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울진 보부상이 만든 십이령길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 내성장까지 열두 고갯길은 백오십리였다. 보부상들은 울진장에서 미역, 소금, 어물을 등에 지고 고갯길을 넘었다. 목화솜이 달린 패랭이를 쓰고 물미장이라 불린 지게 작대기를 든 모습이었다. 이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걷다가 선 채로 쉬었고 외딴 주막이나 민가에서 아무렇게나 고된 몸을 눕혔다. 울진 바닷가에서 싣고 온 해산물은 봉화 내성장, 춘양장, 법전장, 재산장, 소천장을 돌며 양곡과 포목, 약품으로 교환했다. 황장목이 울창한 십이령길을 넘어 다시 울진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들의 어깨는 늘 고단했다.
울진 보부상길, 또는 십이령길로 불린 이 고갯길의 정식 명칭은 금강소나무 숲길이다. 금강소나무 숲길은 2021년 국가 숲길로 지정되었고 그 중 보부상길은 1구간에 해당한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무거운 등짐에 눌렸을 행상들의 여정이 눈에 그려진다. 험준한 산세, 굽이치는 계곡, 산짐승들의 위협을 견디며 꿋꿋이 이 길에 발자국을 남겼다.
보부상의 삶과 애환을 다룬 장편소설 '객주'에 십이령 고갯길이 잘 묘사되어 있다. 가파르기가 사람의 콧등이 땅에 닿을 정도이고, 마치 낙타 열두 마리를 세워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몇 년 혹은 몇십 년을 두고 십이령을 넘나든 이력과 간담을 가진 부상들도 벼랑길에서 실족하여 열길 계곡 아래로 나둥그러져 졸지에 열명길에 들거나, 평생 고질을 얻어 신세를 망친 사례도 허다하였다. 길이 얼마나 험했으면 샛재의 성황사를 비롯하여 고개치마다 성황단을 두고 내왕길의 안녕을 빌기까지 했을까."(객주 10 중에서)
듣기만 해도 오싹해지는 십이령길은 보부상들이 만든 길이다. 보부상은 '보상'과 '부상'을 함께 이르는데 보상은 보자기에 물건을 싸서 팔러 다니는 봇짐장수이고, 부상은 부피가 큰 짐을 지게에 지고 다니는 등짐장수이다.
보부상은 상업을 경시하는 사회적 풍조로 인해 주로 최하층민이었다, 대부분 가난하고 혼자였다. 가족이 있다 해도 일정한 주거 없이 떠돌아다녔다. 하늘을 지붕 삼아 의지할 곳 없는 보부상들의 삶은 힘겨웠고 외로웠다.
그래서일까. 길에서 만났다 흩어지는 행상들은 잠시 만나도 형제 같은 우의를 다졌다. 용이 그려진 지게 작대기를 보면 절 한번 하고 인사 한마디 하고, 절 한번 하고 인사 한마디 하며 헤어지기 아쉬워했다. 윗저고리를 바꿔 입는 풍습으로 끈끈한 정을 나누기도 했다.
보부상들은 청렴하고 정직하며 엄격하고 정확했다고 전한다. 비록 행상이었으나 예절을 지켰고, 동료가 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도와주었다. 그래서 보부상은 단순히 상거래를 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넘어선다.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지요 형제이므로 마음을 다해 서로를 아꼈다.
그들은 혼자 걷는 법이 없었다. 십이령 고갯길을 넘을 때면 두천리 주막촌에 상단이 꾸려졌다. 적게는 오십 명에서 많게는 백 명쯤 되는 상인이 서로를 끌어주고 도와주며 험한 고갯길을 넘었다.
혼자보다 함께였을 때 힘이 생긴다. 응원하고 믿어주는 관계 속에서 오롯이 참된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요즘은 혼밥, 혼술에 이어 혼행이 대세를 이룬다지만 울진 보부상길을 보며 함께 하면 가능한 것이 더 많다는 걸 배운다. 위험하고 위태로운 열두 고갯길이지만 의지하고 함께 견뎌내어 오랜 시간 이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