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130억 쏟아 붓고’ 차수벽에 구멍 뚫는…광주시 ‘땜질처방’의 굴욕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5. 8. 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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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천에 빠진 재난행정…“주민 위한 치수사업, 정작 현장은 빠졌다”
주민, 대책위 꾸려 형사고발 으름장 놓자 발 빠르게 움직이는 지자체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광주 북구 신안교 서방천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시 재난행정이 북구 신안동 서방천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다. 2년 전 하천 정비사업 당시 130억원을 투입해 설치한 '홍수방어벽'이 오히려 침수 피해를 키운다는 민원이 잇따르자 광주시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서방천 홍수 방어벽 하단에 배수구를 추가 설치하고, 상단 투명 차수벽을 철거하는 등 주민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했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점만 보면 바람직한 행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재(水災)를 겪고 난 뒤에도 미적거리다가 주민들이 고발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뒷수습에 나선 것은 영 모양이 빠진다. 특히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백억원을 투입한 홍수예방시설이 되레 주민을 수재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지적에 방어벽에 구멍을 뚫고 있는 차마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다. 고개를 들고 있는 현장을 위한 치수사업에서 현장이 빠졌다'는 비판 또한 굴욕적이긴 마찬가지다. 

'침수를 막자' 5일 오전 광주 북구 신안동 서방천 일대 홍수방어벽 하단에 작업자들이 지름 200mm의 배수구 구멍을 뚫고 있다. ⓒ연합뉴스

주민 요구 묵살하더니 뒤늦게 전격 수용…'뒷북 행정' 논란

5일 광주시에 따르면 시는 재난안전기금을 투입해 북구 신안동 서방천에 설치된 홍수방어벽 상단의 투명 아크릴 판 일부 철거와 방어벽 하단에 지름 20㎝ 규모의 배수구 50여 개를 추가로 뚫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는 홍수 방어벽 설치 후와 배수구 부족으로 배수가 원활하지 않아 침수 피해가 심해졌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조치다.

광주시는 장기적인 배수 대책 마련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앞으로 예고된 집중호우에 대비하기 위해 재난안전기금을 투입해 긴급 공사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본격적인 종합대책 마련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당장의 피해를 막기 어려운 상황이라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선제적으로 추가 배수구 확보 등 단기적 보완 조치를 즉시 시행하게 됐다"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난을 겪고 난 뒤에 이뤄지는 '뒷북 땜질 처방'이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앞서 광주시는 이곳 홍수예방을 위한 하천정비사업 명목으로 134억 원을 투입했다. 광주시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23억 9900만원(국비 40억 포함)을 들여 1.14㎞에 달하는 구간의 서방천 개수공사를 했다. 특히 신안교 서방천에서 범람하는 강물을 막기 위해 하천을 따라 성인 키 높이로, 홍수방어벽 상단에 아크릴 판으로 제작 설치했다. 북구는 11억원(전액 시비)을 투입해 우수 토실 상부 복개, 악취 차단막 및 악취저감 스프레이 등을 설치하는 신안교 주변 악취저감 사업을 추진, 지난해 완공했다. 

문제는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성인 발목 정도까지 차올랐으나 해당 공사 이후에 침수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광주시는 "24m 관로와 12m 관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정체가 원인이다"며 "장기 종합대책 마련으로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광주시가 2년 전 인근 서방천에 설치한 홍수방어벽과 북구청에서 신안교에 설치한 악취 차단막이 물길을 막아 계속 침수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광주시 재난행정이 북구 신안동 서방천에서 굴욕을 당하고 있다. 2년 전 하천 정비사업 당시 130억원을 투입해 설치한 '홍수방어벽'이 오히려 침수 피해를 키운다는 민원이 잇따르자 광주시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고아주 북구청이 신안교에 설치한 악취 차단막 ⓒ시사저널 정성환

주민 "홍수예방시설이 주범" vs 광주시 "관로 교차 정체가 원인"

주민들은 홍수방어벽이 배수 장애를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17일 하루 4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주택과 도로에 넘친 물이 하천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방어벽 상단의 투명벽이 마을과 하천 사이 물길을 막아 하천으로 못 빠진 나간 물이 모여 주택이 침수됐다는 것이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지자체가 주민을 보호하려고 설치 해놓은 시설이 마을로 쏟아진 빗물을 가두는 역할을 해 주민을 더 위험에 빠뜨린 꼴이다. 

