예요. 감상자와의 정서적 교감, 상징성과 서사가 굉장히 강하거든요. 이걸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면 새로운 미술 시장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이후 그녀는 각종 공모전과 전시회를 통해 민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 활동과 동시에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는 한편, 전통예술의 대중화에도 꾸준히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그녀의 민화 초대전이 성황리에 열렸다. 조선의 풍속과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공간, 하회마을에서 열린 이 전시는 단순한 전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과거의 정신이 고스란히 흐르는 그 장소에서 민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전통과 현대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실현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녀의 작업은 단지 작가 개인의 창작에 머물지 않는다. 이종임 작가는 민화를 '일상의 예술'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박물관이나 전시장 같은 특별한 공간이 아닌,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도 민화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카페나 마을 갤러리, 평생교육원, 학교나 공공기관 복도 한 켠에도 민화가 있을 수 있어야 해요. 누구나 쉽게 보고 느끼고, 심지어 그려볼 수 있어야죠.
그녀는 현재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민화 클래스를 운영 중이며, 앞으로는 그 대상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청년과 청소년도 민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통을 체험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 중이다. "민화는 어렵지 않아요.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누구나 자기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민화를 접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종임 작가의 바람은 단순하다. 민화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언어로 살아 숨 쉬는 예술이 되는 것. 그리고 그 민화를 통해 사람과 전통이 이어지는 것이다. 전통은 기록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함께 그리고, 함께 느끼고, 함께 나눌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유산이 된다. 그녀의 민화가 우리 곁에서 오랫동안 따뜻하게 머물기를 바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