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92> 제자들이 읽는 글 내용에 무더위 잊는다는 명재 윤증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2025. 8. 5.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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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는 다행히 몇몇 아이들이 '근사록'과 주서(朱書) 등을 읽어서 날마다 (나의) 정신을 일깨워 주고 서로에게 도움 되는 것이 적지 않아 무더위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네.

위 문장에서 볼 수 있듯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한여름에도 '근사록'과 주자(朱子)의 글 등을 읽었던 모양이다.

윤증은 제자들이 읽는 글을 들으며 더위에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다잡다 보니 무더위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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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네(却忘暑溽之苦矣·각망서욕지고의)

이번 여름에는 다행히 몇몇 아이들이 ‘근사록’과 주서(朱書) 등을 읽어서 날마다 (나의) 정신을 일깨워 주고 서로에게 도움 되는 것이 적지 않아 무더위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네.(今夏則幸有數三少輩讀近思朱書等者, 日有喚醒提撕之益, 相長之助不少, 却忘暑溽之苦矣.·금하즉행유수삼소배독근사주서등자, 일유환성제시지익, 상장지조불소, 각망서욕지고의.)

위 문장은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의 ‘심준에게 답하다’(答沈埈·답심준)의 마지막 부분으로, 그의 문집인 ‘명재유고(明齋遺稿)’ 권 25(書)에 수록돼 있다. ‘壬午八月三日(임오년 8월 3일)’ 즉 ‘1702년(숙종28) 8월 3일’이라고 편지를 쓴 날짜가 기록돼 있다. 위 편지를 쓴 윤증은 윤선거의 아들로, 송시열의 문하이다.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할 때 소론의 영수가 된다.

윤선거는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가 성문을 지키다 점령당했다. 그러자 평민 옷을 입고 탈출했다. 그 후 비겁하게 살아남은 것을 후회하여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송시열은 홀로 살아서 나온 윤선거를 경멸하고 멀리하였다. 윤증은 부친에 대한 송시열의 멸시와 비난 등에 반발해 스승과 결국 결별하였다. 편지를 받은 심준은 자가 숙평(叔平)으로, 40세인 1713년(숙종 39)에 대증광시(大增廣試)에 급제해 승문원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윤증은 많은 관직 요청이 있었으나 출사하지 않고 이성(泥城·현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집에서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위 문장에서 볼 수 있듯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한여름에도 ‘근사록’과 주자(朱子)의 글 등을 읽었던 모양이다. 윤증은 제자들이 읽는 글을 들으며 더위에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다잡다 보니 무더위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 날씨를 두고 사람들은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더위가 이어지다 폭우가 퍼붓고, 다시 무더위가 오고 폭우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폭우에 많은 사람이 죽거나 실종됐다. 요즘은 에어컨이 없으면 더위를 견디지 못한다는데 윤증은 제자들이 읽는 글로 더위를 잊었다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 모두 올여름 무사히 잘 넘기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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