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도 아는 ‘청소년 도박꾼’...얼마 벌었냐 “200밖에 안 잃어!”

박성우 기자 2025. 8. 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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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의섬 갇힌 제주 청소년] ① 사이버 도박, 청소년 또래 놀이문화 전락

재미로 시작된 청소년 사이버 도박이 단순한 일탈을 넘어선지 오래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손쉽게 불법 도박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고, 판돈 수십만 원이 눈앞에서 오가며 감각을 마비시킨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도박이 또래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놀이라는 포장 아래, 10대들은 돈을 잃고 관계를 잃으며, 때론 범죄로까지 내몰린다. [제주의소리]는 세 차례에 걸쳐 지역 청소년 사이버 도박의 현 주소와 파생 범죄, 그리고 지역사회 대책의 실효성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저 정도면 좀 치는 편이에요. 500만원 넘게도 따봤고요."

제주지역 시외권 한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A군(18)은 자신의 '온라인 베팅 무용담'을 서슴 없이 꺼내놓았다. 불법임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감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스포츠 경기의 승패를 맞추기 위해 몇 번의 클릭으로 수십만원이 오가는 판에 뛰어든 건 오래전 일이었다. 

'역배(확률이 낮은 쪽에 건 도박)'가 성공해 한 번에 수백만 원을 따보기도 했다는 A군은 주변 친구들에게 베팅을 조언해주는 '통'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짐짓 놀란척 '그렇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딴 것이냐'고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번 주에 잠깐 실수해서요. 지금은 200밖에 안 OO어요!('돈을 잃다'는 뜻의 속어)"

잃은 금액이 대수로운 눈치는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당연한 일처럼 여기고 있는 셈이다. 더 놀라운 건 이런 대화를 친구들 사이에서 자랑거리처럼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인터넷 도박사이트에 손쉽게 접속하고 있는 제주지역 한 청소년. ⓒ제주의소리

지금은 학교를 떠난 B군(17). 부모와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한 달 전쯤부터 온라인 도박에서 손을 끊었다고 했지만, 그의 스마트폰엔 여전히 사설 도박사이트 어플리케이션이 남아있었다.

화면 잠금을 해제하자마자 접속 가능한 화면이 떴다. 매우 익숙한 손짓이었다.

"이것저것 다 해요. 카드도 있고 룰렛이나 슬롯도 있어요. 여기(해외 포털사이트)나......여기(동영상 플랫폼)에서도 검색하면 다 떠요."

B군이 주 종목으로 택했던 도박은 '바카라'다. 카드 두 장을 뽑아 어디가 이길지를 맞히는 게임으로, 구조가 단순해 접근성이 용이했다. B군이 접속한 불법 도박 사이트의 화면에는 주말 오전 시간임에도 딜러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룰만 보면 사실상 '홀짝'을 맞추는 게임이어서 겉으로 보기엔 확률이 50대 50이다. 

"제가 100만원을 들고 있다면요. 100만원을 한번에 거는게 아니라 10만원만 거는거에요. 그래서 따면 20이 되는거고, 잃으면 다음판에 20만원을 거는거고요. 20만원을 잃으면 다음판엔 40만원을 거는 거에요. 한 번만 맞히면 다 복구돼요."

자신을 비롯한 또래들이 도박에 빠져드는 사고 체계를 설명한 B군. 단순히 보면 틀린 논지는 아니지만, 이 전제가 성립되기 위해선 도박에 들이는 자금을 무한정 쥐고 있어야 한다.

딜러가 교묘하게 확률을 조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령 판돈이 더 많이 몰리는 베팅을 고의로 패배 처리하듯, 얼마든지 의심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B군의 생각은 달랐다.

"먹튀('먹고 튀다'를 줄인 속어)하는 사이트들이 솔직히 많기는 해요. 실제로 먹튀 당한 친구들도 있고요. 재수가 없는 거죠. 그래도 메이저 사이트들은 안그래요."

사설 도박사이트 이용은 명백한 불법이다. 청소년의 경우 부모나 친구 명의 계좌나 휴대폰을 도용해 가입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도박은 적발이 어렵고, 대부분의 청소년은 게임처럼 가볍게 시작했다가 중독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제주 한 청소년이 접속한 온라인 도박사이트. 주말 낮 시간에도 거액의 베팅이 오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무엇보다 접근성에 있어 너무나 취약한 구조다. 검색 한번에 다다를 수 있는 사이트도 있고, 좋은(주로 환전이 빠른) 사이트는 알음알음 또래 집단 사이에서 공유되곤 한다. 

정부 차원에서 불법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지만, 좋게 표현하면 중과부적(衆寡不敵, 적은 수로는 많은 수에 대적할 수 없다는 고사성어)이고, 달리 보면 '눈 가리고 아웅' 식이다. 

B군이 소개해 준 사이트 도메인 주소 'xxx' 뒤에는 '103'이라는 숫자가 붙어있었다. 이 사이트가 차단될 시 같은 도메인 뒤에 '104'를 붙이면 같은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 도박이 또래집단에서 일종의 '놀이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2년마다 전국 단위로 조사하는 '청소년 도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도박을 경험해 본 청소년 565명을 대상으로 할 설문조사 결과(복수응답), 도박을 경험한 이유는 '친구와 같이 놀기 위해서'가 42.4%로 가장 높았다. 

차순위로 답한 '친구·선후배가 추천해서(31.8%)' 역시 맥락은 같았다. '용돈이 필요해서'라는 응답은 30.9%였다.

도박을 지속하고 있는 청소년에게 이유를 묻자 가장 많은 40.5%의 청소년들이 '돈을 따는 것이 재미있어서'라고 응답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12.1%,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어울리고 싶어서' 9.3%, '하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을 것 같아서' 4.6% 등의 응답 역시 도박이 또래집단의 문화로 침투했다는 방증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