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봤던 그 금액이 아닌데? ‘눈 뜨고’ 당하는 여행 플랫폼

노유정 기자 2025. 8. 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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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자크기·가격 순차공개로 눈속임… 온라인 ‘다크패턴’에 소비자 눈물
‘세금 및 봉사료 제외’ 작게 표기
처음 본 금액 - 결제금액에 차이
‘마감 임박’ · ‘마지막 객실’ 문구
소비자 급한 마음에 빠른 결제
관련 불만 1년새 76%나 ‘급증’
내주 단속… 글로벌업체는 제외
그래픽 = 권호영기자

“제가 인지한 가격보다 더 비싼 숙박 요금이 청구돼 바가지를 쓴 기분이 들었습니다.”

8월 휴가철 가족 여행을 위해 숙소 예약을 알아보던 김모(35) 씨는 한 해외여행 중개 플랫폼을 이용하다가 크게 당황했다. 처음 검색했을 때 본 가격과 최종 결제한 금액이 달랐기 때문이다. 애초 김 씨가 태국 방콕 4박 5일 여행 일정으로 성인 2명·아동 1명이 묵을 방을 검색했을 때, 4성급 호텔 디럭스룸이 1박당 15만 원이라는 가격으로 나왔다. 하지만 최종 결제창으로 넘어가자 ‘세금 10만 원’이 추가 청구됐다. 총 요금은 60만 원대에서 70만 원대로 껑충 뛰었다. 그는 금액을 주의 깊게 보지 않고 서둘러 결제했다가 되레 타 플랫폼보다 비싼 비용에 숙소를 예약했다. 김 씨는 “세금을 뺀 금액이라는 내용은 조그맣게 표시돼 있어 보지 못했다”며 “‘마감 임박’ ‘마지막 남은 객실’이라는 문구도 있어 저렴한 숙소를 놓칠까 봐 다급한 마음에 급히 결제를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근 여름 휴가철을 맞아 국내외 여행객들이 급증하는 가운데 아고다나 부킹닷컴 등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OTA)을 이용했다가 이른바 ‘다크 패턴’으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크 패턴은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특정 행위를 유도하도록 설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뜻한다. 예컨대 우선 저렴한 상품 가격을 보여주고 실제 청구되는 총금액은 여러 단계를 거친 뒤에야 확인할 수 있게 한다거나, 계정 탈퇴 및 취소·환불을 선택하기 어렵도록 작은 글자로 구석에 잘 보이지 않게 배치하는 방식 등이다.

6일 주요 글로벌 OTA 홈페이지를 살펴본 결과 다크 패턴 적용 사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 아고다 홈페이지에서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부산 해운대 호텔을 검색한 결과, 한 4성급 호텔의 오션뷰 트윈룸이 ‘30만5400원’으로 나타났다. 그 아래 절반 크기도 안 되는 작은 글자로 ‘1박당 요금(세금 및 봉사료 제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자칫 확인하지 못하고 페이지를 넘길 여지가 있었다.

이어 ‘지금 예약하기’를 클릭해 예약 및 결제 화면으로 넘어가자 실제 금액이 달라졌다. 오른쪽 구석에 떠오른 작은 결제창에는 최초 공급가에서 아고다 자체 할인이 적용된 뒤 다시 ‘세금 및 제반 요금’이 추가된 요금이 제시됐다. 복잡한 셈법을 통해 더해진 요금은 무려 12만8166원에 달했다. 최초 예약 페이지에는 1박 30만5400원(2박 61만800원)으로 명시돼 있던 숙소 2박 요금이 최종적으로 73만8486원으로 늘었다.

일부 숙소는 해당 업체의 ‘포인트 캐시백’까지 숙소 가격에서 공제해 보여줬다. 해당 플랫폼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실제 청구되는 금액에서 포인트 금액을 뺀 가격이 실제 숙소 가격인 것처럼 큰 글자로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가 실제 결제해야 할 금액은 포인트 캐시백 적용 전 금액이었다.

이외 ‘지금 바로 예약하지 않으면 요금이 인상될 수 있으며, 객실이 판매 완료될 수 있다’ 등 소비자에게 예약을 독촉하는 팝업창도 연이어 떠올랐다. 다만 또 다른 글로벌 OTA 회사 호텔스닷컴과 익스피디아의 경우 최초 예약 페이지에서 세금을 포함한 금액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글로벌 OTA 업체 이용자가 늘면서, 다크 패턴 문제로 인한 소비자 불만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온라인을 통한 해외 직접거래’ 관련 상담을 살펴보면, 주요 글로벌 OTA 7개 사 관련 상담 접수 건이 6709건으로, 직전 연도(3811건) 대비 76% 급증했다.

이런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는 다크 패턴 문제에 칼을 빼 들었다. 전자상거래법을 개정해 6개월간 계도기간을 거쳐 오는 13일부터 본격적인 단속에 착수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국내법 규정이 글로벌 OTA에는 적용되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본사가 대부분 해외에 있는 글로벌 OTA 업체는 한국에 법인 등록이나 여행업 등록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소비자원·공정위가 강제 조사·처분을 집행하기 어렵고, 조사·시정 권고 수준에서 대응하는 실정이다.

국내 OTA 업계에선 역차별을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사업자에 대한 등록 의무와 실질적 제재 수단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국내 소비자 보호와 시장질서 모두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외 OTA를 포함한 이용자 권익보호 조항을 신설하는 ‘관광진흥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해당 법안은 해외 OTA까지 전자상거래법에 따라 여행상품 유통 및 거래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관리·감독을 받게 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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