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암각화 세계유산 가는 길, 흉물 된 전신주 뽑아라
'반구천의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후, 암각화를 품고 있는 울산 울주 대곡천을 찾는 관광객들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유산으로 가는 길목은 전신주와 거미줄 같은 전선으로 뒤덮여,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반구대암각화 입구 삼거리에서부터 암각화박물관을 거쳐 반구대까지, 대곡박물관에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에 이르는 구간에 세워진 전신주는 무려 300여개에 달한다. 특히 관광객을 위해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도록 만든 목재 데크 산책로 한가운데에 흉측하게 솟아 있는 전신주는 실소를 자아낼 지경이다. 수천년 원시 자연경관의 가치를 품은 대곡천의 첫인상이 이같은 상황인데도 관계당국과 한전은 여전히 '예산 타령'만 하고 있다.
이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역 사회가 전선 지중화를 요구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울산시와 한국전력은 '수십억원의 예산'과 '산지 지형의 어려운 공사 여건'을 핑계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요지부동이다. 한전은 지자체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지자체는 한전의 승인과 예산 분담을 이야기하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이제 반구천의 암각화가 세계유산이 된 만큼 울산시가 더 이상 눈치보며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다른 세계유산 도시들은 어떻게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4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과 2015년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모두 지자체와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전신주를 없애고 고풍스러운 세계유산 지역으로 거듭났다. 2021년 등재된 '한국의 갯벌'에 포함된 순천시는 세계적인 철새 흑두루미를 보호하기 위해 전봇대 282개를 뽑는 결단을 내렸다. 안동하회마을(2010년 지정),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지정) 등 다른 세계유산 보유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도시들은 세계유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주변 경관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고, 변명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세계유산 등재는 단순히 명예를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고 인류의 유산을 지켜나갈 무한한 책임을 지는 일이다. 언제까지 예산 타령만 하며 관람객들의 비웃음을 살 것인가. 울산시는 더 이상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강력한 의지를 갖고 지중화사업을 주도해야 한다. 국가유산청과 정부를 설득하고, 한전과 적극적으로 협의해 예산을 서둘러 확보해, 세계유산의 위상에 걸맞게 암각화로 가는 길을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