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2·3세 피해 대물림 인정해야" [광복 80주년-다시 평화]

유은상 기자 2025. 8. 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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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물림된 고통 잊히는 슬픔(1) 반핵 평화 인권 운동가 김형률

후유증 앓는 원폭 2세로 공개 기자회견
원폭증 유전 사실 처음으로 사회에 알려
한국 원폭 2세 환우회 만들어 본격 활동

1945년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 이름은 '리틀보이'입니다. 아이러니하게 그 핵폭탄에 희생된 어린 원폭 피해자와 후손도 '리틀보이' 혹은 '핵의 아이들'이라고 일컫습니다. 국민 대부분은 원폭피해를 당시 폭탄 충격에 멈춰버린 시계처럼 이미 종료된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핵의 아이들', '리틀보이'는 여전히 지금 우리 주변에 살고 있고, 또 계속해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고통의 시계는 여전히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습니다. 

원자 폭탄이 터진 지 80년을 맞는 해입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원폭 피해자는 물론 그 후세들 또한 제대로 된 사과는 물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피폭 후세들을 정부로부터 그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삶을 가로막는 걸림돌,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점을 여섯 차례에 걸쳐 들여다 봅니다. 또 과거의 아픈 역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평화, 그 가치와 의미, 나아가 핵 없는 세상에 대한 고민도 함께해봅니다.
고 김형률 반핵 평화 인권 운동가 /한국 원폭2세 환우회

◇뒤늦게 알게 된 고통의 이유 = "원폭 피폭 후유증의 대물림 문제를 개인에게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함을 넘어 명백한 인권유린 행위입니다. 원폭과 유전의 관련성 증명은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키 163㎝, 몸무게 37㎏의 왜소한 체구. '선천성 면역글로불린 결핍증'이라는 난치병을 앓던 반핵평화운동가 김형률 씨는 2005년 3월 7일 병상에서 이렇게 외쳤다. 그는 80여 일 뒤인 2005년 5월 29일 35세 나이로 숨졌다. 그가 떠나고 20년이 지났지만 피폭 후유증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70년 부산 출신인 그는 태어나자마자 폐렴을 앓기 시작했고, 폐질환과 빈혈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유년시절 또한 온갖 병치레에 시달리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 고통이 원자폭탄 피폭이 원인이라는 것은 31세 때인 2001년 병원에서 우연히 접한 논문을 통해 알게 됐다. 그동안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 생후 1년 6개월 만에 폐렴으로 사망한 것도, 자신이 병고를 겪는 것 또한 그와 가족 모두 개인적인 문제로만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 이곡지 씨는 히로시마에서 피폭으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향인 합천으로 귀향했고, 1960년 결혼했다. 

자신의 지병이 피폭에 따른 유전이라는 깨달음은 삶을 통째로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우선 그는 같은 처지의 원폭 2세를 찾아 나섰다. 동시에 유전적 연관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실태를 파악하는 것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심진태 합천원폭자료관 관장이 원폭자료관 마당에 설치된 김형률 기념비를 설명하고 있다. /유은상 기자

◇큰 용기가 필요했던 고백 = 결국 그는 2002년 3월 22일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피폭 후유증을 앓는 원폭 피해자 2세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원폭 피해가 후손에게까지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 처음 알린 것이다. 동시에 전쟁 야만성과 핵의 무시무시함을 함께 고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택한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우선 원폭 2세들이 커밍아웃하는 것 자체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폭 2세임을 밝힌다고 해서 정부나 다른 기관으로부터 도움이나 지원을 받는 것은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또 다른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라는 부작용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폭 1세대들로부터 따뜻한 격려와 협조를 받지도 못했다. '원폭 1세 문제도 해결 안 됐는데 무슨 2세 문제냐?', '일본에서도 원폭증 유전을 인정하지 않는데 유전으로 아프다니 말이 되느냐?', '건강하게 잘 사는 후손에게 피해만 준다' 등 돌아온 것은 오히려 비난과 원망의 눈초리였다. 

2003년 그를 처음 만났다는 심진태 합천원폭자료관 관장은 그를 '안타까움'과 '의지'라는 단어로 기억하고 있었다. 

심 관장은 "그는 '다른 곳 지부장을 만나고 다니는데 뭐가 잘 안 된다. 원폭피해자 2세 단체를 만들려고 한다. 도와달라'고 했고 '그렇게 하자. 미약하지만 돕겠다. 같이 고민해보자'고 답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영민한 친구였고, 몹시 당차고 의지가 대단했다. 다른 곳에서 경계하면서 당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원폭2세환우회가 합천에서 시작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활동 = 그는 어머니 고향 합천에서 처음으로 원폭 2세 환우 최정식 씨를 만난다. 최 씨는 '한국원폭2세환우회' 첫 번째 회원이 되고, 김형률 씨는 '한국 원폭 2세 환우회' 초대 회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비록 2명이라 행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단체였지만, 반핵평화를 향한 목소리는 작지 않았다.

그 작은 의지가 모여 지금 세계를 향해 '비핵평화'를 촉구하는 '합천비핵평화대회'의 출발점이 됐고, 2010년에는 원폭 2세 환우들의 쉼터인 '합천평화의집'이 만들어졌다.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장은 "여름이지만 두꺼운 점퍼에 목 수건까지 하고 계속 기침을 하며 원폭증 유전을 설명하던 형률 씨를 선명히 기억한다"며 "저도 제 아픔이 유전적 영향 때문인 것을 그때 알았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분도 있구나, 우리의 인권 문제 해결에 참여해 같이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라고 회상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질 당시 한국인 피폭자 7만여 명 가운데 4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방 이후 생존자 2만 3000여 명이 귀국했고, 현재(2025년 1월 기준) 우리나라에는 1640여 명의 원폭 피해자가 살아 있다. 합천에는 240여 명이 산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84.8세이며 매년 100여 명이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들의 자녀인 원폭 피해자 2세는 정확히 현황 파악조차 안 되고 있지만, 후손회에 등록된 전국 회원 수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4500여 명이다. 원인 모를 질병과 싸우는 2∼3세도 1000여 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원은 1300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심진태 합천원폭자료관 관장이 원폭자료관 마당에 설치된 김형률 추모비를 설명하고 있다. /유은상 기자

◇'선지원 후규명' 마지막 외침 = 김형률 씨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피를 토하며 외쳤던 것은 원폭 1세뿐 아니라 원폭 2세 환우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인정이었다. 그는 "원폭 피해자와 그 2세 환우의 삶도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선지원 후규명'을 규정하는 특별법 제정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그의 마지막 열정을 쏟아부은 염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2005년 35세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갔다.

이후 조승수 국회의원, 조진래 국회의원, 김정록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가 이어졌다. 

결국 2016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원폭 피해자법)'이 제정됐지만 반쪽짜리에 그치고 말았다. 그가 그토록 바랐던 '원폭 2세 환우'에 대한 내용은 빠져 버린 것이다. 원폭 후유증이 공식적으로 규명되고 인정된 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9월 '원폭 2세와 3세 또한 법정 피해로 인정하고 의료와 생활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신성범(국민의힘·산청함양거창합천) 국회의원 등이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계엄과 탄핵, 정권 교체 등 굵직한 정치적 사태와 현안 속에 표류하고 있다.

합천평화의집 이남재 원장은 "원폭피해자 1세들이 해마다 100여 명 세상을 떠나고 2세들 또한 유전적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짧지만 큰 울림을 주고 간 청년 김형률의 바람, 힘들게 살아가는 2세 환우들의 바람인 법률안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은상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