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권력 견제…추첨식 시민의회가 열쇠”

정은주 기자 2025. 8. 5. 06: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pan style="color: rgb(0, 184, 177);">HERI: ‘민주주의 미래 그리는 50개 시선’ ②법과 제도</span>
“개헌보다 중요한 것…시민 참여와 협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5월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과 그 이후 내란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약함을 드러냈다. 대통령과 권력기관이 국민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고, 이런 잘못을 막아야 할 고위 관료와 사회 지도층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강함도 보여줬다. 시민들과 국회가 힘을 모아 비상계엄을 끝내고,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탄핵했다. 한국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도, 재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확인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고, 시민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권력기관을 견제하는 장치를 만들고, 수사기관도 서로 감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당 공천과 선거 방식에 시민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 차별과 혐오를 막는 법도 만들어야 한다. 언론과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의 지혜가 함께 모여야 권력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더 건강하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새롭게 설계할 기회를 안겨주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법무법인 경 공익연구소는 지난 3∼5월, 내란 사태와 그 파장을 다각적으로 짚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포커스그룹 인터뷰(FGI)를 9차례 진행했다. 법·정치·경제·사회·역사 분야 학자, 경제·정치 평론가, 기자, 연구자, 시민활동가, 변호사, 정신과 의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50명이 주제별로 4~5명씩 모여 각자의 견해를 솔직하게 나눴다. 참가자들은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과제를 평가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벌였다. 토론 시간은 30시간을 훌쩍 넘겼다. 한겨레는 ‘민주주의의 미래를 그리는 50개의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주요 내용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인터뷰 전체 내용은 별도 보고서로 발간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밤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헌정 질서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권력은 ‘시민 아닌 자신’을 먼저 생각했다”

―드러난 한국 사회의 강점과 약점은.

김종철(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통령 윤석열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군의 힘으로 제압하려고 시도함으로써, 다시 과거 군정 시대로의 회귀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1987년 체제의 단점이 드러났지만, 반대로 그 체제 안에서 계엄을 조기에 진압하고, 헌정 질서에 따라 탄핵이 가능했다는 장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권력형 법 집행기관들—기획재정부,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은 민주화와 분권화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 이런 기관들을 통제하거나 개혁할 제도적 장치가 미흡했고, 그 부분은 앞으로 반드시 다듬어야 한다.”

이주희(법무법인 다산 변호사): “공직자의 자질 검증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검찰 특수성인지, 공직 조직의 문제인지, 엘리트 육성 방식의 문제인지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 과거사 청산 작업과 제도 개혁을 동시에 해나가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신중하고 선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김종철(전 한겨레 기자)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이 막강한 힘을 자의적으로 휘두르고, 스스로 정치를 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윤석열이 내란이라는 터무니없는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

박미경(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돈과 권력에 의존해왔던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다 드러났다. 예전에는 유튜브 하면서 돈을 추구하더라도 부끄러운 줄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라는 사람부터 사기 치고 거짓말해도 창피한 줄을 모른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부끄러움과 수치를 모르는 사회가 되어 버린 것 아닌가.”

이동기(강원대 평화학과 교수): “새로운 반민주주의 정치 세력이나 극우 집단들이 기괴한 행위나 주장을 갖고 등장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앞으로도 극우 세력과 분리와 경계의 방벽을 마련하고, 그것과 구별되는 민주주의 보수 정치 세력이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반공보수 엘리트, 시대 인식 부족”

―드러난 한국 엘리트의 민낯은.

김종철(교수) “상층부 엘리트, 특히 반공보수세력은 여전히 시대 인식이 부족하고, 문화 지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명백히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고 있고, 민주공화제를 자기 이익의 도구로만 이용하고 있다. 이를 무너뜨릴 힘은 더 많은 시민 참여와 참정권 확대, 그리고 정치의 일상화로부터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김종철(기자): “한덕수, 최상목은 국가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한 듯해 실망스럽다. 관료사회가 너무 타락한 게 아닌가 걱정된다. 법무부 류혁 감사관 외엔 아무도 비상계엄에 저항하지 않았고, 장관 중 책임지고 사퇴한 이도 없었다. 오히려 내란 종식이 아니라 윤석열을 옹호하는 모습이었다.”

