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헵번처럼’ 로마 스페인광장 필수 인증샷 伊 ‘젤라토’… ‘동화처럼’ 화려한 마차서 판매하는 파키스탄 ‘쿨피’[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녹기 전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게 이름이다. 아이스크림 가게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라는 점도 신선했지만, 아이스크림 특성과 시간의 유한성을 연결한 재치가 인상적이었다. 메뉴도 매일 바뀐다니 아이스크림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흔들렸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인식은 문화콘텐츠의 영향도 크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스페인광장에서 오드리 헵번이 먹던 아이스크림이 연상된다.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젤라토(gelato)’ 먹기는 로마 여행의 필수코스처럼 여겨진다. 한여름에 젤라토를 들고 인증샷을 찍느라 정작 먹은 것보다 바닥에 흘린 양이 많았을 성실한 여행객들 탓일까. 얼룩진 대리석 계단이 논란이 되었고, 로마시는 문화유산 보호를 이유로 2019년부터 스페인광장 계단에서 음식물 섭취를 금지했다. 위반 시 벌금이 최대 400유로(약 54만 원)가 부과된다니, 아이스크림 하나로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낭만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로마보다 더 강렬하게 아이스크림이 각인된 도시는 파키스탄의 라호르였다. 잘 알지 못해서였겠지만 아이스크림은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이었다. 도시 한복판, 동화책 속에서 걸어 나온 듯한 화려한 마차와 당나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마차에서 팔고 있는 건 바로 지역의 전통 아이스크림인 ‘쿨피(kulfi)’.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뭔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의심할 만큼 화려했다. 이 모습을 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처음 먹어본 쿨피는 젤라토보다 더위에 강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쿨피는 제조 과정에서 공기 함유량을 낮춰 밀도가 높고 그 덕분에 쉽게 녹지 않는다고 한다.
이스탄불에서는 아이스크림이 하나의 공연이 되기도 했다. 소피아성당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려고 했을 뿐인데, 느닷없이 작은 무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아이스크림콘을 줄 듯 말 듯, 손끝에서 빙글빙글 돌리다 이내 쓱 빼버리는 묘기가 이어졌고, 어느 순간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관광객이라서 과한 서비스를 해주는 건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현지인들이 살 때도 같은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것을 보고 이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문화라는 걸 느꼈다. 이런 퍼포먼스를 가능하게 한 것은 튀르키예의 전통 아이스크림인 ‘돈두르마(dondurma)’ 덕분이다. 난초 뿌리 가루 ‘살렙’이 들어가 쫄깃하고, 잘 녹지도 않는다. 게다가 찰진 질감으로 손님과 독특한 공연(?)이 가능하다.
기후가 변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둘러싼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실제로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아이스크림 소비량은 3∼5% 늘어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아이스크림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최근에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던 시장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가파른 성장세가 돋보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무인 매장, 창의적인 제품, K-디저트 열풍까지 더해지며 수출 유망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건강과 환경을 고려한 저당, 저지방, 식물성 아이스크림들이 주목받고 있다. 플라스틱 포장 대신 친환경 용기를 쓰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맛있게, 그리고 덜 미안하게’ 먹는 시대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서 있는 이 지구는 녹고 있다. 손에 든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리는 걸 막을 수 없듯, 지구의 온도 역시 더는 붙잡기 어려워지고 있다. 당나귀가 끌던 마차도 언젠가는 무인매장으로 바뀌겠지만,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닥치기 전에 바꿔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서울대 웰니스융합센터 책임연구원
■ 한 스푼 더 - 아이스크림은 유통기한이 없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아이스크림은 법적으로 유통기한이 없다. 제조 과정에서 살균 절차를 거치고, 영하 18도 이하에서 보관되어 미생물 증식이 어려운 까닭이다. 통상 1년 내 섭취를 권하지만, 냉동 상태만 유지되면 오래도록 품질을 보존할 수 있다. 다만, 한 번 녹으면 그 맛과 식감은 달라지는 만큼, ‘녹기 전에’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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