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82] 중년 남성의 ‘택시 뒷좌석 냄새’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2025. 8. 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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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좋아한다. 정정하자. 향수를 좋아해야 한다. 나 같은 중년 남성은 특히 그렇다. 과학적 이유가 있다. 중년이 되면 피지선 활동이 바뀐다. 노네날이라는 화합물이 피부에서 생성된다. 찬장 구석에서 20년 만에 발견한 뚜껑 열린 카놀라유 끼얹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노화는 참 염치가 없다.

중년 여성도 노네날이 생긴다. 유독 남성만 냄새난다는 욕을 먹는다. 중년 남성이 ‘감각 소비’에 무심한 탓이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나를 표현하려 돈을 쓰는 게 감각 소비다. 향수는 대표적 감각 소비재다. 중년에게는 감각 소비재가 아니다. 필수 소비재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인간 감각 중 가장 무딘 것은 후각이다. 무디다는 건 적응력이 빠르다는 소리다. 후각은 계속 자극받으면 민감도를 자동으로 낮춘다. 내 냄새에는 금방 적응한다. 홀아비는 다른 홀아비 냄새밖에 모른다. 시각도 비슷하긴 하다. 내 못생김보다 남의 못생김이 더 불쾌하다. 다만 이건 시각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감각이 아니라 심리적 문제다. “우리 아들이 제일 잘생겼다”는 여러분 어머니의 반복적 주문이 만든 심리적 문제 말이다.

나는 강박적으로 향수를 뿌린다. 중년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이다. 요즘 쓰는 향수 이름은 ‘나이트 클러빙’이다. 클럽 냄새가 난다. 가죽 소파와, 땀과, 바닥에 쏟은 술과, 문 닫기 직전까지도 짝을 찾지 못한 젊은이들 호르몬 냄새가 섞인 향기다. 푹푹 찌는 날 밤 샤워하듯 뿌리고 나갔다. 친구가 말했다. “어디서 골초가 모는 택시 뒷좌석 같은 냄새가 나냐?”

잘 노는 젊은 오빠 향을 원했다. 새벽 강남 클럽 앞에서 대리기사에게 포르셰 열쇠 건네는 젊은 오빠의 향을 갈망했다. 나는 새벽 강변북로를 달리는 택시 뒷좌석 같은 중년 남성이었다. 상큼한 시트러스 계열 향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시장 구석에서 안 팔려 삭아가는 귤 냄새가 택시 뒷좌석 냄새보다는 나을 것이다. 노화는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추구하는 과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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