―엘리트 중심의 권력 구조 개혁 방안은.

이준일(교수): “공직자 인선 과정에서의 검증 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언론이 대통령 후보 시절이나 집권 이후 그의 권력 행사를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지 못했고, 오히려 일부 언론을 제외하면 정언유착 수준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며 감시 능력을 상실했다. 결국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견제 시스템이 언론과 선출권력을 중심으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 제도적으로 큰 허점이었다.”

김종철(교수): “정치 진입 장벽을 없애야 하며,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숙의민주주의나 추첨제 같은 제도를 도입해 크고 작은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인 참정권을 보장하는 일이다. 참정권의 실질화는 곧 시민사회의 권능화이며, 그래야 엘리트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이주희(변호사): “주권자가 특정 정당의 당원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 정치 주체로서 연대하고, 정책 생산과 의제 설정에 개입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시민 교육과 더불어, 시민사회의 다양한 자율 조직이 성숙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정치 시스템이 다양한 행위자를 수용해야 하며, 그것이 다음 단계의 민주주의 발전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지난 3월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실체 진실에 눈먼 검찰…“분산이 답”

―검찰 개혁 방안은.

오병두(홍익대 법학과 교수): “검찰 조직에는 실체 진실에 관한 신화가 존재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은 자신들이 남들은 모르는 사건의 진짜 진실, 즉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판단이 선명해졌다고 느끼면, 다소 무리한 방식도 서슴지 않고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방식이 과도하거나 도덕적으로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실체적 진실을 알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다소의 절차 위반이나 과잉수사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김종철(교수): “검찰은 기소만 담당해야 하며 법무부는 탈검찰화해야 한다. 법무부는 문민통제 원칙 하에 운영돼야 한다. 법사위원장을 비법조인으로 임명한 것처럼 법무부도 검찰 출신에게 맡기는 잘못된 접근을 시정해서 정치적 통제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박용대(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앞으로 수사기관이 여러 개가 될 텐데 내부 협의로 수사 범위 문제를 조정해야 범죄자가 수사기관을 상대로 수사 못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내란범들이 공수처 수사권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것도 잘못됐다. 수사권 쟁점이 발생해선 안 되므로 신속히 입법 정비해야 한다.”

이주희(변호사) “대선 후 검찰, 경찰, 공수처 권한과 책임을 법적으로 명확히 정리해 신속하게 개혁해야 한다.”

김종철(교수): “공수처 확대는 불가피하지만, 검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적절한 통제장치를 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경찰도 또 다른 괴물이 되지 않도록 행정경찰 분리와 독립성 강화 등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검경 공수처 수사권 배분 문제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종합 정리해야 한다.”

박안수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2024년 12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12월3일 비상계엄 당시 계엄군을 현장에서 직접 지휘한 인물로, 각종 군 병력 투입을 시행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군 개혁 방향은.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헌법재판소에 나와 보여준 군 장성이나 엘리트들의 모습은 실망스럽기만 했다. 계엄과정에서 중간 간부들이나 병사들의 경우에는 소극적 저항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군장성이 조직 내 구성원과는 다소 동떨어진 현실 인식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석주(전 국방부 정책실장): “한국군의 헌법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 헌법 제77조의 자의적 판단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국군의 의사결정 체계에서 헌법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게 되어야만 설령 친위쿠데타가 발생해 군 동원 지시가 내려졌을 때여도, 일선 지휘관들이 그것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개헌보다 협치와 대화가 우선”

―정당 개혁 방안은.

김종철(교수):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참여경선) 형태의 법제화를 통해 공천과 선거 과정에서 국민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정당 내부의 당원 중심 구조나 권리당원만의 민심 반영으로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극단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법제화해 외부 시민의 참여를 정당 구조 안에 도입하면, 정당의 폐쇄성을 일정 부분 개선할 수 있다.”

