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위한 퇴직연금 기금형 논의

기호일보 2025. 8. 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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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이음연구소장·경영학 박사
김성일 이음연구소장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모든 국민의 안정된 노후를 위해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는 총론에 퇴직연금제도 참여자 모두는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항상 올바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다각적으로 논의되는 여러 기금형 개혁법안과 주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퇴직연금제도 개혁이 '기금형'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지만 그 내용은 제도의 실제 주인인 기업과 근로자의 현실을 외면한 측면이 강하고 이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움직임도 없다. 때문에 시장과 기업과 가입자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결과적으로 근로자의 노후 자산에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첫째, '주인'이 배제된 절차적 정당성의 흠결이다. 모든 성공적인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퇴직연금제도의 실질적 주인은 매년 수십조 원의 부담금을 책임지는 '기업'과 그 제도를 통해 노후를 준비하는 '근로자'다. 이들은 제도의 공급자가 아닌 명백한 소비자다. 하지만 이번 법안의 발의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충분한 실태조사나 공청회 한번 없이 일부 정치권이나 학자의 시각에서 설계된 법안과 제안은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중소기업이 아닌 경우 3개 이상 퇴직연금사업자와 계약을 의무화'한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근로자 선택권 보장'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기업 현장에 미칠 부작용을 세밀히 살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둘째, 수탁법인이 없는 경우 '무늬만 기금형'일 수 있다. 성공적인 해외 기금형 제도의 핵심은 기업과 근로자대표로 구성된 독립적인 '수탁법인(Board of Trustees)'이다. 이 법인이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기금 운용의 철학과 전략을 결정하고 최고의 성과를 낼 외부 운용사를 선정하며 결과에 대해 최종 책임을 진다. 기존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가 사실상의 자회사 격인 '퇴직연금기금 전문운용사'를 직접 설립하거나 겸업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셋째, 운용 성과가 부진할 경우 책임 소재 또한 불분명해진다. 금융기관은 운용사에, 운용사는 시장 상황에 책임을 떠넘기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책임의 공백' 상태가 발생할 것이다. 결국 제도의 도입과 관리에 대한 행정적 책임은 기업이 지고, 운용 권한은 금융기관이 독점하며, 운용 실패의 위험은 고스란히 근로자가 떠안는 매우 불합리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낮은 수익률의 근본 원인은 가입자의 무관심과 운용 주체의 책임성 부재에 있다. 이를 해결할 최적의 방안은 복잡한 기금형이 아니라 가입자의 선택권과 전문가의 책임성을 극대화하는 '퇴직연금사업자 투자일임형'의 도입이다. 이 제도에는 다음과 같은 명확한 장점이 있다.

우선 책임 소재가 명확하다. 퇴직연금사업자는 계약에 따라 가입자의 자산에 대해 직접적인 수탁자 책임을 지며 성과 부진 시 언제든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또 건전한 시장 경쟁을 촉진한다. 다양한 운용 철학과 전략을 가진 수많은 퇴직연금사업자들의 경쟁은 자연스럽게 전체 시장의 서비스 질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진다. 아울러 가입자의 실질적인 선택권을 보장한다. 

결국 사회적 합의를 통한 올바른 제도 설계가 필요한 것이다. 기업과 근로자의 현실을 외면한 여러 접근은 원점에서 다시 고려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입법이 아니라 제도의 주인인 기업과 근로자를 포함해 정부, 국회, 금융계, 학계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미래지향적 퇴직연금제도 설계를 위한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우리 실정에 맞는 최적의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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