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정치는 말과 인식의 싸움이다. 세계적인 석학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저서『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 내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비교하고 있다. 여기서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한다. "왜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 이익에 반하는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가?"라는 진보의 해묵은 의문에 답하며,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신념이 왜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지 명쾌하게 분석했다.
프레임 씌우기는 정치권에서 대중을 선동할 때 주로 사용된다. 공적 담론의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하면,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게 된다. 프레임 재구성은 이미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에 접근해, 그것이 대중의 담론 속으로 들어올 때까지 반복하는 일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이 주장하는 '내란' 프레임을 '내란'으로 맞서는 것은 범여권의 '내란' 프레임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제목처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이미 머릿속에는 '코끼리'라는 프레임이 작동해 대부분 코끼리를 저절로 떠올리게 된다. 즉, 프레임에 갇혀 버리는 것이다.
'프레임'이란 사람이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어떤 단어를 들으면 우리 뇌 안에서 그와 관련된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오히려 그 프레임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프레임은 자주 활성화될수록 더 강해진다.
따라서 정치 담론에서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활성화된다. 반대로 나의 관점은 약화된다.
그래서 진보는 보수의 언어가 아닌 진보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수는 진보의 언어가 아닌 보수의 언어를 사용해 프레임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의 전략을 보면, 이 기본 원리를 간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가장 격렬하게 작동하고 있는 프레임은 '내란'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12·3 비상계엄 검토 문건 등을 근거로 '내란'이라는 프레임을 가동했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해 '내란'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장동혁 당 대표 후보가 4일 "'줄탄핵'과 '줄특검'으로 계엄을 유발하고 정권을 찬탈한 주범인 정청래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야말로 '내란 교사범'"이라며 주장했고,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의 입법 강행 행위를 "입법 내란"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민주당이 설정한 '내란' 프레임을 되풀이함으로써, 오히려 그 인식을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상대가 '부자 감세'로 공격할 때 '부자감세가 아니다'로 맞서지 말고, '세금 폭탄'으로 맞서야 하는 이유이다.
레이코프의 이론에 따르면, '내란'으로 맞서는 전략은 상대의 프레임을 강화하는 자충수이다. 국민 입장에서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장갑차와 군인이 여의도로 진격한 행동이 내란으로 비칠지, 다수결로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게 내란으로 비칠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상대의 언어를 따라가는 순간 이미 그 싸움에서 지게 된다. 상대의 언어가 반복될수록 국민의 인식 속에 그 프레임은 진실처럼 자리 잡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언어와 시각으로 프레임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힘은 이미 프레임 전쟁에서 패배했다.
손경호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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