박용대(변호사) “정당은 지도자를 양성하고 검증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천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정당의 자율성 속에서 그것이 적절히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이 정당의 후보자 선출 과정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현실 정치에서 참여 의지를 갖는 다양한 층위의 시민들이 정치과정에 개입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요소이다.”

이준일(교수): “모든 시민이 완전한 정치적 능력을 갖추는 것은 물론 이상적이지만, 정치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위기 상황이나 중요한 국가적 의제가 생겼을 때, 국민을 대표해 참여하고 희생할 수 있는 자질과 책임을 지닌 정치인들로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 지금 우리 수준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민주주의 완성 형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제는 개헌해야 하는가.

이준일(교수): “대통령제의 핵심은 민주적 정당성이 이원화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국회와 대통령 모두 임기가 보장되기 때문에, 서로 타협하지 않으면 이 체제에서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그런 대통령제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측면이 있다. 많은 이들이 내각제로의 전환을 이야기하지만, 단점 하나를 보고 체제를 바꾸자는 식의 접근은 위험할 수 있다. 핵심은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다. 협치와 대화, 타협을 제도 안에서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문화를 복원해야 한다.”

김종철(교수) “대통령 권한이 광범위한 것은 맞지만 헌법과 국회에 의해 충분히 통제된다. 쉽게 말해 한국형 대통령제는 민주공화적 대통령제다. 미국 대통령제와 다른 점은 국회와 협치하지 않으면 권력구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의원내각제보다 독재를 막는 데에 더 효과적이다. 단점으로 여소야대에선 효율성이 떨어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6월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1대 대통령 선거 뒤 처음으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6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2의 민주화의 길…권력분립과 시민참여

―헌법과 정치제도의 개혁 방향은.

김종철(교수): “2.0 체제로 업그레이드하는 제2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강화에 초점을 두고 선거제도 다원화, 정당 공천 제도 개혁을 추진하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 권력분립은 수사권 조정부터 시작해 권력형 법집행기관인 공수처, 경찰, 검찰, 정보기관 등에 대한 개혁도 진전시켜야 한다. 시민의 동력을 유지해 나쁜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의제 보완을 위한 숙의 민주제도 제도화가 필요하다. 탄핵심판 등에서도 시민 배심제 혹은 시민의회 확대를 검토할 수 있다. 문화의 다원성 확산도 인식 개선과 제도적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박용대(변호사): “다당제 정착을 위해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이 필요하다. 대통령 4년 중임제 속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교차해 2년마다 심판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4년 임기에 2년마다 교차 선거하는 방식이 좋다. 이렇게 4개의 전국 선거가 매년 치러지면 민심을 정기적으로 반영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여론조사가 아닌 실제 선거에서 민심을 파악, 반영할 수 있다.”

이주희(변호사): “가장 큰 문제는 유신 체제 유산인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다. 대법원장의 중앙집권적 권한을 헌법이 보장하는 것이 구조적 원인으로, 민주공화정 정신에 부합하는 방향으로의 사법행정 체계 개혁이 필요하다. 사법 개혁의 핵심은 사법행정 민주화와 분권화다. 대법원장 권한 조정, 노동법원 행정법원 등 전문법원 도입, 시민 배심 참여 확대, 법원 내 민주적 참여 보장 등 사법행정 분권과 민주화를 강화해야 한다.”

이준일(교수) : “1987년 체제의 개혁과 변혁은 필요하지만, 5년 단임제 대통령제 개헌이 본질적 변혁은 아니다. 국민 생명안전권 강화, 4차 산업혁명, 기후위기, 인구 감소 등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에만 집중하면 헌법 존재 이유가 전도될 우려가 있다. 헌법은 국민이 잘살고 행복하기 위한 조건 마련용이다. 5년 단임제 개헌보다 국민 기본권 강화에 중점을 둔 헌법 개정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본다.”

정은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기자 eju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