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시점주의 〈From you〉] 당신이 묻는 연수구는?…신도심의 생기·원도심 온기가 공존하는 오늘-프롬유

박해윤 기자 2025. 8. 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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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기준 연수구 인구 '40만4791명'
송도, 법정동 설치 이후 꾸준히 늘어
현재 인구 54% 차지…중심축 급부상
옥련동은 뚝…연수1~3동도 감소세
동춘동 지리적 강점…꾸준한 유지

국제도시 간판 달고 몸집 키우지만
화려한 외면 뒤로 묵묵히 과거 지켜
▲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연수구 일대. 송도 신도시의 고층 건물들과 청량산 자락의 자연 풍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천일보 DB

▲'26만2319명 → 40만4791명' 인구가 말해주는 연수구의 변화

2001년, 연수구 인구는 26만2319명이었다. 10년 뒤인 2010년에는 27만9230명으로 소폭 증가했고, 2025년 6월 현재 40만4791명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4년 동안 연수구에 더해진 인구가 14만명에 달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이 어디로 모이고, 어디를 떠났는지에 따라 연수구의 도시 구조와 생활권의 중심축이 완전히 재편됐기 때문이다.

2001년 연수구의 중심은 옥련동과 연수동, 동춘동 등 지금의 원도심이었다. 당시 옥련동 인구는 4만8714명으로 전체의 18%를 차지했다. 연수1동과 연수2·3동 역시 2만5000명에서 3만명대 인구를 유지했고, 동춘동은 4만5000여명, 청학동은 3만4000명에 달했다.

그 무렵 송도는 사람들에게 도시가 아닌 풍경, 혹은 갯벌 그 자체였다. 언제나 개발 계획은 있었지만, 늘 막연한 미래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10년, 연수구의 인구 지도는 서서히 변화의 조짐을 드러냈다. 전체 인구 수 변화는 크지 않았지만, 별도 법정동으로 설치된 지 3년밖에 안 된 송도동의 인구가 이미 4만명을 넘어섰다. 2007년 당시 2만594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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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15년이 흐른 2025년, 송도는 이제 연수구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지역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송도1동부터 송도5동까지 총 인구는 21만8579명. 전체 연수구 인구의 54%에 이른다. 특히 송도4동은 단일 행정동 기준으로 4만9949명이 거주해, 연수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인 곳이 됐다.

반면 원도심의 중심이던 옥련동의 인구는 3만6692명으로 내려앉았다. 연수1~3동 역시 총 인구가 5만145명으로, 2001년 8만5000여명 시절과 비교하면 현저한 감소세를 보인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동춘동은 원도심 중에서 꾸준한 인구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인구가 5만9000명을 넘어섰고, 특히 동춘3동은 세대당 인구가 3.05명으로 연수구 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송도 신도시와 원도심 사이의 중간지점으로서 교통과 생활 인프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동춘 지역의 지리적 강점 덕분으로 분석된다.

송도라는 국제도시의 화려한 이름표를 달고 급격히 몸집을 키워가는 연수구. 도시의 화려한 외면 뒤로, 조금씩 밀려나면서도 묵묵히 과거를 붙잡고 있는 연수구의 원도심들.

연수구는 지금 이 서로 다른 두 세계를 품은 채 새로운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인구 증감이라는 무미건조한 숫자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 삶의 궤적이 숨겨져 있다. 우리가 담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이야기다. 그 변화의 흐름을 독자의 눈높이로 따라가 본다.

