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2세의 여권, 발터 베냐민의 비자 [유레카]

조일준 기자 2025. 8. 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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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26일, 이집트 통치자를 태운 프랑스 군용기가 파리에 도착했다.

당시 세간에선 파라오가 이집트 여권을 소지하고 입국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비시 정부의 출국 비자는 독일 출신 유대인 혈통 지식인들의 운명을 갈랐다.

베냐민은 미국 영사에게 긴급 비자를 얻었지만 프랑스 출국 비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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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9월26일, 이집트 통치자를 태운 프랑스 군용기가 파리에 도착했다. 프랑스 국무장관이 귀빈을 영접했다. 붉은 깃털이 달린 기병대 투구와 흰색 가죽 바지 정장을 입은 공화국 수비대가 예우를 갖췄다. 주인공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왕) 람세스 2세였다. 그의 영혼은 3200년 전에 내세로 갔고 미라가 된 몸만 왔다. 1881년 발굴된 지 100년이 다 돼 손상이 심각해진 미라는 인류학박물관 무균실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다. (‘여행 면허’, 패트릭 빅스비 지음, 작가정신, 2025)

당시 세간에선 파라오가 이집트 여권을 소지하고 입국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굴 사진과 이름, 생몰연도, 직업(왕)이 기재된 여권 사진도 공개됐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으로 관련 보도들과 여권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두 가짜 뉴스다. 여권 사진도 디지털 조작 이미지다. 파라오의 여권 해프닝은 근대 국민국가가 모든 사람의 입출국을 독점적으로 통제하는 권력을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여권은 국가가 자국민 국외 여행자의 신분을 보증하고 신변 안전을 요청하는 공문서다. 반면 비자는 국가가 외국인의 입국·체류·통과를 허용하는 증명서다. 오늘날 대다수 나라에선 범죄(혐의)자가 아닌 모든 국민에게 여권을 발행한다. 그러나 몇몇 국가에선 지금도 출국 비자를 통해 자국민과 체류자의 출국을 통제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비시 정부의 출국 비자는 독일 출신 유대인 혈통 지식인들의 운명을 갈랐다. 앞서 1933년, 문예이론가 발터 베냐민과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피신했다. 1940년 6월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했다. 둘은 각기 접경국 스페인을 경유하는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피레네산맥을 넘어, 9월 스페인 국경 마을에 도착했다.

베냐민은 미국 영사에게 긴급 비자를 얻었지만 프랑스 출국 비자가 없었다. 스페인은 입국을 불허하고 추방을 통보했다. 베냐민은 절망 끝에 모르핀 과다 복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날도 9월26일이었다. 얄궂게도 그 다음날 스페인 국경이 열렸다. 아렌트는 무사히 프랑스를 탈출해 이듬해 미국 땅을 밟았다. 뒷날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무국적자와 난민은 단순히 시민권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박탈당한 존재라고 갈파했다. 인권의 실질적 보장은 누구나 특정 공동체에 소속될 권리,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권리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권리를 가질 권리’의 개념이 그렇게 탄생했다.

조일준 텍스트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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