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웠습니다 ‘3호선 버터플라이’···느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꿈꾸는 나비의 날갯짓[포토다큐]

“그리웠습니다”
<스모우크핫커피리필>로 시작해 <말해요 우리>, <꿈속으로>까지 세 곡을 연달아 부른 후 보컬 남상아는 관객들에게 짧지만, 강렬한 무대인사를 건넨다. 숨을 고른 후 1집 타이틀곡 <꿈꾸는 나비>에 이어 그가 스물아홉일 때 기타리스트 성기완이 만든 곡 <스물아홉 문득>이 이어진다. 베이시스트 김남윤이 미소 지으며 리듬을 이끈다.

“어느 날 갑자기 뒤를 돌아봤어~ 글쎄 난 또 이렇게 멀리 왔네~
시간은 아무런 말 없이 지금도 쏜살같이 가네~ 거짓말처럼~
온 만큼을 더 가면 음~ 난 거의 예순 살~
난 말해주고 싶어~ 나에게 그동안 너 수고했다고”
남상아와 함께 ‘3호선 버터플라이’가 돌아왔다. 20주년을 맞은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마지막 날인 지난 3일, 서브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라 팬들과 관객들에게 귀환을 알렸다. 이 무대를 위해 프랑스 생활 7년째인 남상아는 식당 운영을 남편에게 맡기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성기완은 <스물아홉 문득> 노래 가사처럼 ‘거의 예순 살’이 되어 9년 만에 밴드에 복귀했다. 연락을 받고 망설였던 김남윤은 ‘상아 누나의 진심’을 확인한 후에 자신의 작업공간을 기꺼이 ‘합주실’로 내놓았다. 키보드 한솔, 드럼 신사론, 코러스 김도연은 세션으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2019년 2월, 밴드 결성 20주년을 맞은 ‘3호선 버터플라이’는 잠정 활동 중단을 알리며 홍대의 한 라이브클럽에서 ‘잠시만, 안녕’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가진 후 해체 상태나 다름없는 긴 휴식에 들어갔다. 팀의 프런트우먼 남상아가 프랑스 이주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남상아는 프랑스인 남편의 연고지라는 이유로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난 니스에서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한식당 ‘식사(sixsa)’. 지금은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예약해야만 식사를 할 수 있는 니스에서 꽤 유명한 맛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무대에 대한 그리움은 늘 있었지만, 프랑스에서 음악 활동은 전혀 할 수 없었다. 본인이 직접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며 식당을 운영해야만 하는 상황이라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다.
성기완은 남상아와 함께 1999년 결성된 밴드의 원년 멤버다. 팀의 리더였던 그는 2016년, 견해 차이와 새로운 음악에 대한 시도 때문에 팀을 떠났다.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아프리카 뮤지션 ‘아미두’를 만나 ‘트레봉봉’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뮤지션이자 시인이며, 계원예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먼저 팀을 떠난 탓에 “3호선 버터플라이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김남윤은 2001년 키보드 세션으로 시작해 3집 앨범부터 밴드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잠시만, 안녕’ 공연 이후에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녹음실 운영과 드라마 음악 등으로 경제활동에 전념했다. 20대 이후 처음으로 밴드라는 틀에서 벗어나 뮤지션이 아닌 일반인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자립’과 ‘생존’을 위해, 육아도 병행하면서.

<말해줘봐>, <거울아 거울아>에 이어 밴드의 대표곡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이 잠시 달아오른 객석을 진정시킨다. 강렬하고 몽환적인 기타와 드럼의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처연하고 허스키한 남상아의 목소리에 관객들은 흐느적흐느적 움직이며 슬픈 이별 노래를 따라 부른다.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믿기 싫지만 바로 오늘~ 진눈깨비가 거리를 뒹구네~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제발 가지 말라고~ 너에게 침을 뱉고 싶어지는 이 기분~”
‘3호선 버터플라이’는 자칭 게으른(?) 밴드다. 27년째이지만 정규앨범 다섯 장, 싱글 한 장이 전부다. 지속되는 게으름에 더해 ‘느슨함’도 한몫을 했다. 이유는 있다. ‘완벽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긴 공백을 깨고 8년 만에 다시 앨범이 나온다. 두 번째 싱글앨범 <환희보라바깥> 발매를 앞두고 있다.

신곡 <너의 속삭임>으로 잠시 숨을 죽인 후 익숙한 노래 <너와 나>, <다시 가보니 흔적도 없네>가 흥겨움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락페스티벌에 어울리는 곡 <티티카카>와 엔딩곡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거야>는 폭염 속에 공연장을 찾은 관객 모두를 땀에 흠뻑 젖게 한다. 멤버들이 무대 뒤로 사라지고, 객석에서 ‘앵콜’ 요청이 터져 나오지만 락 페스티벌의 관례대로 앵콜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멤버 모두가 다시 나와 손을 마주 잡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3호선 버터플라이’의 귀환 공연은 아쉬움 속에 끝이 난다.


펜타포트 프로그램 및 섭외담당자인 박준범 감독은 “페스티벌의 주 소비층인 20대들도 장르 음악을 파다 보면 오래전에 활동했던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을 듣게 된다. 3호선은 음악적 성취가 있는 밴드다. 음원이 아니라 라이브로 한국에도 이런 밴드, 레전드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며 이 무대의 특별함을 강조한다.
무대 맨 앞에서 공연을 지켜본 96년생 팬 김다솜씨는 “고교 시절부터 좋아했는데, 활동중단 했을 때 너무 슬펐다. 노래만 들으면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밴드다. 복귀해서 너무 행복하다. 순전히 3호선 때문에 펜타포트에 왔다”고 말한다.

“정말 그리웠죠. 프랑스에 살면서 공연하는 꿈을 많이 꿨는데 지금 이게 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이 보고 싶었고, 감개무량합니다.”
남상아는 10월의 끝자락에 다시 프랑스로 떠난다. 밴드는 활동 중단 상태로 돌아간다. 다행인 건 그가 떠나기 전, 6년 6개월 만에 ‘3호선 버터플라이’ 단독공연이 열린다. 오는 9월13일, 홍대의 한 공연장에서. 내년이면 ‘쉰 살’이 되는 베이시스트와 ‘예순 살’이 되는 기타리스트, 여전히 ‘스물아홉’처럼 노래하는 보컬리스트. 꿈꾸는 나비들의 날갯짓은 느리지만 멈추진 않는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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