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부터 김건희까지 이어진 영부인 수사…'지위 법제화' 목소리도
영부인 지위·권한 명문화된 규정 없어…미국은 인정
전문가 “현대 영부인 역할·위상 높아…법제화해야"
(시사저널=김임수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가 역대 영부인들 가운데 처음 '포토라인'에 섰다. 김 여사가 6일 오전 민중기 특별검사팀 첫 피의자 조사를 받기에 앞서 국민에게 남긴 말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는 피의자로서 잘 계산된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영부인은 대통령과 달리 '민간인 신분'이기에 공무원 잣대로 처벌이 불가능하며, 자신을 향한 특검의 수사가 과도하다는 인상을 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김 여사에 대한 특검 수사가 영부인 지위·권한을 명문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민국은 아직 영부인의 권한과 지위를 정의한 명문 규정이 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경호법상 경호와 감찰의 대상이 된다고만 돼 있을 뿐, 공무원 지위가 인정되지 않아 청탁금지법 적용을 받지 않고 뇌물이나 직권남용 혐의의 단독 주체가 되기도 어렵다.
실제 김 여사는 지난해 디올백 수수 의혹 관련 청탁금지법 위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시 이원석 검찰총장은 "대통령 배우자와 관련한 법률상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며 영부인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후 국회에서는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을 정의하고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대통령 배우자법'이 공론화됐고, 대통령 배우자 처벌 조항을 신설한 청탁금지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영부인의 법적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미국 항소법원은 1993년 대통령 배우자가 사실상 정부의 공무원 또는 직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고, 미국 연방법도 대통령 배우자가 대통령의 임무를 지원할 경우 대통령에게 승인된 지원을 배우자에게도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원구원 원장은 "현대 영부인은 그 역할이나 위상이 많이 올라간 데 비해 법적·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상황이다. 미국은 많이 보완해 영부인 활동이 투명한데, 우리나라 영부인 관련 예산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라며 "영부인은 소외 계층 지원 등 대통령의 손길이 채 닿지 않는 곳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한 법제화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익명을 원한 수도권의 한 로스쿨 교수 역시 "대한민국 영부인은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라며 "그동안 영부인 역할에 대해 학문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된 적이 없고, 명확한 기준도 없었다. 기준이 없다 보니 김 여사처럼 어떨 때는 선출된 대통령보다 더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현행 대통령제에서 영부인에 대한 역할을 구체화하지 않는다면 김 여사와 같은 영부인은 또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순자·권양숙은 참고인 소환…김윤옥·김정숙은 소환 불응
한편, 김 여사처럼 피의자 신분은 아니었으나 역대 영부인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의혹에 휘말려 수사기관으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최초의 사례는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다. 이 여사는 남편의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의혹 등으로 2004년 5월 대검창철 중수부에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수십억대 불법 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2009년 4월 부산지검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노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더 진행되지 못하고 종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도 2018년 이 전 대통령의 자동차부품회사인 다스(DAS) 관련 자금 횡령 및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 검찰의 참고인 조사 대상에 올랐으나 실제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경우 인도 외유성 출장 의혹, 샤넬 재킷 의혹 등으로 고발돼 검찰이 수사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 여사는 지난해 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관련해 전주지검으로부터 참고인 출석 요청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았다.
최진 원장은 "김건희 여사의 경우 영부인이 되기 전에 벌인 일로 수사를 받고 있고, 국정 개입 의혹이 너무나 많다는 점에서 다른 영부인들과는 다른 케이스"라며 "김 여사를 계기로 앞으로 국민들이 영부인 자질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판단할 것이다. 김 여사로 인해 영부인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신 소극적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올 텐데,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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