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남의 일 아닌 ‘외로움’…행촌마을 정민씨는 오늘도 안부를 묻는다

박현정 기자 2025. 8. 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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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토시예요, 토시. 팔에 꼭 끼고 다니셔. 보냉 가방이라 얼음물 넣어두면 안 녹는데요."

서울 인왕산 성곽 아래 행촌마을(종로구 교남동)에 사는 김정민(58)씨는 월요일이었던 지난달 28일 아침 6시30분, 출근에 앞서 이웃 김복례(82)씨 집을 찾아 작은 가방을 건넸다.

정민씨가 이날 아침 만난 또 다른 김씨(72) 어르신은 사는 집 한 채를 보유한 까닭에 기초생활보장 급여 수급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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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르신들 들여다보는 교남동 토박이 김정민씨
서울 종로구 교남동에 사는 김정민(58·왼쪽)씨가 이웃 주민인 김복례(82)씨 집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건 토시예요, 토시. 팔에 꼭 끼고 다니셔. 보냉 가방이라 얼음물 넣어두면 안 녹는데요.”

서울 인왕산 성곽 아래 행촌마을(종로구 교남동)에 사는 김정민(58)씨는 월요일이었던 지난달 28일 아침 6시30분, 출근에 앞서 이웃 김복례(82)씨 집을 찾아 작은 가방을 건넸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가 폭염으로 건강 피해가 우려되는 폐지 수집 어르신 등 2천여명에게 지급하기 위해 마련한 쿨키트(꾸러미)였다.

내리막길에 자리한 수십 년 된 낡은 집 옆으로 김씨 어르신이 모아 둔 폐지와 고철 등이 보였다. 이 동네에서 태어난 정민씨에게 그는 50년 넘게 봐 온 동네 아주머니이자 함께 마을을 가꿔 온 주민이다. 교남동 통장(2013~2020년)뿐 아니라 동 단위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가 설치한 교남동 자원봉사캠프장을 2012년부터 맡아 온 정민씨는 서울시자원봉사센터의 쿨키트가 너무나 반갑다. 어르신들이 무더운 여름철에도 전기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여간해선 선풍기를 틀지 않고, 마을버스비도 아까워 경사진 골목길을 걸어다니는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교남동에 사는 김정민(58·왼쪽)씨와 50년 넘게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인 김복례(82)씨.

동네엔 폐지를 모으는 어르신이 많다고 했다. 김씨 어르신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생계급여를 받긴 하지만 한 달에 몇만 원이라도 벌이가 필요한 형편이다. 정민씨가 이날 아침 만난 또 다른 김씨(72) 어르신은 사는 집 한 채를 보유한 까닭에 기초생활보장 급여 수급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과거 큰 수술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아 정해진 시간에 나가는 일 대신 틈틈이 폐지를 줍는다.

이렇게 모은 폐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독립문 ‘평화의집’이 트럭으로 수거해 가까운 고물상보다 좀 더 비싼 값을 쳐주는 곳에 팔아 수익금을 전달해 준다.

지역 재생활동가이기도 한 정민씨에게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무엇인가를 나누는 건, 봉사가 아닌 일상이다. 특히 폭염에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과 연락이 닿지 않을 때면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불안함이 앞선다. 밥을 지어 놓은 채, 집 안에 홀로 쓰러져 있던 어르신을 병원 응급실로 옮겼던 4년 전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아침 일정을 마무리한 뒤 발걸음을 옮기던 그가 한 빌라 정문 앞에 앉아있는 80대 어르신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하며 달려갔다. 매일 집 앞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분”이라고 했다. 왜 그러시는 걸까? “외로우니까요.”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전체 가구의 36%는 1인 가구이며 홀로 사는 60대 이상 고령층은 300만 가구가 넘는다. 고독과 외로움은 먼 미래도, 남의 이야기도 아니다. 정민씨가 말했다.

“안부 묻는 건 가장 일상적인 일이잖아요. 어르신한테 인사하고, 아이들 안전한지 확인하고. 이 동네에서 저도 나이를 먹을 텐데 서로 안부를 묻는 환경이 잘 만들어지면, 결국 저한테 좋은 일 아닌가 싶습니다.”

글·사진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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