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 기우는 미국, 중국 손잡는 인도…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미국의 파키스탄에 대한 태도 변화 등으로 마찰 심화

미국이 오랜 우방이자 핵심 전략 파트너인 인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압박하는 동시에, 인도의 앙숙 파키스탄과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미국의 ‘배신’에 인도가 또 다른 숙적 중국과 손을 맞잡으면서 인도·태평양 안보 구도가 요동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파키스탄과 접점 늘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인도와 적대적 관계인 파키스탄과의 협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파키스탄과 대규모 석유를 공동 개발하는 내용의 합의를 발표했다. 올 9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키스탄 방문도 예정돼 있다. 미국 대통령이 파키스탄을 찾는 것은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후 19년 만이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이례적인 밀착은 기존 전략과 배치된다. 미국은 지난 20여 년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와 협력 관계를 강화한 반면, 핵보유국이자 중국과 가까운 파키스탄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지난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무력 충돌 직전까지 치달은 이후 미국과 파키스탄 간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졌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양측 간 분쟁을 중재했다고 자찬했는데, 인도는 외부 개입은 없었다고 부인한 반면 파키스탄은 트럼프 대통령을 “휴전의 일등 공신”이라 치켜세우며 노벨평화상 후보로 공식 추천했다.
한 달 뒤에는 파키스탄 군 실세인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이 백악관 비공개 오찬에 초청받았다. 정부 고위 관료 동행 없이 파키스탄 군 수뇌부가 백악관에 들어간 것은 사상 처음이다. 로이터는 “미국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재정비하고 있다”며 “특히 파키스탄은 주요 비(非)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으로 여겨지며 재조명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도 고위급, 중국 방문
반면 미국은 인도에 연일 ‘경제 철퇴’를 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인도에 25% 관세 부과를 압박하고, 인도 경제를 ‘죽은 경제’라고 폄하했다. 4일에는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이유로 추가 제재도 예고했다. 미국이 인도의 최대 교역국인 점을 감안하면 현지 산업계 전반의 충격은 불가피하다.
인도 정부는 미국의 무역 압박과 친(親)파키스탄 행보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을 국경 테러의 배후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파키스탄 군부 수장이 백악관을 방문하자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외교 채널을 통해 거세게 항의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인도는 미국과의 틀어진 관계를 중국과의 외교 복원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인도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방장관, 외무장관이 잇따라 베이징을 방문했다. 2020년 인도 군과 중국 군이 국경에서 충돌하며 양국 관계가 경색된 후 5년 만의 공식 고위급 교류다. 모디 총리는 오는 9월 중국 톈진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참석도 검토 중이다. 인도 정부는 중국의 대인도 투자 규제 완화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싱크탱크 로위연구소는 “인도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 방식과 고율 관세 부과는 양자 관계를 지탱해 온 신뢰를 훼손했다”며 “인도가 이에 대응해 중국과 보다 실용적이고 유연한 전략을 채택하면서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인도·태평양 역학 구도에 균열 조짐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는 일본·호주와 함께 중국 견제를 목표로 미국이 운영 중인 안보협의체 ‘쿼드(QUAD)’의 핵심 축이다. 그러나 미국과 인도 사이 신뢰가 흔들리면서 쿼드 내부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 쿠겔만 미국 윌슨 센터 남아시아 연구소장은 “미국·파키스탄·인도 삼각관계의 판이 뒤집혔다”고 진단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국제관계의 기본 원칙은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것”이라며 “존재하는 건 영원한 이해관계뿐”이라고 지적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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