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손필영〉기후 위기와 소비

전남일보 2025. 8. 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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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필영 시인
4일 오전 전남 함평군 엄다면 일대 농경지가 빗물에 잠겨 있다. 함평에는 호우 특보가 발효된 전날 하루에만 170여㎜의 비가 내렸다. 연합뉴스

요즘 전세계의 날씨는 낯설다 못해 불안하다. 7월 중 우리나라의 가장 기온이 높은 날 평균이 31.9도였고 전국적으로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다. 막 접어든 8월도 폭염과 집중호우가 번갈아 닥칠 것으로 예보됐는데 이를 입증하듯 3일은 곳곳의 집중호우와 낙뢰로 정신이 없었다. 더운 것도, 비가 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만 이제는 그 강도가 너무 세고 그 주기가 너무 짧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미래형 단어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그것은 우리 삶의 리듬을 바꾸고 있다. 그 파괴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확실하게, 세계 곳곳을 변형시키고 있다.

15년전 몽골에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황홀하고 아름다운 초원은 점차 사라져가고 사막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1940년 이후, 몽골은 지구 평균의 세 배 속도로 평균기온이 상승했고, 최근 10년간 국토의 14%가 사막화됐다. 887개의 강, 1166개의 호수가 사라졌다는 통계는 더 이상 극단적인 예외적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왔다. 일회용컵을 줄이기 위해 텀블러를 쓰고, 플라스틱 대신 대나무 칫솔을 쓰고, 비건 샴푸를 선택하는 등 작은 변화의 시도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 텀블러는 그런 변화의 상징 중 하나다. 그러나 텀블러는 정말 '친환경'적일까?

텀블러 하나를 만드는 데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약 1~2㎏다. 이는 종이컵 80개를 쓰는 것과 맞먹는다.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최소 100회 이상 사용해야만 종이컵보다 환경적으로 효과적이다. 플라스틱 재질이라면 그 기준은 50회로 다소 줄지만 핵심은 '오래 쓰는 것'에 있다. 하지만 요즘은 계절별 디자인과 한정판 마케팅이 텀블러를 소장품으로 만들었다. 텀블러가 친환경에서 벗어나, 또 다른 소비의 대체물이 된 셈이다. 자주 바꾸는 순간 '지속가능성'은 의미를 잃는다. 기후위기를 과학 데이터로만 보면 종종 무기력해진다. 토마스 핀천이 196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엔트로피'는 이 위기를 문학적으로 예감한 듯한 작품이다. 

소설에는 두 개의 방이 등장한다. 아래층에서는 72시간 동안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대화는 엇갈리고 지나가던 군인들이 노는 곳으로 착각하고 들어올 정도로 사람들은 술에 취한 채 음악과 잡음에 뒤섞여 있다. 무질서가 점점 커져 보다못해 정리를 시도하지만 상황은 정리가 불가능하다. 집주인은 혼동과 무질서가 스스로 정리되기를 기다린다. 그 위층의 닫힌 방 안에서 칼리스토는 병든 새 한 마리를 살리려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질서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는 폐쇄된 시스템 안에서 제어만 한다면 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결국 바깥과 방 안의 온도는 같아지고 에너지는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새는 식어간다. 질서가 멈추는 순간, 그의 연인 오베이드는 창문을 깨뜨린다. 위 아래층의 두 방은 각각 에너지를 마구 소비하는 현대 문명과 위기를 통제하려는 과학기술적 시도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 두 공간 모두 결국 엔트로피 앞에서 흔들린다. 무질서는 증가하고, 통제는 실패한다. 우리도 칼리스토처럼 탄소를 줄이고, 시스템을 관리하고, 온도를 설계하면 지구도 다시 균형을 찾을 거라고 여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고립된 시스템의 엔트로피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한다. 지구 역시 물질 순환 측면에서는 사실상 폐쇄계다. 우리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파티처럼 지속되는 소비, 축적, 낭비는 결국 기후 시스템을 뒤흔든다. 칼리스토는 방 안의 새를 구하려 애쓴다. 마치 우리가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탄소중립 기술로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과 비슷하다. 기술로 문제를 붙들고 있지만, 근본적인 생활 방식의 변화 없이는 파국을 막기 어렵다. 엔트로피는 필연적인 자연법칙이기 때문에 조절 장치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의 선택은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 닫힌 방 안에 있다. 텀블러를 사고 다시 사고 더 좋은 재질과 디자인을 찾아 움직이면서 질서를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어떤 텀블러를 쓰느냐'가 아니라 '그 하나를 얼마나 오래 쓰는가'일 것이다. 기후 위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어떤 아이템을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사지 않고 버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은 비단 텀블러뿐만 아니라 옷을 포함한 유행에 민감한 새로운 물건에 대한 소비까지 포함한다. 소비를 억제할수록 우리는 무질서 속에서 작은 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