<미리보기>

연수구를 이루는 여덟 개의 이야기에는 과거 중심지였던 옥련의 기억부터 국제도시 송도의 오늘, 그리고 그 사이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택이 담겨 있다.
▲ 송도유원지는 인천시민들뿐만 아니라 서울·경기지역에서도 휴양객이 찾아와 1년 내내 북새통을 이뤘다. /인천일보DB
<꿈의 동산 '송도유원지'>편은 유진(32)이 낡은 앨범을 정리하다가 2001년 송도유원지 소풍 사진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시절 소풍지의 대명사였던 송도유원지는 오리배가 떠다니는 인공호수와 대관람차가 있는 꿈의 동산이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뒤 찾아간 송도유원지엔 중고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돼 있었다. 사라진 추억의 공간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 채 변해버린 도시를 마주한 감정을 담았다.
▲ 송도동 연령대별 인구 비교. 
<그들이 송도를 선택한 이유>에서는 광명에서 송도로 이사 온 정호(45)와 혜진(41)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선택한 40·50대 부모들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이들 부부는 3억원의 대출을 감수하고 34평 규모의 7억8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원리금과 교육비로 빠듯한 날들을 보내지만 부부는 서로를 다독인다. "지금 좀 고생하면 우리 아들 지훈이는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어."
▲ 1994년 옥련동. /출처=인천도시역사관
▲ 2019년 옥련동. /출처=인천도시역사관
<그때 '인천의 강남'이었던 옥련> 1990년대 옥련동은 연수구의 중심이었다. 송도유원지를 끼고 생활·문화가 어우러졌고, 새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며 '인천의 강남'이라 불리기도 했다. 박지동(72)은 당시 대전에서 올라와 옥련시장 방앗간을 열었다. "그땐 옥련이 최고였지"라는 그의 회상처럼, 옥련은 연수구의 자부심이었다.
▲ 옥련시장. /인천일보DB
<하나의 도시, 두 개의 시장> 옥련시장과 송도역전시장, 같은 연수구 안에서도 전혀 다른 시장의 운명을 보여주는 사례다. 옥련시장은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 밀착형 시장으로, 정육·청과·분식까지 고르게 장사가 잘된다. 반면 송도역전시장은 수인선 종점이던 송도역과 함께 성장했지만, 폐선과 함께 쇠퇴했다. 임대료 상승, 상인 이탈, 젠트리피케이션의 흔적도 남았다. 최근엔 '특성화시장' 지정 등을 통해 먹자골목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도시 변화에 따라, 두 시장은 각자의 생존 전략을 세워나가고 있다.
▲ 채드윅 국제학교 캠퍼스 일러스트. /자료출처=채드윅 국제학교 누리집
<"국제학교 가까우면 집값이 더 오른대.">편은 초등학생 딸을 둔 수진(42)이 송도 이주 후 처음 마주한 교육 중심의 주거 현실을 그렸다. 채드윅 국제학교 인근 아파트는 1년 새 7500만원이나 올랐지만, 수진이 사는 같은 브랜드 아파트는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남편 연봉과 맞먹는 유학비 이야기를 들으며 수진은 조용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원도심을 택한 사람들>은 모두가 송도를 꿈꾸는 듯한 시대에, '지금 살기 좋은 동네'를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결혼을 앞둔 A씨는 동춘역 근처 30년 된 아파트를 눈여겨본다. 지하철, 학교, 상권이 가까운 '실거주 최적지'라는 판단 때문이다. 40대 직장인 B씨는 2017년 같은 지역에 아파트를 구입해 지금까지 만족하며 살고 있고, 60대 C씨는 한때 이사갔던 송도 생활을 접고 다시 선학동으로 돌아왔다. 화려하진 않아도 편리하고 현실적인 선택이 원도심에 남은 이유였다.
▲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테크노파크역 버스정류장. /사진제공=인천경제자유구역청
<"출근길, 나는 섬을 빠져나온다.">에서는 서울역 인근으로 출근하는 지환(49)의 비 오는 월요일 아침을 따라가며 송도국제도시의 교통 현실을 보여준다. 버스 3대만 다니는 집 앞 정류장에서 18분을 기다린 지환은 1시간 40분 걸려 출근한다. 송도국제도시 전체 시내버스 노선이 23개뿐이지만, 서울역 버스환승센터 4번 승강장에서만 21개 노선이 지난다는 사실은 그에게 씁쓸함을 안겼다. 송도 안에서는 자가용이 필수이지만 송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을 보여준다.
▲ 함박마을 초입구에 세워진 마을 안내 비석. /인천일보 DB

<함박마을 식(食)길라잡이>는 연수구에 자리 잡은 고려인 마을 '함박마을'을 음식으로 따라가 본다. 당근김치, 국시, 만띄, 삼사 같은 낯설지만 정겨운 음식들엔 고려인 이민자들의 기억과 정체성이 배어 있다. 함박마을의 식당들은 생경하면서도 이국적이며, 동시에 따뜻하고 친근하다.

연수구편 - 박해윤 기자

"작년 이맘때 '함박스탄' 기획으로 함박마을을 취재하며 연수구를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이번엔 '프롬유'를 통해 한층 더 가까워져 보려 합니다."

연수구편 - 이나라 기자

"익숙하지 않아서 더 궁금했던 연수구. 이번 기획을 통해 그 낯선 너머의 일상을 천천히 들여다봤습니다. 새롭게 마주한 시선들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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