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닭이 가르쳐 준 것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한겨레 2025. 8. 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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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 탬파 이보어 시티의 벼룩시장에서 길닭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남종영 제공

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꼬끼오’

지난해 여름휴가를 갔던 괌의 한 호텔에서 새벽잠을 깼다. 분명 닭이 우는 소리였다. 시내 한가운데 고층 호텔단지에 닭이라니? 닭은 호텔 뒤 재활용 처리장에 있었다. 한마리가 아니었다. 수탉 하나와 암탉 여러마리 그리고 병아리들. 야생 닭과 같은 사회구조를 지닌 닭 무리가 구구거리며 해변 산책을 나가고 있었다. 시내에서도 닭을 보았다. 자동차가 지나간 뒤, 노란 닭이 아장아장 길을 건넜다. 그늘이 드리운 주차장과 풀숲이 있는 곳에선 꽤 많은 수가 돌아다녔다. 한 음식점 출구에는 누가 내놓았는지 물이 담긴 그릇과 빈 그릇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는 장면을 본 것과 같았다. 이들은 영락없는 ‘길닭’이었다.

한국에는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몰아치고 있었다. 밀집 농장에 빽빽이 갇힌 산란계가 하루 십만마리 죽어갈 때였다. 괌에서는 달랐다. 뜨거운 열기가 아스팔트를 녹이는 대낮에 길닭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풀숲에서 쉬다가 해가 질 녘에야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 뒤, 나는 여행할 때마다 길닭(feral chicken)을 찾아다녔다. 의외로 많은 곳에서 닭이 반야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미국 하와이의 섬들, 플로리다의 키웨스트는 물론 마이애미, 탬파 같은 대도시들까지! 이 시대 닭들은 모두 공장식 축산 농장에 고립 통제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닭을 보며 왠지 모를 청량감을 느꼈다.

길닭은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가 잊었던 관계를 인간과 맺고 있었다. 닭에게 모이와 물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칙맘’(chick-mom)이라고 해야 하나? 탬파 이보어 시티에서 본 길닭은 주말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을 기웃거렸다. ‘뭐라도 하나 줘’라고 말하는 듯했다. 허리케인이 오면 사람들은 길닭을 안전한 곳에 모아놨다가 풀어준다고도 했다. 길닭의 역사를 기록하고 역사의 상징으로 남기자는 ‘이버 치킨 소사이어티’라는 모임도 활동한다.

탬파의 길닭은 다른 야생조류와 마찬가지로 보호 대상이다. 물론 길닭에 관해 논란이 없는 건 아니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농작물을 파헤친다며 ‘솎아내기’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괌에서도 길닭은 야생동물로 보호받는데, 2022년 포획 가능 종으로 지정하자는 주장으로 논란이 일었다.

영국 노퍽의 한 시골마을에서도 논쟁이 벌어졌다. 일부 주민은 ‘길닭이 마을에 개성을 부여한다’며 솎아내기를 반대했다. 그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기억을 떠올렸으리라. 어릴 적 시골집 마당에서 보았던, 날개를 휘저어 동네 담장 위로 올라가곤 했던 암탉의 우아함을.

사실 3600년 전 가축이 된 뒤부터 닭은 길거리 생활에 능숙한 종이었다. 타이 반논왓은 최초의 닭 가축화 증거가 발견된 곳이다. 신석기인들은 야생 닭을 계란을 얻으려고 일부러 데려와 길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고학적 증거는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숲에 살던 야생 닭이 인간 마을에 들어와 음식물이나 벌레를 먹으며 머물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이 숲보다 안전하고 먹을 것도 많았다. 인간은 그런 닭을 과시용으로 가까이 두거나 투계용으로 썼고 대부분은 그냥 내버려뒀다. 계란을 많이 낳는 닭으로 유전자가 바뀐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를 보면, 지난 3일까지 가축 146만6271마리가 폭염으로 죽었다. 이 가운데 95.4%인 139만9377마리가 닭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금류다. 닭이 기후변화의 최대 피해자인 이유는 좁은 실내에 몰아넣고 키우는 밀집 사육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을 하루아침에 폐지할 수 없다.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닭의 다양성을 북돋는 일이다. 주변 사람이 마당닭을 키우고 거리에서 길닭을 마주치는 시간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강고한 체제에 균열이 간다. 동물단체 ‘미국휴메인소사이어티’는 매년 동물복지 연구를 지원하는데, 나는 올해 농장동물 분야의 공모 주제가 참 마음에 들었다. 공장식 축산 품종이 아닌 다른 대안 품종을 모색하는 것. 비대한 가슴과 유리 젓가락 같은 다리를 가진 현대의 닭들은 한달 수명에 최적화됐다. 농장 밖을 나가도 살지 못한다.

장난기가 발동해 나는 구구거리는 길닭을 쫓아다녔다. 쫓기던 닭은 보란 듯이 공원 담장 위로 사뿐히 올라섰다. ‘닭 쫓던 개’가 된 나는 이 시대에 희귀한 경험을 해서 즐거웠다. 내일의 닭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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