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테이블] 여름엔 콩국수라는데…MZ들은 '이해불가' 아재들은 '대체불가'
●콩국수
무더위는 식혀주고, 입맛은 돋워주고
든든함에 건강까지 챙기는 '여름 보양식'
하지만 콩에 대한 비호감에 '호불호' 여전

'설탕' vs '소금'. 콩국수의 계절이다. 여름 한시 짧은 계절 메뉴지만 짜장·짬뽕, 찍먹·부먹(탕수육 소스) 처럼 취향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맛의 균형이 중요해서다. 삶는 시간이 짧으면 비린내가 나고, 반대로 길면 텁텁하고 떫은 맛이 난다. 레시피에 따라 생크림 같이 맑거나, 걸쭉한 콩국물이 만들어진다. 밀도와 질감 만큼, 달근한 맛이 오묘하다. 이 '단 맛'을 위해 전라도에선 설탕을, 서울 등 수도권과 영남에선 소금을 쓴다.
콩국수는 조선 시대 말, 요리책(시의전서)에 기록됐을 만큼 전통이 깊은 음식이다. 1970년대 서민들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쌀 소비를 줄이는 과정에서다. 광주·전남에선 '콩물국수'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세대 별로 호불호가 갈린다. 역사성과 대중성을 지녀서다. 무등일보 MZ기자들이 이번 여름 식탁을 사실상 '콩국수 심판의 장'으로 삼은 이유다. 밍밍한 콩물이나 변형된 레시피가 식탁의 질서를 위협한 작금의 사태에 대한 경각심이 '무등 테이블'의 첫번째 '씹을 거리'가 된 것이다. MZ기자들의 개인사와 경험, 자유로운 논설을 위해 필명을 사용했다.
▲쌍촌동 비룡
지금처럼 믹서기가 없던 시절, 콩국수는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말린 콩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고, 맷돌로 고이 갈아 만든 콩물. 직접 반죽해서 뽑은 면발. 오이채나 계란 같은 갖은 고명 없이도 그 시절 그만한 음식이 어디 있었을까. 그 시절의 콩국수는 소박하지만, 그만큼 진한 추억과 정이 담긴 음식이었다.
요새는 세상이 좋아져서 시판 콩물에 삶은 면만 부으면 그럴듯한 콩국수가 뚝딱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옛날 콩을 불리며 삶고, 손끝에 힘을 주며 맷돌을 돌리는 외할머니의 정성은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다.
어머니와 나는 콩국수 집에 갈 때마다 서로 다른 취향을 드러낸다. 나는 약간 거친 입자의 콩물에 설탕을 조금만 넣어 먹는 걸 좋아한다. 어머니는 아주 고운 콩물에 흑설탕을 듬뿍 넣는 걸 선호하신다. 간혹 "이 집은 너무 껄껄하다", "이 집은 비리다"며 옛 손맛을 그리워하신다.
그럴 때면 나는 콩국수 한 그릇에 담긴 '시간의 두께'를 생각한다. 외할머니의 손끝에서 시작된 그 맛이 어머니를 거쳐 내게까지 전해진다. 콩국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흐르는 '사랑의 형태'다.

▲신가동 스폰지밥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보다 더 세 살베기 입맛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호불호 뚜렷한 입맛은 누구보다 나를 '편식쟁이'로 만들었다.
여름 점심 메뉴로 자주 언급되는 '콩국수'는 내가 싫어하는 음식 best 5에 드는 메뉴이다. "혹시.." 하겠지만 그렇다. 나는 콩을 싫어한다. 하지만 두부는 좋아한다. 엥. 사람의 입맛이 이렇게 제멋대로일 수 있나 싶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단것도 짠 것도 아닌, 자극적이지도 밍밍하지도 않는, 그 맛이 나를 사로잡지 못한 탓일까. 강하게 박힌 불호의 스멜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를 쫓아다닌다.
묽으면서 되직한 국물은 목에서 넘어갈 생각이 없으며, 얇은 면들은 입술 주위에 존재감을 남기며 지나간다. 그래서 더 싫은 걸까. 콩국수 한입에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휴지 한 장이 날 꽤나 거슬리게 만든다.
회는 초장 맛으로, 콩국수는 김치 맛으로. 콩국수집의 김치가 유별나게 맛있는 이유는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합당한 의심이 생긴다. 콩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김치'로 남겠다는 마케팅 전략일까. 그렇다면 성공했다고 전하고 싶다. 김치만 3접시 주워 먹었으니까.
세상에 수많은 음식 중 여름 음식으로 이름 날린 '콩국수'. 누가 콩국수를 여름 음식으로 밀고 나갔을까. 이걸 먹는다고 무섭게 다가오는 더위를 무찌를 수는 없는데 말이다. 혹시 수많은 콩을 먹고 보양하려는 게 목적일까.

