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아닌 기장군에 있는 박태준 기념관

경북도민일보 2025. 8. 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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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군에 있는 박태준 기념관 .
기장군 박태준 기념관 내부.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을 기리는 박태준 기념관이 포항이 아닌 부산 기장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신문사 기자 시절이던 1994년 10월, 해외로 떠돌던 낭인 생활을 하다가 모친상을 당해 급거 귀국한 박태준 회장의 동정을 취재하기 위해 찾았던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당시 경남 양산시 장안읍) 에 30년 만에 들렀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가터 자리에 '박태준 기념관'이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채 수많은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태준 기념관은 전시, 소장된 1,200여 점의 유물 외에도 어린이 도서관과 카페가 있어 기장군의 명소 역할을 하고 있다.

박태준 회장은 생전에 "포항에서 뼈를 묻겠다"라고 공언했던 인물이다.

1968년 포항제철소 건설을 시작으로 평생을 철강산업 발전에 헌신하며 포항을 세계적인 철강 도시로 만들어 낸 주역이었다. 그의 리더십과 혁신 정신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사의 한 축을 담당했고, 포항은 그 중심지였다.

그런데 정작 그를 기리는 공간은 고향인 기장군에 있다.

2019년 기장군이 조례를 제정한데 이어 2021년 문을 연 박태준 기념관에는 연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흥미롭게도 이곳 전시물의 대부분은 포항제철소 시절의 사진들과 그가 실제 착용했던 안전화, 헬멧 등 포스코 근무 당시의 유물들이다.

기장은 그의 출생지이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성장과 활동의 영역이 아닌데도 그의 업적과 흔적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전시하여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는 KTX를 타면 포항제철 로고가 박힌 안전모를 쓴 박태준의 모습을 등장시켜 기장군의 홍보를 한 지도 오래되었다.

반면 포항은 어떤가. 박태준 회장이 평생을 바쳐 일궈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무형 흔적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포스코 포항제철소 내 홍보관과 포항공대에 일부 기념 공간이 있지만,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개된 기념시설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는 단순한 기념의 문제를 넘어선다.

기장군의 사례에서 보듯이, 인물사(人物史)를 활용한 문화관광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박태준이라는 거대한 인물과 그의 업적을 제대로 스토리텔링했다면, 포항은 단순한 산업도시를 넘어 '한국 근대화의 성지'로 브랜딩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 철학과 경영 혁신 사례들은 현재도 많은 기업인과 경영학도들이 벤치마킹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런 무형의 가치를 교육과 관광 콘텐츠로 개발했다면, 포항은 경제교육의 메카로도 주목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포항시는 박태준 회장의 업적과 정신을 제대로 기리고 활용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포항제철소 일대를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그의 리더십과 혁신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기장군이 출생지라는 연고만으로 박태준 기념관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면, 그의 꿈과 열정이 실현된 포항에서는 얼마나 더 의미 있고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포항이 주어진 콘텐츠만이라도 잘 활용해 세계적 마이스(MICE)산업 중심 도시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더 늦기 전에….

이한웅 콘텐츠연구소상상 대표/독자평가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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