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크게 기대할 것도, 불안할 것도 없다

이진희 2025. 8. 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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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시간)은 유한하고 열정(에너지)도 용량이 있고, 기자생활 또한 길게 남지 않은 관계로, 언제부턴가 충분히 다뤄야 할 가치 있는 주제 중에서 에너지를 쏟을 대상뿐 아니라 덜 쏟을 대상을 정리하는 것에도 의식적으로 신경을 쓴다.

나름의 기준은 ①나 말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쏟고 있는 주제, ②옳은 방향이어도 그다지 현실을 크게 바꿀 것 같지는 않은 내용일 경우엔 관심의 후순위로 미뤄놓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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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상 이미 시행된 노란봉투법
경영계의 우려, 과도한 측면 많아
대다수 하청은 노조 없어 '무혜택'
전종덕 진보당 의원(뒷줄 오른쪽)이 지난달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가 열린 소회의실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여야 의원들에게 '온전한 노조법 2·3조(노란봉투법) 즉각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생(시간)은 유한하고 열정(에너지)도 용량이 있고, 기자생활 또한 길게 남지 않은 관계로, 언제부턴가 충분히 다뤄야 할 가치 있는 주제 중에서 에너지를 쏟을 대상뿐 아니라 덜 쏟을 대상을 정리하는 것에도 의식적으로 신경을 쓴다.

나름의 기준은 ①나 말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쏟고 있는 주제, ②옳은 방향이어도 그다지 현실을 크게 바꿀 것 같지는 않은 내용일 경우엔 관심의 후순위로 미뤄놓는 편이다.

고백하자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그렇다. 노동계와 진보 언론에서 가장 열정을 쏟아온 대상이어서 나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내 몫의 열정은 대부분의 언론이 관심 없지만 노란봉투법 못지않게 중요한 중간착취방지법에 쏟는 게 낫겠다 여겼다. 또 대법원이 이 법의 취지에 상당부분 부합하는 판례를 형성했기에 노란봉투법은 어떤 측면에서(소송까지 간다면) 이미 현실화되어 있다. 즉 바꿔 말하면 노란봉투법이 생겨도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여기진 않는다.

‘크게 변할 게 없다’는 말은 노란봉투법의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 모두를 빈정 상하게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갈등을 달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이미 2023년불법파업 손해배상에 대해 “개별 조합원의 책임 비율은 노조 내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현실적인 임금 수준 등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했고,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원청을 하청의 사용자로 인정한 것은 무려2010년이었다.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현실이 크게 바뀌려면, 사측이 파업 손해배상 소송 자체를 내지 않거나 특정 하청 노조에 대해 자신을 ‘실질적 사용자’로 인정하고 교섭에 응해야 한다. 과연 기업들이 그럴까. 노동 친화적인 정권에서는 잠시 그런 시늉을 할 수 있지만, 결국엔 대부분 소송까지 갈 것이다.

그나마 판례의 취지를 법에 명시함으로써,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에 좀 더 확신을 가지고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 변화라면 변화일 테지만 말이다.

물론 판례에 없는 새로운 내용도 있다. ‘정리해고’ ‘사업장 해외 이전’ 등 근로조건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영상 결정도 쟁의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다. 기존 쟁의범위인 ‘임금·근로시간·복지 등 근로조건의 결정’보다 더 노동자 생계 여탈권이 달린 문제니, 협의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경영계에서 “아무 때나 파업할 것”이라 우려하는데, 주요 선진국들은 한국보다 파업 가능 범위가 훨씬 넓다. “(파업 시) ‘무노동 무임금’이기 때문에 비이성적 파업이 늘어날 가능성은 없을 것”(정흥준 서울과기대 경영학과 교수)이란 진단이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명심할 지점은 노란봉투법의 혜택도 결국 소수의 조직화된 노동자(2023년 노조조직률 13%)에게만 돌아간다는 점이다.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 등 찍소리 한마디면 잘릴 수 있는 비정규직(임시·단시간·간접고용·특수고용 노조조직률 2.77%)은 노조를 만들지도, 감히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청하지도 못한다. 이것은 노란봉투법이 담지 못한, 이 법의 제정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지배적이고 무참한 현실이다.

그러니 노란봉투법을 과찬할 것도, 폄훼할 것도 없다. 씁쓸하고 냉소적인 결론이긴 하지만, 경영계가 노란봉투법을 두고 과한 불안을 조장하는 상황이니 지금은 ‘그럴 필요 없다’는 정도의 의미로서 강조하고 싶다.

이진희 사회정책부장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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