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한반도에도 731부대 건립계획 세웠다”

정충신 선임기자 2025. 8. 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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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로 불린 중국 하얼빈(哈爾濱) '이시이(石井)세균연구소'에 여성과 소년도 참여시킬 정도로 일본 군국주의는 잔혹한 짓을 했습니다."

중국 현지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활동을 해온 김월배(58·사진) 하얼빈대 이공대학 교수는 최근 광복 80주년을 맞아 '731진열관'에 근무하는 중국인 림화 주임과 함께 '731부대 역사의 법정-비인도적 잔학행위'(헤르몬하우스 간)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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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월배 하얼빈대 교수, 저서 ‘731부대 역사의 법정’서 밝혀
북한의 강계 광산이 예정지
소련군 참전으로 실현 못해
731부대 여성·소년도 고용
조선인 마루타 체포자 공개

“731부대로 불린 중국 하얼빈(哈爾濱) ‘이시이(石井)세균연구소’에 여성과 소년도 참여시킬 정도로 일본 군국주의는 잔혹한 짓을 했습니다.”

중국 현지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활동을 해온 김월배(58·사진) 하얼빈대 이공대학 교수는 최근 광복 80주년을 맞아 ‘731진열관’에 근무하는 중국인 림화 주임과 함께 ‘731부대 역사의 법정-비인도적 잔학행위’(헤르몬하우스 간)를 펴냈다.

김 교수는 “731부대 인원 편제를 보면 1945년 1월 1일 문관 261명, 촉탁 13명, 고용인 2036명(여성 382명, 18.8%) 총 2310명으로 기록됐다”며 “이시이 시로(石井四郞)를 부대장으로 하는 대부분 군의와 일본군인들 외에 여성도 참여했으며 소년은 1938년 90명, 1942년 107명, 1943년 20명, 1945년 50명이 확인됐다”며 처음 공개했다.

조선인(한국인) 인체실험 희생자 5명(이기수, 한성진, 전성서, 한창진, 심득룡) 중 한 명인 심득룡을 다롄(大連)에서 체포한 인물은 당시 다롄 헌병대 미오 유타카(三尾豊)란 사실도 처음 공개됐다. 미오 유타카는 1943년 10월 1일 다롄 혜이스죠 싱야(黑石礁興亞) 사진관에서 심득룡과 중국인 등 4명을 체포했다. 심득룡은 731부대 본부로 이송돼 사망했다.

김 교수는 “한반도에 731부대 본부가 설립될 뻔했다. 731부대가 조선에 건립 예정이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책에서 공개했다. 그는 “‘소련군 침공에서 복원까지’의 일본인 저자 와다 쥬로(和田十郞)에 따르면 북한의 강계가 ‘소련의 만주 침공 시, 관동군 작전 방침이 북만주 포기, 남만주 확보로 변경됐을 시점에서 관동군 사령부로부터 관동군 방역급수부 하얼빈 본부를 이주할 예정지로서 명령이 내려졌던 토지’였다고 기술됐다”며 “강계의 ‘광산발굴터’가 ‘우리 부대의 새로운 근거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관동군 방역급수부 하얼빈 이전 계획은 1945년 8월 9일 소련의 전쟁 참여로 실현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처음 공개했다.

김 교수는 “어떤 이유도 생명보다 우선순위일 수는 없다. 미래의 가장 큰 예견자는 과거”라며 “731부대의 비인도적 잔학행위는 역사의 법정에 세워 심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충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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