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캔 모아 생계 꾸리는 70대 노인의 저녁···“비가 와도, 무더위에도 못 쉬어”[현장]

강한들 기자 2025. 8. 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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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인 A씨(75)가 서울 마포구 망원역 근처 PC방 앞에서 캔, 유리병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해가 졌어도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던 지난 4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지하철 망원역 인근에서 A씨(75)가 비틀거리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도에 주저앉았다. 동네 길목마다 돌아다니며 캔과 전단지 등을 모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A씨는 쉬는 것도 잠시뿐, 다시 노인용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더워도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해. 얼마 못 살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 전역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져 있었다. A씨는 매일 저녁 7시쯤 나와 일을 시작해 새벽까지 밖에 있다고 했다. 불법 전단지를 수거하는 일은 3년 전부터 시작했다. A씨는 비가 오던 지난 3일에도 우비를 쓰고 나와 전단지를 모았다.

마포구청은 불법 광고물 ‘주민 수거 보상제’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 전단지를 모아 오면 장당 20원을 주고, 청소년 유해물은 장당 40원을 지급한다. 이날 A씨는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약 300장의 전단지를 수거했다. 3시간 일해서 번 돈은 총 1만원이 안 됐다.

A씨는 동네 PC방 등에서 나오는 캔도 수거한다. 이날도 PC방에서 받아 온 유리병·캔류를 바닥에 쏟아 놓고 분리했다. 그는 “알루미늄 캔은 1㎏당 받을 수 있는 금액이 1000원정도 밖에 안 된다”며 “전단지가 고수익”이라고 말했다. A씨는 자신처럼 전단지를 수거하는 일을 하는 노인은 마포구 성산1동 내에만 4명이라고 했다.

폭염이어도, 비가 와도 A씨가 일을 쉴 수 없다. 가족 중 A씨만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와는 오래전 사별했다. 두 아들 중 첫째는 집을 담보로 빚을 내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다. A씨는 “첫째 아들은 매일 집에서 누워만 있다”고 했다. 둘째는 대학을 다니던 시절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23년 처분가능소득 기준 38.2%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편이다. 2023년 보건복지부의 실태조사 결과 폐지수집 노인 규모는 약 4만2000명으로 추계됐다. 평균 연령은 76세로, 하루 5시간 이상, 일주일에 평균 6일 폐지 수집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A씨는 이날 전단지를 수거하다가 어깨를 부여잡고 주저앉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두 차례 목 디스크 수술에도 사라지지 않는 통증 탓이었다. 그는 “한 번 통증이 오면 머리끝까지 찌릿해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일주일에 5000장은 모아야 하는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A씨는 굽은 허리로 보행기에 의지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길거리에 떨어진 전단지를 찾았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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