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차림,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체 [신진욱의 시선]


신진욱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대선 뒤 두달이 지났다. 한국 사회는 12·3 친위쿠데타로 민주주의 붕괴와 군에 의한 잔혹한 국가폭력을 겪을 뻔했을 뿐 아니라, 수개월간 윤석열 정권과 극우 세력의 헌정 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자칫 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극한의 불안을 겪었다. 1987년 이후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이 같은 국가적 위기 끝에 마침내 탄핵과 정권교체를 이루어 이제 사회가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우리는 반드시 ‘12·3의 교훈’을 명확히 하고 그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쿠데타가 만약 성공했다면 실현되었을 세상은 끔찍하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은 국회, 정당,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하며,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폐지한다고 했다. 내란 세력은 정권에 비판적인 정치인, 판사, 언론인, 성직자, 노조, 선거관리위원들,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을 대거 체포, 수용, 처형할 계획이었고, 국민의힘과 정부의 많은 고위층이 이를 공모, 동조, 묵인, 비호했다.
그래서 윤석열은 탄핵됐고 정권은 바뀌었지만 우리에겐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대체 무엇이 문제였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에 서 있는가? 왕놀이를 즐기다 칼을 휘두르더니 이젠 속옷 차림으로 누워버린 벌거벗은 임금님의 실체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이번 위기 동안 이 나라의 상당수 파워엘리트가 극우적 신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윤석열은 그동안 보여온 폭력적 사고를 계엄국가라는 실체적 국가폭력으로 실행했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정부, 여당, 군, 학계, 법조, 언론, 종교계의 적잖은 인사들이 이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극우 세력은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뉴라이트 때부터 공고해진 극우 파워엘리트의 촘촘한 네트워크가 저변의 구조적 실체이며, 그것은 지금도 건재하다.
국민의힘은 그 같은 극우 집단들에 사실상 접수되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김문수는 2020년에 전광훈과 함께 기독자유통일당을 창당하고 당대표를 맡은 인물이다. 이제 그는 국민의힘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자유통일당 대선 후보 구주와는 김용현의 변호인이다. 또한, 최근 국민의힘에 입당하여 당대표 후보 검증을 자처하고 나선 전한길은 또 다른 극우 지도자 손현보 목사의 동료다. 이제 국민의힘은 뉴라이트, 김용현파, 전광훈파, 손현보파 등 온갖 극우 세력의 집결지가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극우적 ‘이념’은 부패한 ‘이익’과 은밀히 연결되어 있다. ‘자유민주주의’, ‘애국보수’, ‘멸공’을 내걸었지만, 실은 윤석열과 김건희, 그 엄마와 오빠, 승진하려는 장군들, 출세하려는 검사, 총리, 장관들의 사익을 채우기 위해 헌정을 파괴하고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 12·3의 본질이다. 윤석열, 김건희와 그들의 가족, 친구, 지인, 거래 파트너들이 국민의힘 당내 경선과 공천에 개입하여 이득을 챙기고 당을 장악했다는 증거들이 특검 수사로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종교도 정치권과 유착 관계에 깊이 얽혀 있다. 윤석열 탄핵 반대의 중심에 극우·보수 개신교 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윤석열과 김건희의 곁에는 또한 천공, 건진법사, 내란을 총지휘한 ‘아기보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 많은 무속인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천지, 통일교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나 당대표 경선에 신도들을 입당시켜 당선을 돕고, 윤석열과 친윤 정치인들은 특혜를 제공하는 식으로 거래했다는 혐의도 수사 중이다. 이런 수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거대한 에큐메니컬(ecumenical)부패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체제는 극우 파시즘의 잠재성을 다분히 갖고 있다. 사회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파시즘이 자본주의에 내재한 ‘반민주적 바이러스의 가장 악성적 형태’라고 했는데, 이는 민주적 방식으로 지배할 능력이 없는 기득권 집단의 이익 추구와 반민중적 혐오야말로 대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을 증폭하고 동원하는 진정한 힘이라는 뜻이다. 한국은 이러한 파시즘의 일반 논리에 더하여 반공극우 테러와 군사독재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까지 있기 때문에, 유혈적 파시즘의 위험성이 특별히 큰 나라다.
한국의 극우 정치세력은 서구의 우익 정당들에 비해 이념적 세련성, 문화적 자산, 통치 능력이 모두 취약하지만, 그 야만성과 폭력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일단 한번 정치권력을 획득했을 때 국가기구를 사유화하여 권력을 영구화하려는 것이다. 유럽의 극우들이 담론과 정책을 더 교묘히 하여 선거에서 다수를 획득하려는 데 반해, 한국의 극우는 선거로 집권한 뒤 아예 선거를 폐지하는 셀프 쿠데타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에겐 ‘권력’이 주어져선 안 된다.
앞으로 이들에게 정치적 재기의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탄핵 정국 동안 국민의 압도적 다수는 민주주의를 옹호했고, 계엄·극우 세력에 동조하는 여론은 헌법재판소 선고와 대선을 거치며 더 감소했다. 아직도 ‘윤 어게인’을 외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0%로 추락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2004년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고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압승했을 때, 2017년에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많은 이가 ‘보수정치 궤멸’을 전망했지만, 그들은 불과 2년 뒤 재기해서 정권을 되찾았다. 이 악순환의 사이클을 이번엔 끊어야 한다.
이상의 역사와 구조를 돌아봤을 때, 이 나라에서 극단과 폭력을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공고히 하려면 다음 세가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첫째, 사회의 다수가 극우적 주장과 행동에 분명히 반대하여 이 사회의 합의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해야 하며, 정부는 법의 커튼 뒤에 있는 정치, 종교, 극우 세력의 불법적 이권 네트워크를 해체시켜야 한다. 둘째, 극우 이념 및 세력과 철저히 단절하는 민주적 보수가 정당정치와 사회에서 세력화되어야 한다. 민주당을 찍을 수 없는 유권자들에게 극우가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선 안 되며, 극우들이 보수를 참칭하게 놔둬선 안 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하게는 민주 정부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통합의 정치와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으로 다수의 지지 연합을 안정화해야 한다. 이 중 어느 것도 단시간에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야만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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