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장관이 노사 중립적이어야 할까? [하종강 칼럼]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브라질에 며칠 와 있는 중이다. 장애인 관련 단체 활동에 합류했는데, 상파울루에서 밤늦은 시간에 버스로 출발해 예닐곱 시간을 달려 다음날 아침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해서 낮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다시 그곳에서 밤늦게 버스로 출발해 예닐곱 시간을 달려 아침에 상파울루로 돌아와 남은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이다.
“한국에서도 못 해본 무박3일 일정을 칠순이 넘은 나이에 브라질까지 와서 해야 되겠냐”고 푸념했지만, 주최 쪽 대표자는 “우리는 이렇게 자주 진행합니다. 의자 뒤로 눕히고 편히 주무세요”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도 기꺼이 감당하는 일정을 비장애인이 나이가 좀 많다고 불평하기는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진행하면 2박3일 동안 수십명의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운전기사 2명이 탑승해 교대 근무하면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 오래전, 서울역 앞에서 밤늦게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보성 차밭 일대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무박2일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운전기사 한 사람이 운전을 감당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선진국 대한민국이 유독 노동 분야에서는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피부로 느껴졌다.
한국의 언론사 기자들과 지인들로부터 김영훈 노동부 장관 취임 이후 노동정책에 대한 전망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등에 대해 의견을 묻는 연락이 계속 와서 잠깐이라도 우리나라 노동문제를 잊고 있기는 어려웠다.
김영훈 장관이 취임 전 언론과 가졌던 첫 인터뷰에서 남지현 한겨레 기자가 과거 민주노총 위원장이었을 때와 노동부 장관으로서 생각의 차이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저의 출신이 어디인지를 항상 기억하겠습니다마는 저는 지금 모든 일하는 시민들을 대표해서 노동 행정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답변을 들으며 좀 의아했는데, 아는 사람 중 두어명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연락을 해 왔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의 주인공 구고신 노동상담소장의 명대사를 인용한 것인데, 그 대사를 정확하게 옮기면 다음과 같다.
“노동운동 10년 해도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인간이란 말이오.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그러니까 이 대사의 본뜻은 “서는 데가 바뀌어 풍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생각까지 바뀌지는 말라”는 당부이다. 최규석 작가에게 김 장관의 발언을 전하면서 “‘송곳’의 명대사를 거꾸로 해석한 것 아니냐?”고 했더니 “제대로 인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서 나도 가끔 헷갈린다”고 농담을 한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장 영민한 노동운동가일 뿐만 아니라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을 장학생으로 다녔던 김 장관이 이 미묘한 차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그 발언을 보면서 나는 김 장관이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고 하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이었을 때의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다”는 속내를 그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 장관이 서울 세종호텔과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장기 농성장을 찾은 것을 두고 노사 중립적이지 않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를 시작으로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에 이르기까지 정부 부처 대부분이 기업의 시각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곳이다. 심지어 보건복지부도 병원 경영자의 시각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는 반대편으로 힘을 가해야 가운데로 서는 ‘중립’이 가능해진다. 노동부 장관이 전심전력으로 노동자 입장에 선다고 해도 정부 조직 안에서는 ‘중과부적’이다.
철도노조가 파업을 벌였던 오래전, 한 지방본부의 조합원 교육을 마치고 나오다가 김영훈 노조 위원장과 마주쳤다. 김 위원장이 “바쁘신 양반이 어떻게 교육 일정을 잡았냐?” 묻기에 “이미 오래전에 일정을 잡았다”고 했더니 대번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나도 모르게 장기 파업 계획을 세웠던 거야.” 위원장의 짐작보다 현장의 파업 열기가 더 뜨겁다고 흐뭇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파업 결정은 중앙에서 하지만 실제 파업은 각 지역 현장의 활동가들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진행한다. 승패는 풀뿌리 현장에서 결정된다. “변방이 창조의 시작”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다. 노동부 장관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성패는 여전히 노동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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