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도 못 먹고 헥헥”…제주 양돈농가, 물 뿌리고 팬 돌려도 역부족

원소정 기자 2025. 8. 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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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난, 위기의 산업현장] ④ 전기요금·분뇨처리비 늘고 출하 지연까지
폭염은 단순한 계절 현상이 아닌 '재난'으로, 기후위기가 만들어낸 일터의 생존 리스크가 됐다. 해마다 폭염 일수는 증가하고, 그 강도와 시기도 예측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특히 건설, 농업, 어업, 물류 등 야외 노동이 필수적인 현장은 무더위의 직격탄을 맞고 있음에도, 제도적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제주의소리]는 폭염 속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달라지는  기후 양상과 대응체계 등 현장의 기록을 짚어본다. 
6일 오전 10시께 찾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한 양돈농가에서 돼지들이 더위에 지쳐 쓰러져 있다. ⓒ제주의소리

6일 오전 10시께 찾은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한 양돈농가.

거대한 냉풍기가 '윙윙' 돌아가고 있었지만, 축사 안 돼지들은 힘 없이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사료통엔 사료가 그대로 담겨 있었지만, 더위에 지친 돼지들은 입만 벌린 채 헥헥거릴 뿐이었다.

일부는 호스에 입을 대고 차가운 물로 더위를 식혀보려다 이내 포기하고는 다시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축사 바깥 온도계는 27.2도를 가리켰다. 흐리고 비까지 내려 기온은 높지 않았지만, 습도가 무려 97.3%에 달해 체감온도는 훨씬 더 높았다. 축사 안은 마치 사우나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열기로 가득했다.

약 3000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는 40대 농장주 강모씨는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는 "돼지는 사람처럼 땀샘이 없어 호흡으로 체온을 조절하는데, 더위에 지치면 사료를 잘 먹지 않고 물만 마시게 된다"며 "그러면 당연히 성장은 늦어지고, 물을 많이 마신 만큼 분뇨도 많아져 처리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농장주 강모씨가 호스의 물이 잘 나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에어컨 바람이 호스를 통해 축사로 불어져 나온다. ⓒ제주의소리

더위를 식히기 위해 냉방 설비를 사용하면서 여름철에는 평소보다 전기세만 한 달에 150만 원가량 더 든다.

강씨는 "평소엔 180일 키워 출하하던 돼지를 여름에는 성장이 더뎌 200일까지 키워야 한다"며 "출하가 늦어지면 그만큼 판매 물량도 줄고, 축사엔 돼지가 꽉 차버려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 그러면 더 안 크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마다 더위가 심해지고, 그 기간도 점점 길어지면서 양돈농가는 해마다 반복되는 '폭염 대응 투자'를 감당해야 한다.

강씨는 "최근 전기 용량을 늘리기 위해 승압 공사만 2000만 원 들었고, 5000만원을 들여 냉풍기를 두 대 추가로 들였다"며 "겨울엔 쓸 일도 없는 장비인데 여름 3개월 때문에 이런 지출을 반복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그는 "경매에서 1㎏당 최소 6000원은 받아야 본전을 칠 수 있는데, 지난 봄엔 4000~5000원대였다"며 "그나마 여름에 벌어 둬야 봄철 손해를 메울 수 있는데, 기온은 계속 오르고 전기료도 오르니 해마다 시름만 깊어진다"고 말했다.
축사에 설치된 거대 냉풍기. ⓒ제주의소리
냉풍기 온도를 24도로 맞췄으나, 실내 온도는 그보다 높은 27.9도다.ⓒ제주의소리

농가들은 이제 단순한 폭염이 아닌 기후위기 문제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

강씨는 "예전엔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버텼지만, 지금은 선풍기, 냉방기, 물까지 총동원해야 한다"며 "이젠 태풍보다 폭염이 더 무섭다. 점점 더 일찍 찾아오고, 더 오래간다"고 했다.

폭염 피해는 강씨 농장만의 일이 아니다. 제주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5일까지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은 총 2674마리에 달한다.

돼지 2211마리, 닭 463마리 등 38개 농가가 가축재해보험에 피해를 신고했다. 보험 미가입 농가 등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농가들은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여름이 일상이 된 지금, 농가들의 개별적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변화하는 기후에 맞춘 제도적 지원과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돼지는 땀샘이 없어 호흡으로 체온 조절을 하기 때문에 더위에 더욱 취약하다.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