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 칼럼] 대통령 입이 무섭다

전태훤 2025. 8. 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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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정치인들의 구호는 공허하다. 살기 좋고 차별 없는 사회,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방선거나 총선, 대선, 역대 어느 선거를 막론하고 쏟아져 나오지만 막상 다음 선거 때가 돼 돌아본 세상은 어떤가.

지난 당선인도 앞선 당선자도 저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 했지만, 좌와 우 어느 쪽이 됐든 세상은 그들이 약속한 만큼 변하지 않는다.

20대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됐던 2021년 12월 말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대선 초기 슬로건(후에 두 차례 바뀜)이 나왔을 때도 그랬다. 누가 돼도, 누가 뭘 해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란 확신에 찼다. 달콤 시원하리라 믿었던 지난 약속 대부분이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부족함’ 없이 겪어오지 않았던가.

그랬던 확신이 지금은 조금씩 흔들린다. 대선 재수(再修)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두 달여가 됐을 뿐인데, 사회 부조리와 불공정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날 선 한마디에, 정부는 즉각 대책을 내놓고 다급해진 기업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시정(是正)하며 몸을 낮추기 시작했다.

집값 폭등엔 6억원 한도의 대출 규제를 발표 다음 날부터 즉시 시행하는 기민함을 보였고,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의 고질적 문제점을 꼬집은 대통령 한마디에는 45년간 방치됐던 관련 제도가 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놀라운 속도다.

“하도급 미지급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엔 관련 인력을 충원한 공정위가 현장 조사에 나섰고, 최장 2년 넘게 하도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현장이 적발된 롯데건설은 135억원의 미지급 하도 대금에 이자까지 쳐서 전액 현금 정산했다. ‘칠성 사이다’급 결말이다.

이례적으로 사망사고가 잇따랐던 SPC삼립 생산 공장을 찾아 노동환경을 따져 물은 대통령의 질타엔 허영인 SPC 회장이 8시간 초과 야근을 없애고 2교대 근무를 3교대로 바꾸겠다고 즉각 공언했다.

최근 대통령실이 생중계한 국무회의에서는 이 대통령이 “포스코이앤씨 같은 데서 1년에 다섯 명씩 사망 사고가 나는데 한번 가봐야겠다”며 관련 부처 장관에게 사고를 줄일 방안을 주문하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장관들은 잇따라 대책 보따리를 풀어냈다.

“직을 걸겠다”는 노동부 장관, “전담 검찰 조직을 두겠다”는 법무부 장관, “매출액 대비 3~4%의 과징금을 때리겠다”는 국토부 장관, “사고 예방을 못 한 기업엔 처벌을, 잘한 기업엔 인센티브를 주자”며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기반의 안전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는 산자부 장관의 약속도 실시간 공개됐다.

“(사망사고 기업에) 입찰 제한을 세게 해야 한다. 몇 번 걸리면 정부 공사를 못 하게, 아예 영업허가를 취소해 버리는 게 맞지 않나 싶다”는 대통령의 지적엔 “검토하겠다”는 조달청의 즉답이 달렸다.

“산재 상습 기업은 여러 차례 공시해 주가를 폭락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대통령 질타도 고스란히 생중계를 탔다.

우리 사회의 취약했던 부분들을 고쳐 나가자며 대통령이 ‘하겠다고 한 것’들이 하나둘 틀을 갖춰가고 있는 건데, 못 보던 것을 봐서 그런지 어떤 대목에선 무섭다는 생각까지 든다.

걱정은 혹시 과유불급(過猶不及)일까 봐서다. 이 대통령이 지난 20대 대선 출사표를 담은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책을 보자. 정치세력과 재벌이 짠 부패와 정경유착, 재벌을 위한 세제 등을 비판하며 새로 창출되는 부의 99%가 상위 1%로 들어간다며 이들에게 세금을 뜯어내야 한다는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을 모델로 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다짐이 나온다.

버니 샌더스가 누구인가. 두 차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가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조 바이든에게 밀린, 스스로 사회주의자라 대놓고 외친 정치인이다. 과거 대선 준비를 하며 쓴 책이지만 당시 다짐이 최근 이뤄진 상법개정안과 세제개편안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는 점에서 흘려 보기 어렵다.

이제까지 이 대통령의 입을 떠난 사안들은 어떻게든 ‘수술대’에 올랐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어디까지 닿을지 모르겠고, 어디까지 하겠다는 건지 짐작키 어렵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무서운 이유다.

전태훤 부국장 겸 부동산유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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