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궁지, ‘고려’는 어디에 있나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6)]

정진오 2025. 8. 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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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궁궐터 들어가보면 ‘조선’뿐

맨 먼저 강화유수부 동헌 만나
외규장각 건물도 중심 자리잡아
입구 ‘승평문’ 고려 역사 유일해

고려궁지 맨 위쪽에 올라 남산 쪽을 바라본 강화읍 전경 모습. 2025.8.5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인천 강화군의 관광 1번지는 강화읍에 있는 고려궁지이다. 강화군의 관광안내도에는 15곳의 주요 관광지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고려궁지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맞서 39년간 항전했던 궁궐터로서 갖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고려궁지는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1232년 6월, 실권자 최우는 반대하는 신료의 목을 베어가면서 강화 천도를 결정했고, 곧바로 군대를 동원해 강화에 궁궐을 지었다. ‘고려사절요’ 기록을 바탕으로 보면 궁궐 공사가 여러 해에 걸쳐 확장됐음을 알 수 있다. 지금 강화읍 관청리 일대에 자리잡았을 고려 궁궐의 규모는 대단히 컸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맨 처음 기록은 ‘고려사절요’ 고종 19년(1232) 6월 기사에 등장하는데, ‘(최)우가 이령군(二領軍)을 조발하여 강화에 궁궐을 영조(營造)하였다’고 돼 있다. 2년이 지난 뒤인 1234년 ‘고려사절요’ 고종 21년 정월 기사에는 ‘큰 바람이 불고 대궐 남쪽 동네 수천 호의 집이 불에 탔다’, ‘제도(諸道)의 장정들을 징발하여 궁궐과 백사(百司)를 짓게 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궁지 안에 있는 조선시대 동헌 명위헌 모습. 2025.8.5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수천 호의 집이 불 탔다고 말하는 ‘대궐 남쪽 동네’는 지금 고려궁지에서 바라봤을 때 남산 아래쪽 동네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대궐도 상당히 큰 규모로 지어졌을 게 분명하다. 특히 처음 강화로 수도를 옮길 때 군대를 동원해 궁궐을 지었는데, 2년 뒤에는 전국 각지의 젊은이들을 끌어다가 다시 궁궐을 지었다. 전국에서 징발하였다고 했으니, 그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고 그때 새로 지은 궁궐 규모도 컸을 것임은 자명하다.

‘고려사절요’ 그다음 기사에는 ‘궁전과 사사(寺祠)의 이름을 다 송도를 본떴다’고 돼 있다. 개성에 있던 궁궐의 숫자에 맞추어 짓고 이름까지 똑같게 붙였다는 얘기다.

그때 그 13세기 속으로 안내할 것만 같은 고려궁지는 연중무휴로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다. 입장료는 어른 1천200원, 청소년·어린이 900원이다. 강화군민은 무료이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간 고려궁지 안에는 ‘고려’는 없고, ‘조선’뿐이다. 관광객들은 고려궁지라고 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13세기 고려 여행을 하고자 고려의 문을 열었는데, 타임머신이 그만 오작동을 일으켰는지 고려는 어디 가고, 단번에 몇 백 년을 건너뛰어 조선시대를 경험하게 한다. 그렇게 만나는 조선의 역사도 다 중요한 내용들이다.

백하 윤순이 썼다고 하는 동헌 현판 ‘명위헌’ 글씨. 2025.8.5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고려궁지 안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강화유수부 동헌이다. 이는 조선시대 지방행정을 담당했던 관아 건물이다. ‘명위헌(明威軒)’이라고 쓴 이 동헌 현판은 명필 백하 윤순(1680~1741)의 글씨인데, 윤순은 강화학의 태두인 정제두의 문인인데다, 강화 ‘고려산적석사비’의 글씨를 쓴 장본인이다.

조선의 왕실 서적을 보관하기 위해 1782년에 지었다가 병인양요(1866) 때 약탈당하고 불에 타 없어진 외규장각 등의 내력도 살필 수 있다. 2003년에 일부 복원한 외규장각 건물이 고려궁지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고려궁지 안에 있는 외규장각 모습. 2025.8.5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


고려궁지에서 만날 수 있는 강도(江都) 시기 고려 역사는 입구 역할을 하는 승평문(昇平門)뿐이다. 승평문은 궁궐의 정문이었다. 승평문은 강화도 고려 궁궐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곳이기는 하다. 요새로 치면 대통령실 민원창구 역할을 했는데, 백성들은 이 승평문에 방을 써 붙여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강화읍에 지어졌을 고려의 대궐이 있던 자리는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지금의 고려궁지가 아니라 강화도서관 부근 궁골 동네 쪽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고려궁지에서 제대로 된 ‘고려’를 안내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진오 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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