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49> ‘울산인수부명’ 인화분청사기 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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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장안리 상장안유적에서 출토된 '울산인수부명' 인화분청사기 접시는 15세기 조선 초기 도자기 제조 기술과 국가 공납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접시 안쪽 바닥 중앙에는 국화 무늬와 함께 '울산인수부(蔚山仁壽府)'라는 글씨가 상감되어 있다.
이 '울산인수부명' 인화분청사기 접시는 단순한 도자기를 넘어, 15세기 조선 왕조의 도자 문화와 국가 제도의 한 단면, 그리고 지역 사회의 역사적 흔적이 담긴 유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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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국화 무늬·관청명 상감
- 15세기 기술·공납제 유추 도와
부산 기장군 장안리 상장안유적에서 출토된 ‘울산인수부명’ 인화분청사기 접시는 15세기 조선 초기 도자기 제조 기술과 국가 공납제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접시 안쪽 바닥 중앙에는 국화 무늬와 함께 ‘울산인수부(蔚山仁壽府)’라는 글씨가 상감되어 있다. 주변은 도장 같은 도구로 물결무늬와 섬세한 선을 반복해서 눌러 찍고, 그 홈에 흰 점토를 채워 문양이 돋보이도록 꾸민 인화문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15세기 분청사기에서 널리 사용된 대표적 장식법이다.

특히 이 접시는 소성 과정에서 두 점이 포개져 하나로 굳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덕분에 분청사기 특유의 부드럽고 은은한 빛깔과 형태가 훼손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만약 정상적으로 완성됐다면 한양으로 상납되어 귀하게 사용되었을 공납품이었지만, 제작 과정의 ‘실수’ 덕분에 지역 도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인수부’는 1400년(정종 2년) 왕세자를 위한 관청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한시적으로 운영되었으며, 1417년 이후 공납품의 사적 유용을 막기 위해 관청명을 새기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도자기에 ‘울산인수부’ 명문이 오늘날 전해지게 되었다. 인수부는 1418~1455년, 그리고 1457~1464년까지 존속, 운영되었으므로 이 명문은 제작 시기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기장군 상장안 일대는 조선 초기 울산군 내 두 개의 자기 제작지 중 하나인 남쪽 장안리 자기소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기록에 따르면 북쪽의 제여답리 자기소는 1454년 이후 사라지고, 장안리 자기소는 1469년에 처음 등장한다. 이로 미뤄 볼 때 1454년~1464년 사이 장안리 자기소가 설치된 것으로 보이며, 이 유적에서 출토된 분청사기는 당시 지역 도자기 산업과 국가 공납 체계의 관계를 실물로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이 ‘울산인수부명’ 인화분청사기 접시는 단순한 도자기를 넘어, 15세기 조선 왕조의 도자 문화와 국가 제도의 한 단면, 그리고 지역 사회의 역사적 흔적이 담긴 유물인 것이다. 완성되지 못한 ‘불량품’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조선 왕조의 제도와 지역 도자 문화의 깊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뜻밖의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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