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새 이정표' 첫 해외 생산기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호주 공장을 가다
<3> 국방-방산 : 세계 6위 군사력, 4대 방산 수출국 노린다
2024년 호주 질롱에 완공한 H-ACE 르포
한국 직원 파견해 생산 기술 이전
현지화 쉽지 않지만 '중장기 포석'
무기판매 넘어 관계증진·교두보로
버나드 필립 豪 국방부 국제정책국장
"방산 분야서 더 긴밀한 협력 원해"

"오는 10월이면 도색까지 완료한 AS9 헌츠맨 첫 차량이 완성됩니다."
지난달 29일 호주 멜버른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질롱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호주 공장(H-ACE)에선 K방산의 새로운 이정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국내 방산업체의 첫 해외 생산기지에서 K9 자주포의 호주 버전인 AS9의 양산 1호기 완성까지 약 두 달여를 앞두고 있었다. 납품은 내년 3월 AS9 6문과 AS10 탄약 재보급 차량 3대가 한 번에 이뤄질 예정이다.
생산라인에선 한국 직원이 호주에서 채용된 현지 직원들과 차체 내부에서 함께 작업하고 있었다. 호주 직원 11명은 공장이 완공된 지난해 8월 이전에 한국(창원 공장)에 와서 교육을 받았지만, 아직 미숙할 수밖에 없다. 질롱에 자동차 공장이 모여있던 시절, 이들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인 탓이다. 하지만 2016년 포드, 2017년 도요타, 2020년 제너럴모터스(GM) 등 질롱 인근에 있던 글로벌 자동차 공장들이 잇따라 사업을 철수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H-ACE가 들어서면서 다시 모여들었다. K방산의 첫 해외 생산기지가 활력이 사라진 호주 제조업에 불씨를 다시 지피고 있는 셈이다.

공장장 격인 이희창 생산총괄 상무는 "방산과 자동차가 다르고, 한국과 호주의 시스템이 다르고, 한국인과 호주인이 생각하는 것도 다르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며 "한국 직원들이 호주인 조장을 교육하면 조장이 다시 호주 직원들에게 전파하는 식인데, 시간은 걸리지만 실제로 조립시켜보면 곧잘 따라한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세계 6위 군사력을 갖춘 대한민국이 4대 수출 강국을 목표로 K방산의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섰다. 단순히 국내에서 만든 무기체계를 판매하는 시대에서, 현지화 전략을 통해 비전을 공유하고 구매국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는 'K방산 시즌2'를 열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해외 생산기지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호주 공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호주를 시작으로 유럽, 중동 등 주요 거점에 생산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단순히 입찰에서 따낸 무기만 팔겠다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현지화를 통해 고용 창출 및 기술 이전으로 중장기적 관계 형성을 노린 것이다. 실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글로벌 행보에 대한 해외의 관심은 뜨겁다. 이 상무는 "최근 미국,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뉴질랜드 등에서 국방부 관계자들이 공장을 방문했다"고 귀띔했다.

다만 현지화가 녹록지만은 않다. 먼저 지속적으로 공장을 가동할 물량을 확보하기가 만만찮다. 약 15만㎡의 공장 부지 한 쪽에선 레드백 장갑차 생산시설 증축 작업이 한창이었다. H-ACE에서 생산될 제품은 2027년까지 AS9 24문과 AS10 12대, 2029년까지 레드백 129대다. 최악의 경우 이들의 납품이 완료되기 전에 추가 수주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공장을 놀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제조업이 약한 호주 현지 협력업체의 기술력이 한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이다. H-ACE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현지에서 50% 이상의 부품을 조달해야 한다. 이 상무는 "현지에서 나름 유사한 업종인 광산 장비 제조업체에 부품을 맡겼는데, 초기에 생산 방식의 차이 탓에 납기가 지연되기도 했다"며 "지금은 기술 협력을 통해 많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화에 나선 것은 그만큼 중장기적 비전이 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벤 허드슨 한화 디펜스 오스트레일리아(HDA) 최고경영자(CEO)는 호주, 유럽, 영국을 모두 관할하고 있다. 호주 시장만을 떼어 놓고 전략을 구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특히 호주군이 운용하고 있는 M1 전차를 통해 미국 전차 유지·보수·운영(MRO) 사업 진출을 모색할 수 있고, 파이브 아이즈(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오커스(미국, 영국, 호주)·쿼드(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호주가 속한 다자 협의체 참여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허드슨 CEO가 중장기 전략에 대한 서면 답변에서 "HDA는 전 세계적으로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중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호주도 본격 가동에 들어간 H-ACE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를 마중물 삼아 한국-호주 간 군사·방산 협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캔버라에서 만난 버나드 필립 호주 국방부 국제정책국장은 이 같은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한국이 군사력과 방산 분야에서 이룬 성과는 정말 놀랍다"며 "우리는 한국전쟁부터 이어진 양국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더욱 발전시키길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필립 국장은 "호주는 한국의 방위 협력을 여러 분야에서 한층 더 강화하고자 한다"며 "특히 방산 분야는 우리가 한국과 더욱 긴밀하게 협력하고자 하는 중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매우 정교하고 발전된 방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H-ACE를 방문했었는데, 이는 단순히 방산 제품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방산 기반을 함께 강화할 수 있는 기회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K방산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지속가능한 협력관계 구축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양국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훈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같은 무기체계를 공유하는 국가 간 합동훈련은 상호 운용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방산 수출과 군사협력은 불가분의 관계로 꼽힌다. 그는 지난달 우리 군이 올해 두 번째로 참여한 '탈리스만 세이버' 훈련을 직접 참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해군·해병대가 수륙 양용 작전과 실사격 훈련을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이들이 호주·미국·싱가포르·일본 부대와 함께 보여준 전투 능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을 찾았을 때 비무장지대(DMZ)도 방문했다. 그는 "DMZ에서 느낀 긴장감은 정말 인상 깊었다"며 "한국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방위 능력을 구축해 왔는지 피부로 느꼈고, 앞으로 호주가 어려운 환경에 직면했을 때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K방산의 현지화 전략은 방산협력을 확대하는 초석으로, 단순한 투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같은 날 만난 말콤 데이비스 호주 전략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H-ACE 설립은 단순한 투자를 넘어 양국 간 전략적 관계 증진의 상징적 사례"라며 "이를 계기로 양국은 한국의 강점인 장거리 미사일, 자율 무기체계, 전자·사이버전 영역까지 협력의 폭을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질롱·캔버라=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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