▲광천동 고독한미식가
내가 싫어하는 음식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먹어서 함께 좋아하게 된 음식이다. 콩의 맛과 식감은 매우 호불호가 갈린다. 어렸을 때 유치원 급식에서 콩 반찬은 매일 만날 수 있는 존재였다. 집이나 유치원에서 콩 반찬을 마주하게 되면 기분이 그렇게 나쁠 수가 없다. 정말 먹기 싫은 존재인데다가 먹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유치원 영양사 선생님, 부모님 모두가 내가 남긴 콩을 가르키며 "콩이 몸에 얼마나 좋은데 왜 남기니"라며 잔소리 했다. 그렇게 유년시절부터 콩은 나에게 썩 좋지 않은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부모님께서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콩국수 먹으러 가자" '콩국수?' 콩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섬뜩한데 그 콩을 갈아서 만든 요리라니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당연히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부모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래, 부모님이 맛있게 먹는 음식이니까 나도 한 번 도전해 보자!' 그렇게 인생 처음으로 광주의 한 콩국수 가게에 가게 된다. 속으로 '토하면 어쩌지', '정말 먹기 싫다'라는 생각이 뇌를 지배했다. 콩국수가 내 앞에 놓여지고 숟가락 표면에 개미만큼 찔끔 콩물을 묻혀서 맛을 봤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이지. 천상의 맛이잖아! 달달한 맛과 걸쭉한 농도의 국물. 콩의 맛은 온데간데없고 내 혀를 황홀하게 해주는 단맛만 느껴졌다. 본격적으로 면을 콩물에 잘 적셔 먹었다.

▲신안동 상디
싱겁고, 밍밍한 음식을 즐기지 않는 나는 선호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간혹 먹어야 할 상황이 오거나, 먹게 된다면 설탕을 많이 넣어 먹곤 했다. (또는 짭짤한 김치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음식이라지만 그럼에도 즐기는 이가 많기에 그 싱겁고, 담백한 음식 속, 어떤 매력에 끌리는지 항상 궁금했다.
이 한 끼 식사를 하며, 콩국수가 만들어진 과정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것을 찾아보려하는 사람도 없을것이다. 입안에 들어오는 순간 면은 부드러운지, 국물이 맑은지, 설탕 또는 소금 간은 적정한지를 평가한다.
이 모든 것이 느껴지는 그 짧은 순간, 콩국수는 만들어져 온 긴 과정들을 인정받게 된다. 그 과정을 몰랐던 이도 그 순간만큼은 생각하지 않겠는가.
두 가지, '가공되어 온 과정 전부와 ''내 생각을 달라지게 만든 순간'이 콩국수를 먹는 내가 느끼는 밍밍한 음식의 매력이었다. 자극적인 음식말고, 이런 종류의 음식들도 종종 즐겨봐야겠다.
음식이 주는 잔잔함을 깨닫게 해준 콩국수.
이제는 단순히 싱겁고 밍밍하다고 치부하기보다, 그 속에 담긴 시간과 정성을 떠올리게 된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담백함 속에서 나는 조금은 느긋해지고, 나의 입맛도 한층 너그러워진다. 맛이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그 너머를 느끼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리=박현기자 pls214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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