주민 임영호(59)씨는 "20~30년 전에 굉장히 비가 많이 왔을 때도 이 방어벽이 없어서 물이 잘 빠졌기 때문에 이번처럼 대형 사고가 안 났다"며 "서방천 범람을 막아야 할 방어벽이 오히려 물길을 막아 마을 안쪽으로 물이 더 차올랐다"고 했다. 또 기존 홍수방어벽 하단에는 일부 배수구가 있었지만 구멍이 작은데다 떠내려 온 쓰레기들로 입구가 막히는 바람에 지난달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을 당시 물이 빠지지 않아 인근 주택·상가의 침수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 주민은 "배수하라고 이렇게 적은 구멍을 그것도 겨우 4개 뚫어놨는데, 물이 제대로 빠지겠느냐"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재앙의 뿌리는 '주민이 빠진 설계'에서 비롯됐다. 광주시와 북구가 서방천 하천정비라는 공공사업을 하면서 주민공청회도 열지 않는 등 주민을 배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현장 배제가 하천 범람으로 마을이 침수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물그릇에 갇힌 마을을 고립시키는 홍수방어벽을 설치하고, 호안에 조경석을 쌓아 하천 폭을 줄여 물길을 막는 엉뚱한 결과를 빚었다는 것이다.   

신안동 수해대책위원회 한 위원은 "물길을 막아 계속 침수를 일으킨 주목으로 몰리고 있는 홍수방어벽 공사와 악취 차단막 설치 등 두 가지 공사가 주민 의견수렴 없이 이뤄졌다"며 "이는 주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공 인프라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본질"이라며 "실수요자 격인 주민 의견이 빠진 기획은 반드시 왜곡되거나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을 배제한 공공사업은 결국 현장에서 외면 받고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얘기다.

광주시는 비판이 잇따르자 재난안전기금을 투입해 북구 신안동 서방천에 설치된 홍수방어벽 상단의 투명 아크릴 판 일부 철거와 방어벽 하단에 지름 20㎝ 규모의 배수구 50여 개를 추가로 뚫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서방천 홍수방어벽 모습 ⓒ시사저널 정성환

"절박함 외면, 귀 막은 행정"…임시 처방에 주민들 반응 '싸늘'

하지만 큰 물난리를 겪고 난 뒤에야 응급조치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름 전 침수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홍수 방어벽과 악취 차단막을 당장 철거할 것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 조 아무개씨는 "행정 당국에 수차례 철거해달라고 요청해도 변한 게 없으니 매번 피해만 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결국 성난 주민들은 명백한 인재라며 대책위원회를 꾸려 광주시와 북구를 상대로 민사소송과 형사고발을 검토 중이다. 그러자 행정당국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주민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앞서의 주민 문종준씨는 "주민들이 그전에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도 꼼짝 안하더니 저희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고발조치하겠다니까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광주시의 단기 응급조치를 미덥지 못한 분위기다. 문 씨는 "광주시가 임시적으로 방어벽 하단 콘크리트 벽에 지름 200㎜ 이하의 배수 구멍을 뚫는다고 하는데 컵 라면 큰 것 하나도 못 빠져 나갈 정도로 작아 효과가 의문이다"며 "방어벽 위 투명 아크릴 막도 철거 안 하려는 것을 주민들이 모여 무조건 철거해야 한다고 반발하자 마지못해 철거하고 구멍을 뚫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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