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이 본 한국영화 위기 “K콘텐츠 각광받는 지금, 해외 판로 뚫어야”
① ‘최고 흥행신화’ 김한민 감독
“골든타임도 끝나가고 있다.” 영화인들이 비명처럼 내지르는 한국 영화산업의 현주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침체를 거듭해온 영화산업은 올해 연간 극장 관객 수 1억명 붕괴를 목도할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최근 긴급처방으로 6천원 할인권을 배포하면서 극장으로 관객을 유도하기도 했지만, 완전히 망가진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벼랑 끝에 놓인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 해결을 위해 각 직능별 영화인들의 제언을 5회에 걸쳐 싣는다.

“케이(K)콘텐츠가 가장 각광받는 지금, 이를 이끌어온 한국 영화산업은 붕괴 직전에 놓였으니 아이러니합니다. 당장 꺼져가는 숨통을 틔우는 응급수술이 다급한 시점입니다.”
1760만 관객 동원. 지금까지 깨지지 않은 흥행 기록의 영화 ‘명량’(2014)을 연출한 ‘이순신 3부작’의 김한민 감독이 진단한 상황이다. 앞선 우려가 아니다. 체감하는 ‘벼랑 끝’이다. 김 감독의 차기작인 ‘칼, 고두막한의 검’은 최근 메인 투자자가 재정 문제로 투자를 철회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즈음 이창동 감독은 신작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공개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두 감독이 직면한 상황만으로도 위기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달 말 서울 마포구 빅스톤픽쳐스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 감독은 “이번 기회에 수익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산업적 시스템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한 새 정부의 정책적 마중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747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자신의 세번째 연출작 ‘최종병기 활’이 개봉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국 영화의 낡은 수익 구조 창출 방식이 팬데믹을 만나 오늘의 참담한 결과에 이르렀다고 짚었다. “‘최종병기 활’ ‘노량: 죽음의 바다’ 등 연출작과 직접 제작했던 ‘봉오동 전투’까지 5편의 수익을 분석해보니 극장 매출, 부가판권 판매, 해외 세일즈까지 모든 게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됐어요. 그사이 영화산업은 여러 중대한 변화를 겪었는데도 말이죠. 오티티(OTT) 플랫폼이 부상하면서 부가판권 시장이 바뀌고 케이콘텐츠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데 해외 판매 방식은 여전히 낙후돼 있죠. 이 부분을 제대로 개선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극장 매출의 침체, 투자자의 손해와 투자 위축, 영화 제작 감소가 다시 극장 매출을 더 떨어뜨리는 지금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김 감독은 한국 영화 유통 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시급하다고 짚었다. “극장 매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수익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활력처를 찾지 못하면 얼어붙은 투자를 다시 영화판에 유인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강조하는 건 “한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 기회”인 해외 판로의 개척이다. “한국 영화의 전통적 수익 구조는, 국내 매출을 1로 봤을 때 해외 매출이 0.3을 넘는 영화가 ‘기생충’ 정도를 빼고는 전무한 수준이에요. 반면 할리우드는 1 대 1 정도 되죠. 해외 매출을 평균 0.5만 넘겨도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인 재생산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구상은 이상에 가까웠지만 ‘기생충’, ‘오징어 게임’, 한국 콘텐츠는 아니지만 한국이라는 소재를 가장 트렌디한 매력으로 끌어낸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나온 지금은 충분히 현실로 가능하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국 배급을 먼저 뚫고 한국으로 역상륙한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가 좋은 선례를 만들었죠. 하지만 크리에이터 각자가 해외 시장을 뚫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국외 투자나 제작 이력을 쌓아온 씨제이 등과 정부가 손을 잡거나, 글로벌 오티티의 자금력과 배급력을 활용할 수도 있고, 국가 간 투자 협정을 맺는 등 여러 방법으로 정부가 해외 판로를 모색해 길을 만들어주는 게 절실합니다.”
당장 숨통이 끊어지다시피 한 투자의 심폐소생을 위한 정부의 긴급 지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지금은 정부가 산업 활성화를 위한 펀드를 만들어도 얼어붙은 민간 투자자들이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시적으로라도 출자 레버리지를 상향 조정하거나 수익이 마이너스가 났을 경우 민간 투자자들을 우선적으로 보전해주는 식의 유인책을 써서 당장 막힌 혈관을 뚫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내년 초 촬영을 준비하는 신작 ‘칼, 고두막한의 검’을 통해 투자 유치와 유통 방식, 그리고 제작 기술에 있어서도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보려 한다. 인공지능의 적극적 활용이 그중 하나다.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에이아이 기술 활용은 비용뿐 아니라 시간적·미학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도전이다. 김 감독은 “에이아이 기술의 도입이 필연적인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돈줄이 마른 한국 영화산업에는 특히나 제작비 절감의 출구가 될 수 있다”며 “새 정부가 에이아이를 중요한 국정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영화산업의 에이아이 지원도 꼭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날이 업데이트 되는 에이아이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 장비에 대한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영화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에이아이 편집 도구 등의 원천기술 개발, 기술 표준 제시 등을 정부가 나서서 해야 정체된 창의성에 날개를 달 수 있다는 의미다.
김 감독은 지금 영화산업이 벼랑 끝 위기라도 “한국 영화가 케이콘텐츠의 전위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전히 스마트한 영화인들이 많고, 이들 각자는 장르를 막론하고 예술품을 창조한다는 자의식과 열망이 강한 사람들이에요.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면, 한국 영화산업은 위기를 통해 비상했던 과거의 경험들처럼 다시 도약해 리딩 미디어로서 다른 문화산업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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