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표 ‘한국미술 5천년’전, 시대착오 우려 넘어 K컬처 뿌리 보여줄까

“내가 어떻게 한다는 것도 모르면서 입방아를 찧는지…. 40여년 전 열었던 ‘한국미술 5천년’ 순회전을 다시 얘기한 건 찔끔찔끔 우리 것들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국 미술의 에센스(본질)를 느낄 수 있는, 제대로 꾸린 블록버스터 전시를 하겠다는 뜻이었어요. 국보·보물들 모아서 나열식으로 보여주는 과거 전시 형식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 가능하지도 않아요.”
지난달 역대 최고령 국립중앙박물관 수장 자리에 오른 유홍준(76) 관장은 지난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해가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4일 언론간담회에서 1970~80년대 국립박물관이 기획한 ‘한국미술 5천년’의 세계 순회전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구상을 놓고 문화재 동네에서 논란이 이는 것을 겨냥한 말이었다. ‘국력과 국격의 성장을 도외시한 시대 착오’ ‘나라 보물들을 무더기로 국외로 들고 가 보여주는 후진국 시절의 낡은 전시 틀’ 같은 비판이 나왔다는 반응을 전하자 발끈하는 기색을 보인 것이다.
이날 박물관에 출근해 관객들 현황을 살펴보고 상관인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현장 방문도 안내한 뒤 전화를 받았다는 그는 “기획 중이라고 언급한 ‘한국미술 5천년’ 세계 순회전은 40여년 전 전시를 재탕한다는 게 결코 아니다. 내가 언제 재탕한다고 했느냐”고 되물었다.
“구상보다 결과로 나오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케이(K)컬처 뿌리로서 한국미술 진수를 보여주는 전시를 꾸려 나간다는 것이고, 구체적인 내용과 구성은 학예연구원들과 토론 중인데 나오려면 멀었어요. 아니, 구상 자체의 밑그림은 금년 안에 그려질 겁니다. 나오면 공개할게요.”
‘한국미술 5천년’전은 1976년 도쿄, 교토 등 일본 3개 도시, 1979~1981년 뉴욕, 보스턴 등 미국 8개 도시, 1984~1985년 런던, 쾰른 등 영국·독일 3개 도시를 순회하며 반가사유상, 고려청자 등 명품 300여점(국보 40여점 포함)을 선보인 순회전을 일컫는다. 시기를 넓혀 1957~1959년 미국과 1961~1962년 유럽의 도시들에서 순회 전시한 ‘한국 국보전’까지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 땅의 전통예술을 서구와 일본에 널리 알렸던 명품 전시로, 중국과 일본 문화 아류란 선입관을 불식시키는 데 기여했다. 반가사유상과 달항아리, 인왕제색도 등이 한국 문화유산 대표작으로 자리를 굳히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국보, 보물 등을 한꺼번에 모아 바치듯 보여주는 나열식 기획전의 한계와 군사독재정권의 학정을 덮는 문화 홍보 수단으로 오용됐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런 역사적 공과를 감안하면, 유 관장이 말하는 21세기 ‘한국미술 5천년’전의 실체적 성격이 궁금해진다. 주제 기획전을 추구하는 것일까? 답변은 알쏭달쏭했다. “그건 모르겠어요. 기본 계획이 그렇다는 거지, 단정적으로 얘기하면 실무자들이 아이디어 짜는 데 제한을 주니까 안돼요. 익히 알려진 명보들 모으는 전시는 아니고, 한국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식으로 큐레이팅할 거예요.”
유 관장은 학예실장을 중심으로 각계 의견을 받아 준비하고, 3년 정도 뒤에 국내 전시부터 하고 국외 미술관들과 접촉해 순회 전시를 벌인다는 구상을 털어놓았다. ‘한국미술 5천년’ 제목을 꺼낸 건 40여년 전 순회 당시처럼 거대 규모로 하겠다는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그때 전시가 한국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려 우리 역사를 보여준 것이라면, 이젠 케이컬처가 잘나가는 시대상에 맞게 케이컬처 뿌리가 우리 문화에서 나왔음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한국미술이 지닌 아름다움의 여러 핵심적인 요소들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는 ‘검이불루’와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화이불치’가 있고, 생활과 해학이 있는 것도 있고. 이런 미감, 한국인의 독특한 미감을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겠지요. 지금은 여러 가지 시안이 나올 뿐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미리들 제목만 짐작하고 비판하니까 의미가 없죠. 다른 전시의 성공 사례들을 검토해보고 중국과 일본도 비슷하게 전시한 예가 있는지 살펴보고….”

국립박물관 등 국내 국공립박물관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은 2000년대 들어 명품 모음 잔치를 벗어나 도자기, 디자인 유산 같은 주제 장르전 얼개로 진화한 국외 전시를 계속 시도해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1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조선시대 분청사기’전, 2013~2014년 ‘황금의 나라 신라’전을 열었고, 2021년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유물들을 갖고 올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미국·영국에서 국외 순회전을 펼칠 예정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영국 런던 브리티시뮤지엄의 ‘실크로드’ 특별전에 경주 계림로 고분 출토 황금보검을 포함한 최상급 신라 유물들을 처음 전시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도 유럽 박물관의 한국 미술사, 민속품 컬렉션으로 2011~2013년 ‘한국의 재발견’이란 발굴 전시를 열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튀어나온 유 관장의 ‘한국미술 5천년’전이 어떤 차별성을 갖는 콘텐츠로 꾸려질지 주목된다. 유 관장은 이건희 컬렉션전 등의 주제별 기획전은 그것대로 추진하고 자신이 구상한 ‘5천년’전은 한국미 특질에 초점을 맞춰 규모가 훨씬 크고 체계적이고 짜임새 있는 전시로 따로 진행한다면서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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